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형모듈원전(SMR), 도시나 산단 근처 배치 쉬워진다
산단·도시 외곽에 ‘소형원전’ 전진 배치 길 열린다
원안위, SMR 전용 ‘비상계획구역(EPZ)’ 설정 방침
올해부터 EPZ 방법론 개발 착수…추후 법령 개정
EPZ 좁아지면 도시·산단 외곽에 SMR 가능성 커져
소형모듈원전(SMR)이 도시나 산단 근처에 배치될 수 있도록 원안위가 관련 법령을 손보기로 했다. 법령 개정 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된 SMR 첫 호기의 부지 물색 작업도 한결 수월해질 전망이다.
지난 17일 업계에 따르면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이런 내용이 담긴 ‘SMR 안전규제 준비현황 및 추진계획’을 최근 열린 전체회의의 보고 안건으로 올렸다. 이날 원안위는 SMR의 건설·운영 단계에서 검토 대상이 될 일부 법령을 선제적으로 개정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핵심은 방사선 비상계획구역(EPZ) 규정을 개정하겠다고 한 대목이다. EPZ는 방사능 누출에 대비해 대피나 소개 등 주민 보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설정된 구역을 말한다. 현행 법령에는 대형원전에 대한 EPZ만 규정돼 있는데, 앞으로 SMR의 설계특성에 맞는 EPZ를 따로 마련하겠다고 원안위가 전격 밝힌 것이다.
EPZ는 SMR 부지를 정할 때 핵심 규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현행법상 SMR은 뚜렷한 EPZ 규정이 없어 사실상 대형원전의 EPZ를 따르게 돼 있어서다. 현재 대형원전의 EPZ는 원전 반경 20~30km 내로 설정돼 있다. 이 경우 SMR도 대형원전과 마찬가지로 최대 30km 안에 거주하는 주민 동의와 인구 기준 등을 갖춰야 한다.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 위주로 SMR 부지를 찾다 보면 대형원전의 입지인 해안가로 밀려날 것이란 우려가 줄곧 있었다. 애써 확보한 대형원전 부지에 왜 SMR을 짓냐는 경제성 논란까지 뒤따르게 된다.
이에 원안위는 올해부터 SMR의 설계특성을 고려한 EPZ 설정 방법론을 개발하기 위한 규제연구를 시작한다.
먼저 SMR의 열출력과 부지 인근의 기상정보 등을 토대로 EPZ 범위를 산정하는 툴을 개발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는 SMR 노형과 부지 특성에 따라 기존 대형원전 대비 EPZ가 좁게 설정될 근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EPZ 평가 방법론은 지난해 말 개발자 측에서 원안위에 검토신청을 한 상태다. 원안위 측은 “향후 규제연구에 따른 EPZ 평가를 바탕으로 필요시 (법령) 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원안위 입장대로라면 수요지 인근에 SMR을 전진 배치하는 구상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SMR이 하나의 분산전원으로 도심지나 산단 외곽에 배치되는 시나리오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얘기다. 특히 11차 전기본에 따라 SMR 첫 호기가 들어설 부지를 물색하는 작업도 한층 수월해질 전망이다. EPZ 범위가 좁아지면 사업자가 접촉하는 지자체 수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 수용성 확보에도 유리해지기 때문이다.
원안위는 EPZ 조정에 줄곧 유보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유국희 전 원안위원장은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 당시 SMR의 설계가 확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EPZ 조정에 부정적인 뜻을 내비치기도 있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원안위의 입장 선회를 두고 “실제 법령 개정이 이뤄질 때까지 지켜봐야 한다”면서도 “미국 규제기관의 ‘성능기반 비상대비 규제지침’ 등 선례를 참고해 합리적인 규제 지침이 도출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성능기반 규제지침’은 SMR의 EPZ 범위를 탄력적으로 설정할 수 있는 방법론에 해당한다. 미국 대형원전의 EPZ는 원전 반경 16km 내로 설정돼 있지만, 뉴스케일파워, 홀텍, 테라파워 등이 개발한 SMR 노형은 이 지침에 따라 수백m 반경의 EPZ를 설정하게 된다.
정세영 기자(cschung@electimes.com) 전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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