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한국경제, 국가 비상사태다"

장하준 "한국경제, 국가 비상사태다" 


케임브리지대 현지 인터뷰

장하성 사촌


  “국가 비상사태라고 해야 한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가 규정한 한국의 경제 상황이다. 그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케임브리지대에서 한 인터뷰에서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받아들이는 게 해결의 첫걸음"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좌파는 최저임금 집착

우파는 규제완화 매달려

모두 변죽 울리는 소리

소득주도성장은 영양제일 뿐

체질개선 얘기 없는 게 문제"


근데 왜 이제 와서 이런 얘기할까?

문제가 생긴지는 오래됐는데

알게 모르게 장하성에 조언

이제 그만두니 입 열어

(케이콘텐츠편집자주)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장하준 교수


장하성 정책실장의 도우미 '장하준'

장하준 장하석 그리고 장하성

edited by kcontents


장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해 “소득주도 성장과 최저임금 인상이 나쁜 건 아니지만 대증요법"이라며 “영양제를 맞았으면 이어 체질 개선을 해야 하는데, 그런 얘기는 없다"고 지적했다. 내년 최저임금 추가 인상에 대해선 “자영업자 비율이 6%인 미국과 달리 한국은 25%이고 영세해 최저임금 인상을 흡수할 여력이 없다"며 “취지에 찬성하지만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너무 서둘렀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한국 경제의 문제는 재벌이 너무 많이 가져가서도 아니고, 규제가 너무 많아서도 아니다"며 “20년간 쌓인 투자 부족과 신기술 부족으로 주축 산업이 붕괴한 게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스웨덴 사례 등을 보면 진영 논리와 글로벌 스탠더드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길을 꾸준히 간 나라가 성공한다”며 “정부와 재벌이 대타협을 하고, 20~30년 후 복지국가를 건설해 안전망을 확보한다는 목표로 우리 현실에 맞는 모델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문답. 

  

한국의경제가 어려운데 내년도 어둡다는 전망이 많다.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고 최저임금 때문에 생긴 일도 아니다. 20년간 투자 안 하고 중국에 다 먹혀서다. 울산에서 보듯 중요한 일자리가 무너지고 있다. 김대중, 이명박, 노무현, 박근혜, 문재인 정부 모두 연결된 것이다. 외환 위기 이후 투자를 많이 한 것 같지만, 설비투자가 반 토막 났다. 70~80년대 자동차, 조선, 반도체 그리고 90년대 휴대전화 이후 한국이 새로 만든 게 없다. 중국에 확실히 앞선 것은 반도체뿐인데 중국 정부의 집중 정책으로 그것도 얼마 안 남았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 포용적 성장을 추진 중인데. 

“분배를 평등하게 하고 소득 수준이 낮은 이들도 소비하게 되니 단기적으로 생산에 도움이 돼 나쁜 건 아니지만 영양제 주사 하나 놔준 것이다. 그런데 체질 개선 얘기는 없다. 기업도 규제 완화만 말하는데, 반도체와 휴대전화를 중국에 따라잡히는 게 규제 때문이 아니다. 좌파는 최저임금에 집착하고 우파는 규제 완화에 집착하는데 모두 변죽 울리는 소리다.” 




대안이 뭐라고 보나. 

“국가 비상사태라는 인식을 가져야 해결책이 찾아진다. 중국이 빨리 따라오니 기업이 신기술 개발하고 투자해야 하는데, 왜 안 되는가를 분석하다보면 기업 정책 얘기가 나올 것이다. 또 이를 위해선 유능한 젊은이들이 일자리 불안 때문에 의대나 법대, 공무원 시험으로만 몰리지 않고 공대로 가게 하려면 복지국가를 건설해 사회안전망을 잘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를 것이다.” 

  

한국이 참고할 모델로 스웨덴을 거론해왔는데. 

“성공한 나라는 정말 실용주의적이었다. 스웨덴과 핀란드가 성장과 분배를 잘 양립시킨 사례다. 스웨덴은 소득 분배가 세계에서 가장 평등하지만, 기업 집중도도 최고 수준이다. 발렌베리 그룹은 한 가문이 6대째 하고 있고 스웨덴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차지한다. 삼성과 현대차는 그에 비할 수도 없다. 스웨덴 정치권에선 기업이 투자 많이 하고 일자리 많이 늘리고 세금 많이 내면 되지 많이 가진 건 문제가 아니라는 의견이 많이 나온다. 좌우 진영 논리부터 깨야 한다. 산업 정책을 한다고 하면, 한국에선 과거 군부 정부가 해서 우파 정책이라고 보지만 영국에선 노동당 정부가 해서 좌파 정책이다. 복지국가를 만든 이도 보수정치의 대가인 독일의 비스마르크였다. 복지를 말하면 유럽에선 보수 정치로 보지만, 한국에선 빨갱이라고 여긴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왼쪽)와 동생인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 [케임브리지=김성탁 특파원]




복지를 늘리기만 해선 감당할 수 없다는 견해도 많다. 

“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화 속에서도 복지국가는 계속 늘어났다. 고령화 때문이다. 한국은 복지지출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멕시코 다음으로 꼴찌에서 2위다. 21.5%가 평균인데 한국은 10% 겨우 넘는다. 스웨덴 같은 나라에선 노동자가 구조조정에 목숨을 걸고 저항하지 않는다. 실업시 이전 월급의 65~75%를 받고 2년 교육을 거쳐 정부가 새 직장을 알선해주기 때문이다. 한국은 사회안전망이 없어 직장에서 잘리면 100에서 10으로 떨어지니 저항하는 거다. 스웨덴도 1920년대 파업률이 세계 최고였다. 1932년 사회당 집권 후 기업은 복지국가 조성을 받아들이고 노동자는 파업을 자제하는 타협을 한 뒤 20년 이상 걸려 완성했다. 30년을 내다보고 과거 경제개발을 했듯 한국도 30년 후 복지국가를 목표로 하면 못할 게 없다.” 

  

경제팀이 교체됐지만 그런 비전을 추진할 중심은 역시 대통령일 것 같은데. 

“우리 권력구조상 대통령이 가장 중요하다. 이젠 노동자도 고도 기술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으니 혁신은 온 국민이 같이하는 것이다. 삼성 갤럭시폰이 5파운드 싸다고 팔리는 게 아니니 기업도 임금 1000원 줄 것을 980원 주며 쥐어짠다고 되는 시대가 아니다. 정부가 초기에 대폭 투자하고 기업이 상용화하면서 기술 혁신을 이루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미국이 혁신을 잘하는 게 천재 몇 명이 있어서가 아니다. 미국처럼 조직화가 잘 된 나라가 없다.” 



김성탁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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