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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 버킷 챌린지 삐딱하게 보기
2014.09.04
지난 여름부터 시작되어 전 세계를 시원하게 만든 뜨거운 이벤트가 있습니다. 이른바 아이스 버킷 챌린지(Ice Bucket Challenge)라는 것입니다. 다음은 위키백과에 실린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 대한 설명입니다.
아이스 버킷 챌린지 혹은 ALS 아이스 버킷 챌린지는 사회 운동으로,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이른바 루게릭병)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기부를 활성화하기 위해, 한 사람이 머리에 얼음물을 뒤집어 쓰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2014년 여름에 시작된 이 운동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급격히 퍼져나가 하나의 유행이 되었다. 이 운동의 방식은 참가자가 동영상을 촬영하면서 시작된다. 참가자는 우선 동영상을 통해 이 도전을 받을 세 명을 지목하고, 24시간 내에 이 도전을 받아 얼음물을 뒤집어쓰던지 100달러를 미국 ALS(Amyotrophic Lateral Sclerosis)협회에 기부하든지 선택하도록 유도한다. 그 후 참가자가 얼음물을 뒤집어 쓰는 간단한 방식이다. 그러나 얼음물을 뒤집어 쓰는 것이 하나의 사회 유행으로 퍼져, 기부를 하면서도 얼음물을 뒤집어 쓰는 사람들도 상당수이다.
얼음물 샤워 캠페인이 급속도로 퍼지게 된 계기는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 참가한 크리스 크리스티(Chris Christie) 뉴저지 주지사가 페이스북 CEO 마크 주커버그(Mark Elliot Zuckerberg)를 다음 주자로 지목하면서부터였습니다. 이후 빌 게이츠, 제프 베조스(아마존 CEO), 래리 페이지(구글 CEO), 팀 쿡(애플 CEO)으로 이어지며 급기야는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도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 동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아이스 버킷 챌린지는 전 세계로 급속히 퍼지게 되었고 지금까지 300만 명 이상이 참여해서 1억 달러가 넘는 기부금이 모아졌습니다.기부 이벤트로서는 역사에 한 획을 그을 만큼 큰 성공을 거둔 셈입니다. 아이스버킷 챌린지의 성공 요인을 꼽자면, 가장 먼저 화려한 참가자들을 꼽을 수 있습니다. 개별적으로 접촉해서 광고 모델로 출연할 경우 수억 원의 출연료를 지불해야 하는 유명인들이 하루에도 수십 명씩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 동참했습니다. 만약에 아이스 버킷 챌린지를 상업광고로 기획했다면 광고 모델료로 수백 억 달러의 돈이 들었을 겁니다. 바꿔 말하면 아이스 버킷 챌린지 이벤트의 성공에는 출연료도 받지 않고 기꺼이 얼음물을 뒤집어쓴 유명인들의 고마운 마음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과연 아무런 대가 없이 이 이벤트에 동참했을까요? 우선 아이스 버킷 챌린지와 관련한 초기의 보도 행태를 보면, 우리나라 연예인 중 누가 가장 먼저 아이스 버킷챌린지에 동참했으며 그 다음 순서는 누구이며, 또 그 다음에는 누가 했다고 하는 식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아이스 버킷 챌린지를 통해 본 연예인 친목도를 그림으로 만들어 보여주기까지 했습니다. 마치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통해 대한민국 연예인의 영향력 순위를 알려주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오래전 오렌지 주스 광고 중에 ‘따봉’만 기억하고 정작 오렌지 주스 상표였던 '델몬트’는 기억하지 못했던 것과 같은 양상이었던 것입니다. 수많은 매체들이 아이스 버킷 챌린지를 하는 유명인에만 관심이 있었고 그것을 왜 하는지에 대해서는 비중있게 다루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일부 비판 여론을 의식하기 시작하면서 참가자들이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환우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는 모습을 화면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아이스 버킷 챌린지는 그 속성상 상당히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동참하는 이벤트입니다. 따라서 근엄한 의식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벤트의 본질에는 충실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생사의 갈림길에 선 루게릭병 환자의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한 기부 이벤트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벤트를 너무 희화화하거나, 이벤트를 빌미로 자신의 작품을 홍보하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등의 개인적 욕심을 채우는 것은 좋게 비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또 하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아이스 버킷 챌린지가 펼쳐지는 공간이 SNS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이벤트의 초기에 미국 IT업계의 CEO들이 대거 참여했는데 그들의 참여가 기폭제 역할을 했습니다. 페이스북과 유튜브, 그리고 구글은 전 세계 IT산업의 핵심입니다. 그들로서는 아이스 버킷 챌린지 같은 이벤트가 더없이 반가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이벤트가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되는 모습을 보며 자신들이 만들어낸 IT세상의 꼭대기에서 흡족한 웃음을 짓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이스 버킷 챌린지를 통해 마크 주커버그도, 빌 게이츠도 자신과 기업의 이미지를 좋게 만들었습니다. 얼음물 한 박스와 그들에게는 단돈 백 달러로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홍보효과를 누렸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단돈 100달러라고 한 이유는 빌 게이츠의 연간 수입을 초 단위로 환산한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 때문입니다. “빌 게이츠가 출근 길에, 길에 떨어진 100달러짜리 지폐를 봤습니다. 이때 그가 이 돈을 줍는 것이 이득일까요? 그냥 지나치는 것이 이득일까요? 그냥 지나치는 것이 이득입니다. 빌 게이츠의 경우는 길에 떨어진 100달러를 줍기 위해 몇 초의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 자신의 일을 계속하는 것이 더 돈을 벌기 때문이죠.”)국내의 연예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장면이 SNS뿐만 아니라 TV와 신문 같은 대중매체에 소개되면서 홍보효과를 누렸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무더운 여름날, 얼음물을 뒤집어 쓰며 100달러를 기부하는 이벤트를 통해 매스미디어에 자신의 모습이 수십 초에서 수 분 간 노출될 수 있다면, 그 기회를 마다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물론 순수한 마음으로 얼음물을 뒤집어 쓴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들에게 이득이 되는 이벤트였습니다. 연예인이 인기를 유지하는 비결은 대중매체에 좋은 이미지를 자주 노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이스 버킷 챌린지는 ‘윈-윈(win-win) 전략’의 대표적 성공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명인들에겐 좋은 취지에 동참하면서 자신을 드러낼 수 있게 멍석을 깔아준 고마운 이벤트입니다. 재난 지역에 구호 물품을 전달하면서 기념촬영을 하는 유명인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아이스 버킷 챌린지는 공식적으로 촬영을 허용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이벤트이겠습니까? 하지만 주목받지 못하는 곳에서 친구들끼리 아이스 버킷 챌린지를 하면서 100달러를 기부하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유행을 좇아서 스스로 즐기는 다소 특별한 기부행위일 뿐입니다. 그렇지만 바로 이런 보통 사람들이 아이스 버킷 챌린지의 진정한 주인공들입니다. 그들은 어떤 이익을 바라며 이벤트에 동참한 것이 아니었으며 자유의지에 따라 루게릭병 환자들의 고통을 나누어 가지려 했습니다. 나눔을 통해 세상이 행복해진다는 것을 알고 이를 실천하고 있는 보통 사람들이야 말로 세상을 지탱하는 힘이 되는 분들입니다.예수께서 “기도는 골방에서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많이 바뀐 것일까요? 이제는 선행이 이벤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벤트가 그냥 “루게릭병 환자를 도와주세요.”라고 말하는 것보다 수백 배 더 효과가 있다는 것이 입증됐습니다. 수치상으로 본다면 이벤트의 승리인 것입니다. 언제부터인가 누군가를 돕는 일에 이벤트가 가미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이벤트 없는 집단 선행은 상상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벤트의 전면에는 유명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선행의 주인공은 대중이고 수혜자는 도움이 절실한 이웃이어야 하는데, '선행 이벤트'가 되면서 이 이벤트를 통해 이익을 보는 또 다른 축이 생겼습니다. 이벤트의 주최측과 이벤트 용품을 제공하는 쪽이 생긴 것입니다. 이벤트에는 비용이 듭니다. 300만 명이 참가한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 쓰인 물과 얼음이면 아프리카에서 가뭄에 고통받는 300만 명의 어린이들이 최소한 며칠 동안 깨끗하고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아이스 버킷 챌린지의 최대 수혜자는 누구일까요? 지금 당장은 당연히 1억 달러의 기부금을 모금한 미국 ALS협회일 겁니다. 그런데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아이스 버킷 챌린지의 열풍은 사그라질 것입니다. 사람들은 언제 우리가 그랬냐는 듯, 또 무언가 새로운 것을 갈망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쯤이면 SNS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이벤트가 전 세계를 휩쓸기 시작할지 모를 일입니다. 그때에도 유명한 사람들은 앞다퉈 이웃을 돕자고 외치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유저들의 클릭 수를 세며 흐뭇해 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사람들은 말합니다. 어찌 됐든 이 이벤트를 통해서 루게릭병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고취하고 막대한 기부금과 강력한 홍보효과를 얻게 되었으니 좋은 일이 아니냐고 말입니다. 그리고 마치 아이스 버킷 챌린지를 비판하는 일이 루게릭병 환자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는 일로 비칠 것처럼 얘기합니다. 하지만 이벤트를 비판하는 것은 오히려 루게릭병 환자를 위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이스 버킷 챌린지가 그들에게 지속적이고 이성적인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진화하지 못하고 이벤트로 끝나게 되길 바라지 않는 마음에서 드리는 비판이기 때문입니다.
필자소개
박상도
SBS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TV 토요일 아침 '모닝와이드'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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