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흐름을 알 수 있는 서울대 인기학과의 추세

 

섬유·경공업 대세였던 60년대

서울대 잠사학·광산학과 인기

 

80년대 물리학·90년대 컴공 등

인기 학과와 주도 산업들 일치

 

  한국 최고 인재들이 모이는 서울대 자연계열 인기 학과와 한국 주력 산업 간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10일 매일경제신문이 종로학원과 유웨이교육평가연구소 등 입시 업체의 과거 입시 자료를 취합해 분석한 결과, 196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서울대 자연계열 인기 학과는 한국 주력 산업 발전과 밀접한 관련을 보이면서 10년 주기로 변화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2000년대 중반부터는 의대 열풍으로 이공계 인기가 식으면서 합격선 최상단은 의약계열 학과가 휩쓸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도한 의대 쏠림에 한국의 차세대 산업을 주도할 이공계 인재 배출이 위기에 처했다는 진단이 나오는 이유다.

 

외환위기 거친 2000년 이후엔

전문직 수요 확 늘며 의대 쏠림

최근엔 AI 관련 학과 확대 집중

 

 
NVIDIA 블로그  edited by kcontents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생들의 전공 선택은 취업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 선호 학과와 우리나라 주력 산업의 관련이 클 수밖에 없다"며 "특정 산업이 발전하면 해당 전공 분야가 각광을 받으며 일정 시간 갭을 두고 학과가 확장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경제 개발 초기 단계인 1960년대에는 화학공학·잠사(蠶事)·광산학과로 수험생이 몰렸다. 당시 정부는 노동력이 핵심인 섬유 산업과 식량 자급에 필요한 비료 산업을 집중 육성했고, 인재들이 관련 학과에 대거 지원했다. 1960년대 중반에 화학섬유 생산이 본격화한 가운데 저렴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내수에서 수출 산업으로 전환한 섬유 산업이 한국 경제 발전을 주도하는 주축 분야로 성장한 것이다. 서울대 잠사학과는 농과대 소속으로 1988년 천연섬유학과로 명칭을 바꿨으며 현재는 바이오소재공학전공으로 운영되고 있다.

 

1970년대 최상위권 수험생들은 기계공학, 화학공학, 전자공학 등 자연계열 학과들에 고루 지원했다. 의예과가 합격선 최상단을 차지한 시기도 있었지만 의대 외에 다양한 공학 전공으로 우수 인재가 몰렸다. 특히 1970년대 중동 건설 붐을 통해 각종 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기계공학과, 건축공학과 등이 인기를 끌었다. 이 시기는 한국에 대형 조선소들이 앞다퉈 설립되면서 조선업 성장이 본격화되는 때이기도 했다. 이만기 유웨이교육평가연구소장은 "의학계열 선호도가 그다지 높지 않아 자연계열이나 가정대학 합격선이 치의예과보다 높기도 했다"며 "당시 항공대도 높은 선호도를 보였다"고 말했다.

 

1980년대에는 물리학과, 전자공학과 등에 최고의 수재들이 몰렸다. 1985학년도 서울대 자연계열 최상위 학과 순위는 물리학과, 의예과, 전자공학과 순이었다. 물리학과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우수 인재들이 배출되면서 한국에서 전기·전자 산업이 활황을 보였다. 1980년대는 삼성전자 등 반도체 산업 발전이 본격화됐던 시기이기도 하다.

 

 

1990년대에는 정보기술(IT)이 발전하면서 물리학과, 기계공학과와 더불어 컴퓨터공학과 인기가 높아졌다. 1995학년도 입시 결과를 보면 컴퓨터공학과는 물리학과, 의예과 등에 이어 합격선 상위 5번째 학과로 자리매김했다. 이 소장은 "당시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와 전자공학과 등 공학 분야는 의예과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며 "다른 상위권 대학에서도 전자·전산 등 IT 관련 학과 선호도가 급격히 높아졌던 시기"라고 말했다. 당시 포스텍과 카이스트도 대부분 의예과보다 합격선이 높았다.

 

 

의대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가 기점이 됐다. '평생 직장'이란 개념이 사라지면서 안정성이 보장된 의대로 수험생이 대거 몰리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2000년대 중반부터는 전국 의학대학 합격선이 서울대 공대보다 높아지는 모습이 나타났다. 건축학과는 2000년대 중반 한때 인기를 끌었고, 수학교육·수리과학부 등 일부 학과는 최근까지도 상위권 수험생들의 지원이 이어지고 있지만 대다수 이공계 학과는 의약계열 학과에 밀린 상태다.

 

이공계 인재 배출에 대한 위기감에 최근 서울대를 비롯한 주요 대학들은 인공지능(AI) 관련 학과 등 첨단학부를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양 교수는 "한국 산업 발전을 이끌 우수한 인재를 육성하려면 정부가 10년 이상 중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대학이 인재를 배출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유주연 기자 / 권한울 기자] 매일경제

 

그리드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