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세상과 단절되어 사는 외톨이 [황경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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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세상과 단절되어 사는 외톨이

2019.11.12

일본어 ‘히키코모리’(ひきこもり)는 '집에 틀어박힘'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나라 사회문제 관련 기관에서는 이미 국제 학술어로 정착된 ‘히키코모리’와 우리말로 풀어 쓴 ‘은둔형 외톨이’라는 두 용어를 같이 쓰고 있습니다. 최근에 와서야 이 ‘히키코모리’에 관한 우려가 우리나라에서도 확산되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이미 30여 년 전부터 큰 사회문제로 등장하여 이에 대한 정부와 학계의 관심도 큽니다.

비교적 부정적 인상을 주는 ‘게이샤’(기생), ‘야쿠자’(조직깡패), ‘하라키리’(할복자살) 등 많은 일본어 낱말이 영국의 권위 있는 옥스포드(Oxford) 영어 대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것처럼 이 ‘히키코모리’도 일본어 발음 그대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일본에서 이 ‘히키코모리’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한 것은 30여 년 전입니다. 일본 총무청은 1990년에 ‘청소년백서’를 발표하여 청소년의 장기 등교거부와 ‘히키코모리’ 문제를 보고했습니다. 이때만 해도, ‘히키코모리’는 청소년의 문제라고 인식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금년 3월에 일본 내각부(內閣府)가 발표한 보고는 40세~64세의 중고년 '히키코모리’가 추정치로 약 61만 명에 달한다고 했습니다. 2016년에 발표한 15세~39세의 청소년 ‘히키코모리’ 추정수 약 54만을 합치면 115만이 돼 국민을 놀라게 했습니다.

‘히키코모리’는 그 성질상 통상의 인구조사에서 정확한 통계를 얻기가 어려워, 일정 지역의 표본조사를 통해 전국 숫자를 추정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고 당국은 밝혔습니다. ‘히키코모리’ 문제를 20여 년 연구해 온 일본 쓰쿠바(筑波)대학 사이토 타마키(齊藤環) 교수는 정부 당국의 추정수의 약 2배인 200만 이상이 ‘히키코모리’ 해당자이며 이 중 반 이상이 중고년(中高年)일 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히키코모리’에 관한 여러 권의 책도 낸 사이토 교수에 의하면 일본 다음으로  ‘히키코모리’가 인구비례로 한국에 많고, 중국 타이완 홍콩 등 유교문화국으로 경제발전을 어느 정도 달성한 국가들에 이 ‘히키코모리’ 문제가 크다고 했습니다. 성인이 되어도 가족과 동거하는 문화를 가진 나라에 이 문제가 많다고 말한 사이토 교수는, 성인이 되면 독립하여 생활하는 서구문화의 나라에서는 이 문제가 비교적 적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유럽 국가 중에서는 스페인과 이탈리아에 ‘히키코모리’가 비교적 많은데, 일본, 한국, 스페인, 이탈리아 네 나라의 공통점은 청년이 부모와 동거하는 율이 인구의 70%를 넘는다는 점이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일본에는 ‘히키코모리’ 수가 선진국 중 가장 많은 반면 홈리스(homeless) 수는 가장 적어 정부의 통계에서도 5천명 미만이고, 개인주의가 우선하는 영국에는 26만명, 그리고 미국에는 백만 이상의 홈리스가 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에 의하면 ‘히키코모리’ 문제는 가족주의 대 개인주의 구도에서 관찰해야 하며 젊은이의 거처가 ‘집안이냐 노상(路上)이냐’의 차이에서 문제해결을 연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홈리스는 생활환경이 나빠 평균수명이 50 정도인 것에 비해 ‘히키코모리’는 주거환경이 좋아 평균수명이 80을 넘을 것이라고, 사이토 교수는 덧붙였습니다.

올해 일본에서 ‘히키코모리’ 문제가 특히 화제에 오른 것은 지난봄에 나흘 간격을 두고 ‘히키코모리’ 관련의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특히 76세의 전직 정부 고관이 44세의 ‘히키코모리’ 아들을 흉기로 살해한 사건은 평화스럽던 가정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매스컴의 대대적인 취재 대상이 되었습니다.

특히 이 교양 있는 아버지가 ‘히키코모리’ 아들이 근처 초등학교 운동회의 확성기 소리가 너무 시끄럽다고 불평하면서 “죽여버리겠다”고 하는 말을 듣고, 나흘 전의 ‘히키코모리’ '묻지마' 살인사건을 연상해 타인에 일어날지도 모를 불행을 예방키 위해 이 끔찍한 사건을 저질렀다는 이야기로 많은 사랍의 동정을 샀습니다.

‘내가 죽이지 않으면 이 아이도 그와 같은 끔찍한 사건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강박감에서 자기 아들을 죽였다는 이 사건 후 많은 사람이 이 전직 농수산성 차관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전 오사카(大阪) 시장이며 인권 변호사인 하시모토 토루(橋下徹) 씨도 트위터에 “나도 같은 입장이 되면 그와 같은 선택을 했을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이 사건 나흘 전에 일어난 것은 51세의 ‘히키코모리’가 등교하는 초등학생이 탄 스쿨버스를 습격하여 두 사람을 죽이고 10여 명의 다른 아이와 보호자에 부상을 입히고 범인 자신은 자살한 사건이었습니다.

이처럼 일본에서는 ‘히키코모리’가 이제는 청소년만의 문제가 아니고 이미 중고년을 포함한 모든 연령층의 문제로 확산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8050’이라는 유행어도 생겼습니다. 즉 “80대의 노부모가 50대의 ‘히키코모리’ 자식을 돌봐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금년 봄의 ‘히키코모리’ 관련 살인 사건 이후 ‘히키코모리’를 범죄예비군으로 보는 국민이 많아졌지만, 이것은 틀린 생각이라고 사이토 교수는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이 두 사건은 20년 만에 일어난 ‘히키코모리’ 관련 사건이라고, 그는 지적했습니다.

‘히키코모리’의 일반적 정의는 ‘집에만 틀어박혀 외부와의 연락을 6개월 이상 단절하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인터넷과 휴대전화, 텔레비전 등이 발달한 오늘날, 이 낡은 생각은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고, 사이토 교수는 말합니다.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古市憲壽) 씨는 잡지 분게이슌주(文藝春秋)에 쓴 글에서 일부 ‘히키코모리’ 관련 범죄가 세상을 놀라게 했지만, 매년 3천5백 명 이상이 사망하는 교통사고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말하고, ‘히키코모리’는 결코 범죄예비군이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히키코모리’ 당사자 중에 인터넷을 통해 언론활동을 하거나, 소설이나 음악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가정에 있으면서도 사회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은 ‘8050’ 문제에 약간의 희망을 준다고도 했습니다.

지금 사이토 교수가 우려하는 것은, ‘히키코모리’의 범죄사건이 아니라 멀지 않은 장래에 일본에 그들의 대량 고독사 현상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점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과거에도 2030년쯤에 일본은 ‘히키코모리’ 장수사회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지금 50대 중반의 ‘히키코모리’ 수만 명이 연금 수급자가 될 것인데, 이들 수많은 사람이 연금 수급신청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의 ‘히키코모리’ 지원 대책이 훨씬 더 확충되어야 한다고 그는 말합니다.

과문의 탓인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의 ‘히키코모리’에 관한 추정 통계나 복지대책이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듯 합니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통계청의 추산이라고 하며 우리나라의 ‘히키코모리’ 가능한 인구수가 약 31만이라고 한 글을 본 적은 있습니다. 이웃 나라의 심각한 ‘히키코모리’ 실상과 이에 대처하는 정부와 사회의 대응을 ‘타산의석’(他山의石)으로 삼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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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황경춘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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