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프랑스영화제'를 들어보셨나요? [정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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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프랑스영화제'를 들어보셨나요?

2019.11.25

우리나라를 무슨무슨 공화국으로 빗대어 표현하는 현상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띕니다. 겨울공화국, 검찰공화국 등으로 시작하여, 예능공화국, 먹방공화국, 아이돌공화국 등등. . . 여기에 아마도 축제공화국이란 말을 덧붙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된 이후 도, 시, 군, 읍 등 각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많은 축제를 만들어 운영해오고 있으니 그런 말을 할 만도 하다 싶습니다..

그러나 축제가 많은 것에 대해 저는 보다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축제가 많다는 걸 굳이 나타내려면 축제공화국보다는, '가무의 나라'로 불려온 전통에 따라 '축제의 나라'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가무는 하나의 예술 형식이므로 가무가 많은 것은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점에서 좋은 일이라 생각됩니다. 가무의 나라와 축제의 나라를 한편에 둔다면 은둔의 나라, 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그 반대편이 되겠지요. 언뜻 보면 한 나라, 한 겨레 안에서 기질적 특성이  두 갈래로 나뉘는 것 같지만 실상은 하나의 큰 타래, 큰 결 속에 상호의존적으로 함께하는 현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든 저렇든 우리나라에 축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며 이에 대해 예산 낭비 운운하며 비판을 하기도 하지만 축제는 말릴 수 없는 인간의 사회적 활동입니다. 축제는 공동체의 행사로서 단체들의 기획이기도 하지만 개인 끼의 발현이기도 합니다. 나왔다가 없어지는 축제도 적지 않지만 십 년, 이십 년 또는 그 이상으로 지속되는 좋은 축제도  있습니다. 우선 생각나는 것이 부산국제영화제,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평창대관령음악제, 서울국제음악제(simf), 통영국제음악제(timf) 등 유수한 축제들은 시일이 갈수록 성황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에 더해 제주의 몇몇 축제도 세월을 따라 더욱 잘 정착돼 오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오래된 순으로 제주국제관악축제(매년 8월), 제주설문대할망페스티벌(매년 5월), 그리고 제주프랑스영화제(매년 11월)가 그것입니다. 제주에서 좋은 축제가 그렇게 많은가, 하고 의아해하실 분도 계시겠지요. 그건 제가 축제 전문가가 아니라 제주 거주민으로서 이 축제들에는 늘 참관을 해서 세세히 잘 알고 있어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은 최근의 축제인 제주프랑스영화제(Festival du Filme Ffancais de Jeju)에 관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엊그제 11월 21에 개막하여 바로 오늘 25일까지 계속되는 영화 축제입니다.

왜 프랑스영화축제인가, 하고 의문을 가질 분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영화 하면, 미국, 프랑스, 인도, 홍콩, 그리고 한국을 꼽으니까요. 미국 영화는 축제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우리 영화 시장에 범람하고 있습니다. 미국 다음으로 영화 강국이 프랑스입니다. 그런데 영화라는 종합예술 형태가 처음 시작된 곳이 또한 프랑스라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저도 엊그제 개막식에서 필립 르포르(Philippe Lefort) 주한프랑스대사로부터 직접 들어 이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열 번째를 맞는 제주프랑스영화축제(FFF)에 처음으로 주한 프랑스대사가 문화원장, 문화담당관 등 5,6명의 대표단을 대동하고 참석하였습니다. 서울에서, 또 다른 지방에서도 관심 있는 영화인들이 참석하여 심사위원을 맡거나 시네포럼을 열기도 했습니다.

인구 40만 여의 중소도시에서 이런 국제적 행사를 해왔고 해가 거듭될수록 더욱 크고 알차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은 한편으론 놀라운 일이기도 합니다. 아주 작은 사단법인인 제주국제문화교류협회(회장 고영림)가 벌여온 일이니 참으로 가상합니다. 물론 제주도라는 지자체의 도움이 었고, 프랑스대사관을 비롯한 여러 단체와 개인들의 후원과 성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겠지만 프랑스 유학을 했던 한 제주 여성의 열정과 끈기와 고집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의 끈질긴 노력으로 국내 유일의 프랑스영화제이자 특정국가 이름을 딴 국내 유일의 영화제로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입니다.

대학의 학생 시네마클럽으로 시작하여 이렇게 발전한 이 영화제에 대해 ''제주에 이런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거친 비판과 조롱이 있었고 이에 더해 자금부족 등 온갖 역경이 있었지만 이런 악조건을 거치면서도 10회에 이르기까지 일익 번창해 오고 있습니다. 이 사실만 봐도 국제문화교류 확대를 갈망하는 제주인들이 대단한 성취를 이룬 것이며 제주의 국제교류 진전, 국제도시화에 큰 걸음을 내디딘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제에 여러 해 참관해온 저도 이번 개막식과 개막 작품 상영을 보고는 적이 놀라고 말았습니다. 축제답게 개막식은 한 예술단체의 공연으로 시작되었는데 국악과 양악을 혼합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이 작은 단체는 이름도 특이하게 소리께떼(Soriquete)라고 하며 창단한 지 3년이 되었다는데 이 단체가 제주에 둥지를 튼 것은 매우 현명한 결정으로 보입니다. 제주에는 이런 예술적 끼가 넘치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고 이를 향수할 여유 있는 사람들이 또한 넘친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65만을 상회하는 전체 인구에 비해서 그렇다는 말이죠. 이 단체는 해녀 노동가를 시작으로 플라멩고 댄스를 자연스럽게 등장시키는 혼합 프로그램들을 선보였는데 매우 창의적이었으며 국경을 초월하는 문화교류를 실감하게 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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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대사의 축사에서는 과거 저의 외교관 시절을 상기하는 뭉클한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한국과 프랑스는 문화강국으로 공통성이 많으며 함께 해야 할 일이 많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한국의 남단에 자리한 이 아름다운 작은 섬에서 프랑스영화제를 10년째 열어 오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잘 증명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객석의 복도에까지 꽉 들어찬 관중의 열기를 보고 거의 압도될 만큼 놀라워하면서 프랑스문화에 대한 높은 관심에 만족을 감추지 못하였습니다. 이들이 내려온 덕분인지 이어진 축하 리셉션에는 고급 샴페인이 나와서 저도 오랜만에 멋지게 프랑스 식으로 묵을 축일 수 있었습니다. 또 제주에 거주하는 적지 않은 프랑스인들이 나온 덕에 낡고 잠재돼 있던 저의 프랑스 말도 거침없이 살아나오는 이변(?)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번 영화제에 특별히 초청을 받아서 간 저로서도 이른바 문화외교 또는 공공외교에 열을 올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한가지  특기할 것은 이번 영화제부터는 장단편 중 우선 단편에 한해 일방적인 선정이 아니라 국제공모를 통해 상연 작품을 결정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시도해본 공모에서 프랑스어 사용국들로부터 560여 편의 단편영화가 출품되었다고 하니 제주프랑스영화제의 성가(聲價)를 짐작할 만합니다. 5일 간의 영화제 마지막 날에 우수작을 선정해 발표할 예정이라 고 합니다. 그 정도로 제주프랑스영화제는 의미 있고 실속 있는 국제영화제가 된 것입니다. 다만, 지리적, 시간적 제약으로 인해 저를 포함한 관심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은 작품을 볼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뿐입니다.

부산영화제는 이미 세게적인 명성을 얻었고 이 외에 각 지방의영화제들도 비교적 성공적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영화라는 종합예술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선도적인 역할을 해오고 있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현상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는 또한 문화와 예술에 대한 우리나라의 수준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다른 제주의 축제에 대해서도 잠깐이나마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주의 대표 국제축제로 24년을 이어온 '제주국제관악제'(조직위원장 현을생 전 서귀포 시장) 또한 해를 거듭할수록 그 폭과 깊이를 더해오고 있습니다. 지난 8월 한여름 2주 간 개최된 제주국제관악제에는 세계 각국에서 4천여 명이 참가해서 그야말로 대성황을 이루었습니다. 제주의 수려한 풍광으로 인해 참가자들은 대부분 가족을 데리고 오기도 합니다. 이 특별한 음악축제는 하나의 홀에서만 하는 음악제가 아니라 실내와 실외를 오가며, 또 제주시뿐만 아니라 서귀포시에서 동시에 벌이는 축제입니다. 공공 장소뿐만 아니라 서귀포의 명물인 세계자동차피아노박물관 정원에서도 개최되며 관광객이 몰리는 공원이나 해변에서도 개최됩니다. 작년부터는 해녀가무단과 한 해외 관악그룹 간 협연이 성사되어 유럽 등지로부터 초청을 받아 공연함으로써 국제적 진출이라는 드문 성과를 내기도 하였습니다.

2009년에 문을 연 제주돌문화공원서 매년 5월에 개최하는 '설문대할망페스티벌'은 한 달 간 계속되는 장기 축제입니다. 전국과 세계 각국에서 많은 단체와 개인이 초청으로 또는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가무와 토론을 벌이는데 통상의 가무가 아니라 명상과 치유를 주제로 하는 퍼포먼스들입니다. 하이라이트는 '설문대할망제'로서 웬만한 산신제를 넘어서는 대규모 제사 의식입니다. 신비롭고 거대한 제단 앞에 9명의 여성 제관이 나란히 서서 헌시, 헌다, 헌물 등으로 진행하는데 그 내용과 형식면에서 큰 볼거리라고 하겠습니다. 여성 제관 9명 중 보통 4, 5명은 외국에서 온 전문직 여성들이며 국내 여성들도 도내외에서 특별히 선정된 여성지도자들입니다. 제관들은 제주 갈옷 스타일의 제의복 차림으로 제를 올립니다. 제주에서는 이 자리에 서는 것이 뭇 여성들의 갈망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대체 '설문대할망'이란 게 뭔가, 하고 궁금한 생각이 드시겠지요. 설문대할망은 제주 창조신화의 주인공으로서, 말하자면 희랍 신화의 제우스에 비견될 모성(母性)신화의 중심인물입니다. 이 공원과 축제의 총괄기획자인 백운철 선생에 의하면 모성신화에 바탕한 이 축제는 과도한 문명 발달로 인해 위축되고 왜곡된 현대인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데에 그 취지가 있다고 합니다. 제주의 돌을 모티브로 하는 30만 평(곶자왈 휴양림 등을 포함한 총 부지는 130만 평)의 돌문화공원에는 설문대할망 제단과 제주의 전통적 삶을 구현하는 신화적, 생활적 재현물 외에 내년에 개관될 거대한 설문대할망전시관이 있습니다. 내년 이 전시관의 개막을 계기로 설문대할망축제는 새로운 도약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축제란 결국 잔치이며 공동체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창조적인 생각과 창의적인 활동을 결집하는 장소이자 기회라 봅니다. 물론 먹고 마시고 노래 부르고 춤을 추는 등의 삶의 본능적인 행위가 빠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축제의 본질은 먹고 마시는 것보다는 현실에서 다 지 못하는 인간 본성의 예술적 감성을 발휘하고 향수하는 곳이므로 좋은 축제는 그만큼 삶에 에너지를 제공한다고 하겠습니다. 전국에서 시행되는 많은 축제들이 형식적인 과시(誇示)에 그치지 않고 내실이 있도록 운영 주체나 참가 관중 할 것 없이 노력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모든 축제가 삶의 질을 높이고 문화 전승과 문화 확산의 기회와 장소가 되도록 '축제공화국'이 아니라 '축제의 나라'로서 거듭나기를 기대해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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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달호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줄곧 외교관으로 일했으며 주 파나마, 이집트대사를 역임했다. 은퇴 후 제주에 일자리를 얻는 바람에 절로 귀촌을 하게 되었고, 현재 제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한라산 자락에 텃밭과 꽃나무들을 가꾸며 자연의 품에서 생활의 즐거움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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