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가 없어 '구직단념' 54만명 역대 최대

[단독] '경제허리' 3040 구직단념자 30%↑…잠재성장률 갉아먹고 있다

      올해 상반기 취업을 포기한 구직단념자가 월평균 54만 명을 넘어서며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이 중 일자리가 없거나 없을 것 같아 구직활동을 접은 사람은 42만 명에 육박했다. 경기 침체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고용시장이 위축된 결과로 분석된다.

18일 추경호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이 통계청 경제활동인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상반기 월평균 구직단념자는 54만4238명이었다. 현재 기준으로 통계가 작성된 2014년 이후 최대치다. 지난 정부 말기인 2016년 45만 명대이던 구직단념자는 작년 상반기 처음으로 50만 명을 넘어선 데 이어 올해도 8.7% 급증했다. 구직단념자는 과거 1년 안에 구직활동을 한 경험이 있지만 최근에는 포기한 사람이다.


개인 사유가 아니라 나빠진 취업시장 상황을 이유로 구직을 단념한 사람은 41만9286명(전체의 77.0%)으로 작년보다 12.3% 늘었다. 경제의 ‘허리’인 30대와 40대 중 이 같은 사유로 취직을 포기한 사람은 각각 33.4%, 38.9% 급증했다.



한국은행의 경고…“성장률에 대한 노동투입 기여도 감소”

경기 수원에 사는 양모씨(30)는 요즘 매일 오후 두 시간씩 학원에서 제빵기술을 배우고 있다. 작년 2월 수도권 한 대학의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뒤 정유·화학·화장품회사 30여 곳에 입사 지원서를 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올초엔 잠시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양씨는 취직을 단념하고 제과제빵 자격증을 따는 데 전념하고 있다. 그는 “‘취직 전쟁’에 다시 뛰어들기가 두렵다”고 토로했다.

“일자리 없어”…문재인 정부 들어 구직단념자 급증
양씨처럼 취업에 여러 번 실패해 직장 잡기를 아예 포기한 구직단념자가 급속히 늘고 있다. 추경호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이 18일 분석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월평균 구직단념자는 사상 최대인 54만4238명으로, 3년 전인 2016년 상반기(44만6727명)와 비교해 21.8% 급증했다.



특히 악화된 고용 시장 상황을 이유로 구직활동을 그만둔 구직단념자가 가파르게 늘어났다. 통계청 조사 때 취업 포기 이유에 대해 “과거 일자리를 찾아 봤지만 없었다” “전공·경력에 맞는 일거리가 없다” “주변에 일자리가 없을 것 같았다” 등으로 답한 사람들이다. 이런 ‘외적인 사유’로 구직을 단념한 사람은 41만928명으로 작년(37만3486명)보다 12.3% 늘어났다.

‘교육·기술·경험 부족’ ‘나이’ 등 개인적 이유를 든 사람은 지난해 12만7412명에서 올해 12만4952명으로 1.9% 감소했다. 외적 사유에 따른 구직단념자는 통계 작성 방식이 지금처럼 바뀐 2014년 이후 36만~37만 명대를 유지하다가 올해 처음으로 40만 명을 넘어섰다. 가족 생계를 책임지는 30대와 40대 가운데 이런 사유로 구직을 포기한 사람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30대는 7만7737명으로 작년보다 33.4% 급증했고, 40대도 38.9% 증가한 5만7023명으로 집계됐다. 30대에선 ‘전공·경력과 일자리의 불일치’를 이유로 취직을 단념한 사람이 작년보다 107.1%나 급증했다.



남성일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2년간 최저임금이 급속히 인상된 데다 정부가 기업의 투자·고용 확대를 독려하는 대신 재정을 투입해 일자리 수를 늘리는 데 급급하다 보니 나타난 결과”라고 말했다. ‘일자리 사정 악화→장기 구직 후 취업 실패→취업 포기’의 악순환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급증한 구직단념자, 경제활동참가율 떨어뜨려

전문가들은 급증한 구직단념자가 경제활동참가율(만 15세 이상 인구 대비 경제활동인구 비율)을 떨어뜨리고, 이는 곧 경제 기초체력을 의미하는 잠재성장률을 낮추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행은 2019~2020년 연평균 잠재성장률 추정치를 종전 2.8~2.9%에서 지난달 2.7~2.8%로 0.1%포인트 낮췄다. 한은은 추 의원에게 제출한 서면 답변서에서 잠재성장률 하향 조정 이유에 대해 “구직단념자 증가 등으로 경제활동참가율 증가세가 둔화하면서 경제성장에 대한 ‘노동 투입’ 기여도가 하락한 점을 반영했다”고 했다.



한국의 경제활력을 나타내는 경제활동참가율은 지난해 63.1%로 전년 대비 0.1%포인트 떨어졌다. 연간 기준으로 경제활동참가율이 하락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0.7%포인트 하락) 이후 9년 만이었다. 취업자와 실업자를 더한 경제활동인구 증가율은 2010년 이후 8년간 15세 이상 인구 증가율보다 높게 유지해 오다가 지난해 역전됐다. 올 들어 정부의 재정 투입으로 노인층 일자리가 늘면서 소폭 반등하긴 했지만, 작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추 의원은 “고용시장의 활력이 금융위기 수준까지 떨어진 상황인데도 정부는 ‘실업률 등 고용지표가 개선되는 추세’라는 허무맹랑한 주장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비경제활동인구에 속하는 구직단념자는 아예 일할 의사가 없는 사람으로 간주돼 공식적인 실업률 통계에서 빠진다. 구직단념자가 많아지면 실업률(경제활동인구에서 실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낮아질 수 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30, 40대에서 구직단념자가 증가한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경제가 활기를 잃었다는 뜻”이라며 “정부가 고용 상황을 좀 더 엄중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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