뽑지 않을 권리로 의원 수를 줄이자 [고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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뽑지 않을 권리로 의원 수를 줄이자

2019.11.27

여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밀어 붙이려 한다 해서 정국이 차갑습니다. 제1 야당 대표가 이를 저지하겠다면서 단식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이 선거제는 정당의 의석수를 정당 득표율에 맞추는 것이어서 소선거구제의 단점을 보완하는 제도라고 설명하나 봅니다. 지역구에서 강세지만 전국 정당 지지도가 낮은 정당에게는 불리하고, 거꾸로 전국 지지도가 높은 정당에게 유리한 제도입니다. 대의 명분은 겉치레고, 표 줄 사람은 안중에 없이, 자리를 어떻게 나눠가지나 각자 셈법에 골몰하는 것이겠지요.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문제는 의석수가 현재보다 늘어날 여지만 있다는 것입니다. 지역구 의석이 정당 득표율보다 많을 때에는 지역구 의석을 억지로 줄일 수 없으니, 의석수 늘어날 가능성만 남아 있습니다. 논리나 명분을 떠나 의원 수가 늘어난다는 것에 국민들의 반감이 높습니다. 국민들은 의원 숫자를 줄여라 하는 판에, 오히려 늘이겠다는 것이니까요.

선거는 민주주의에서 꽃입니다. 선거를 통해 민의를 정책에 반영할 수 때문입니다. 국가가 선거비용을 댑니다. 선거 날은 임시 휴일이니, 우리나라는 하루 평균 생산액 3조 원 이상을 포기합니다. 민의를 대변할 사람을 뽑는 비용이 엄청납니다. 기업은, 투표하는 데 1시간이면 되는 사람도 하루를 통째로 쉬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업을 위한 정책 배려는 없습니다.

선거 때마다 주요 정당에서 공천하면서 여러 문제가 나타났습니다. 각 정당은 공천하는 원칙과 기준을 지키지 않았고, 민의와 동떨어진 사람을 공천한 적이 많았습니다. 정당이 유권자를 안중에 두지 않아도, 유권자가 대응할 길이 없습니다. 유권자로서는 그저 투표장에 가지 않는 것으로 생각을 표시할 뿐입니다.

<‘뽑지 않음’과 ‘지지 정당 없음’칸을 만들어서>

지역구는 그 지역민의 뜻을 담되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을 국회의원으로 뽑아야 합니다. 공천을 받아 뛰는 사람 가운데 지역민의 바람과 상관없는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현 제도는 지역구에서 한 사람은 꼭 뽑아야 합니다.

선거에 나온 사람 누구도 맘에 들지 않아 뽑고 싶지 않아도 이를 선거에 반영할 방법이 없습니다. 선거는 가장 좋은 사람이 없다면 그다음 좋은 사람을, 가장 싫은 사람 대신에 덜 싫은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강요합니다. 이런 논리는 받아들이기 싫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없고, 싫어하는 사람뿐이고, 어느 누구를 뽑아도 나라를 위해 일할 것 같지도 않은 사람뿐인데도 왜 한 사람은 꼭 뽑아야 합니까? 총선에서 못 뽑으면 보궐선거에서 제대로 뽑는 게 더 낫습니다.

뽑을 사람이 없다면 뽑지 않을 권리를 주는 게 민주주의 원리가 아닐까요? 투표용지에 ‘뽑지 않음’과 ‘지지 정당 없음’칸을 만듭시다. 이 칸에 투표한 사람의 뜻을 반영합시다.

<'지지 정당 없음'에 투표하면, 비례대표 의원 수를 줄인다>

비례대표선거는 전문분야나 직능분야 대표를 정치에 참여시키기 위한 제도입니다. 지지 정당 투표로 비례대표를 뽑습니다. 정당에서 내놓은 공약을 보면 도대체 찍고 싶은 정당이 없는 데도 투표해야 하고, 투표한 사람만 모은 득표율로 비례대표를 배정하면 민주주의 정신에 어긋납니다. 이럴 때에는 ‘지지 정당 없음’칸을 만들어 ‘없음’에 찍은 투표율에 해당하는 수만큼 비례대표를 뽑지 않도록 제도를 고칩시다. 현재 비례대표가 47명일 때 ‘지지 정당 없음’에 찍은 사람이 11%라면 국회의원 5명을 줄일 수 있습니다. 의원 수를 줄이기 싫으면 정당이 진정 나라를 위한 정책을 마련하겠지요. 각 정당이 차지한 의원 수와 유권자가 줄인 의원 수는 정당을 평가하는 지표가 될 것입니다.

이번에 선거제도를 바꾸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하더라도 ‘지지 정당 없음’칸을 만들면 유권자의 선택에 따라 의원수를 줄일 수 있습니다. 현재 300명 정원에서 ‘지지 정당 없음’이 5%만 나와도 15명을 줄일 수 있으니, 지역구에서 늘어나는 수를 감안하더라도 전체 300명은 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꼴 보기 싫다며 투표를 포기하는 유권자도 줄어들고, 오히려 투표하겠다고 벼를 것 같습니다.

‘뽑지 않음’과 ‘지지 정당 없음’칸은 정당에게 제대로 된 인물을 공천하고, 제대로 된 정책을 내 놓고, 실천하라는 유권자의 뜻을 전하는 수단이 될 겁니다. 이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요, 진정한 선거 혁명이 아닐까요?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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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고영회

진주고(1977),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1981), 변리사, 기술사(건축시공, 건축기계설비). (전)대한기술사회 회장, (전)대한변리사회 회장, (전)과실연 공동대표,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 mymail@patinf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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