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의 지각 은퇴식이 주는 ‘메시지’

 

 

 

지난 18일 광주에서 열린 2014 프로야구 올스타전 경기 시작전 박찬호 선수의 은퇴식이 열려 박찬호

선수가 후배 선수들의 헹가래를 받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연합뉴스.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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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은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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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석 기자의 스포츠공감]‘스포츠 레전드’의 ‘행복한 안녕’

 

“꿈 같은 순간이다. 미국에 진출한 지 3년 됐을 때 루 게릭의 은퇴식 영상을 보고 ‘나도 고별사를 통해 한국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오늘 현실이 됐다.”

 

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거 ‘코리안특급’ 박찬호가 뒤늦은 은퇴식에서 가슴벅찬 감회를 담아낸 말이다.

 

지난 18일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그는 공식 은퇴식을 갖고 팬들과 영원한 작별을 고했다. 후배들이 제안해 한국야구위원회가 마련한 공식 은퇴행사에서 2012년 한 시즌 뛰었던 고향팀 한화 이글스의 61번 유니폼을 입고 시구를 했다.

 

장맛비 심술에도 빛고을 팬들의 뜨거운 기립박수와 연호 속에 올스타 후배들의 헹가래까지 받은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고별 인사를 했다.

 

“야구장은 내 인생에서 학교와 같은 곳이었다. 야구는 제가 선택한 과목이었고 거기에서 많은 가르침을 얻었다. 고맙고 소중한 사람을 만났고 삶의 열정과 꿈, 도전, 인생 철학을 배웠다. 야구에 대한 열정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늘 잃지 않게 해준 대한민국 야구팬들에게 감사한다.”


 
지난 18일 광주에서 열린 2014 프로야구 올스타전 경기 시작전 박찬호 선수의 은퇴식이 열려 박찬호 선수가 후배 선수들의 헹가래를 받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연합뉴스.무단전재-재배포금지)    


1920~30년대 홈런왕 베이스 루스와 함께 그 유명한 ‘살인타선’을 형성해 미국 메이저리그의 양키스 전성시대를 열었던 루 게릭의 고별사를 생생히 기억하는 박찬호였으리라.

 

“제게 닥친 불운에 대해 잘 알겠지만 지금 이 순간, 나는 지구에서 가장 운좋은 사나이다. 17년간 여러분들로부터 다정한 격려를 받았으니.”

 

루 게릭. 이유없이 운동신경세포가 죽어 근육이 급속히 마비되는 불치의 병을 얻어 1939년 4월 30일 연속출장 대기록을 2130경기로 마감해야 했다.

 

그리고 두달여 뒤 7월 4일 뉴욕 양키스타디움에서 이 유명한 고별사를 남겼고 2년 뒤 끝내 서른여덟 짧은 생을 마감했다. 사인이 된 그의 병에 붙여진 이름이 루게릭병이다.

 

메이저리그에서 17년간 7개 팀에서 아시아선수 최다 124승을 쌓은 박찬호로서는 한화에서 은퇴를 선언한 뒤 20개월 만에야 얻은 공식적인 이별 기회. 국내에서 올스타전에서 최초로 치러진 소중한 은퇴식에서 루 게릭처럼 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가장 행복한 안녕을 고한 것이다.

 

박찬호의 은퇴식보다 이틀 전 열린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선 뉴욕 양키스의 캡틴 데릭 지터가 은퇴행사를 가졌다. 지난해 역시 양키스의 수호신 마리아노 리베라가 올스타전에서 작별식을 치렀다. 그래서 박찬호의 첫 올스타전 은퇴식은 더욱 관심이 높아졌던 게 사실이다.

 

메이저리그는 레전드의 ‘은퇴투어’가 더 인상적이다. 시즌 초 은퇴를 선언한 프랜차이즈 스타들은 시즌 내내 원정경기마다 상대 구단으로부터는 기념비적인 선물을, 원정팀 관중들로부터는 기립박수를 받는 아름다운 은퇴식 문화가 정착돼 오고 있다.

 

영웅을 예우하며 영광을 기리는 행사도 다양하다. 지터의 경우 양키스 구단은 그의 발자취를 영원히 간직할 수 있도록 그가 밟은 양키스타디움의 흙까지 담아 상품으로 내놓으며 추억 스토리를 만들었다.

 

올해 국내에선 유독 레전드급 스타들의 은퇴가 많다. 프로야구의 경우 SK 포수 박경완이 지난 4월 성대한 은퇴경기를 가졌다. 반면 롯데 조성환은 팀의 가을야구를 위해 후배에게 1군 엔트리를 확보할 수 있게 캡틴다운 희생정신으로 8월 예정된 은퇴경기를 사양했다.

 

프로축구에선 이례적인 은퇴식이 눈길을 끌었다. 지난 3월 시즌 개막전에서 8년간 서울에서 활약했던 수비수 아디가 역대 외국인 K리거 중 가장 성대한 은퇴식에 감동의 눈물을 쏟았다.

 

19일에는 전북 수문장 최은성이 15년간 최장 ‘원(One)클럽’ K리거로서 활약했던 대전과 전북 서포터스의 합동응원 속에 은퇴경기를 갖고 마지막 장갑을 벗었다.

 

동계올림픽에서 국민들에게 가슴 뭉클한 감동을 선사했던 소치의 영웅들은 스스로 은퇴무대를 마련했다. ‘피겨퀸’ 김연아는 자신의 아이스쇼를 통해 현역생활에 ‘아디오스’를 고했다.

 

올림픽 최다 6회 출전에 빛나는 ‘빙상의 전설’ 이규혁은 자전 에세이 ‘나는 아직도 금메달을 꿈꾼다’ 출판 기념회를 통해 23년 선수인생과 작별했다.

 

지난 5월 현역은퇴를 선언한 ‘영원한 캡틴’ 박지성. 국내 프로축구 무대에서 활동하지 않아 박찬호처럼 K리그 공식 은퇴식은 없지만 2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K리그 올스타전에서 ‘팀 박지성’을 이끌고 팬들 앞에서 마지막 경기를 뛰며 아듀를 고하게 된다.

한국스포츠는 국민과 팬들에게 희망과 감동을 선사해준 투혼의 레전드에 대한 은퇴 예우 문화가 미흡한 게 현실이다.

 

때로는 소속팀과 마찰 때문에 서둘러 은퇴식에서나 팬들에게 손흔들며 떠나야 하거나, 더 뛸 수 있는데도 후배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며 은퇴경기를 선택하는 게 노장의 미덕으로 여겨지는 사례가 많다.

 

2010년 프로농구의 프랜차이즈 스타 이상민이 구단의 은퇴경기를 거부하고 팬클럽 주최 은퇴식으로 안녕을 고한 안타까운 사례도 있다. 

 

은퇴식, 은퇴경기가 감사패나 주고 영구결번하고 축포 쏘는 행사로쯤 여기는 시각이 남아 있는 한 한국스포츠는 인기와 실력은 늘어도 나이테가 희미한 나무처럼 성장하게 되리라.

 

이제 박지성이 9월 이후 새출발하는 한국대표팀의 A매치 홈경기에서 그동안 미루어뒀던 국가대표 은퇴식을 갖게될 것으로 보인다.

대한축구협회가 유럽과 월드컵에서 한국축구를 개척한 ‘영원한 캡틴’의 행복한 이별식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한국스포츠의 레전드 예우 수준을 얼마만큼 끌어올릴 수 있을지도.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루 게릭의 고별사 75주년을 맞은 지난 4일 지터 등 메이저리거들이 그 감동의 고별사를 낭독하는 영상을 만들어 팬들에게 전했다.

 

시간은 세기를 넘어 흘러도 어린이들에게 희망과 꿈을 선사한 레전드를 영원히 팬들과 함께 추억하는 미국 프로야구의 문화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야구의 게티스버그 연설’로 불리는 루 게릭의 고별사나, 박찬호의 빛고을 이별사가 전한 울림은 크다. 우리 스포츠 영웅들의 가장 행복한 안녕을 더 많이 보고 싶다. 

 
김한석 스포츠기자

스포츠서울에서 체육부 기자, 체육부장을 거쳐 편집국장을 지냈다. 스포츠Q 창간멤버로 스포츠저널 데스크를 맡고 있다. 전 대한체육회 홍보위원이었으며 FIFA-발롱도르 ‘올해의 선수’ 선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21회 이길용 체육기자상을 수상했다.

2014.07.25 김한석 스포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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