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천국 대한민국] "감옥가도 남는 장사"
머리 좋은 인종의 다크 사이드?
(편집자주)
작년 사기범죄 43만건 '최다'
발생건수 해마다 증가 추세
직장인 A씨(34)는 지난해 인생 처음으로 사기 범죄에 당할 뻔했다. A씨는 "내 이름을 대며 '코인 투자 관련 피해 내역을 확인했다. 이를 복구해줄 수 있도록 돕고 있으니 개인정보를 보내달라'는 전화를 받았다"며 "코인 투자를 하고 있었다면 깜빡 속을 뻔했다"고 말했다.
해마다 늘고 있는 사기 범죄가 지난해 43만건에 육박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분기별 집계에서도 지난해 4분기 사기 범죄가 처음으로 11만건을 넘어서며 사기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현실이 드러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솜방망이' 양형 기준에 경기 불황까지 더해져 사기 범죄가 갈수록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불황에 범죄 유혹 커지고
SNS 등 범행 무대 넓어져
'솜방망이 처벌' 범죄 부추겨
대법원, 내달 양형기준 상향
![](https://blog.kakaocdn.net/dn/lxudy/btsL8V6zQbm/TbNM6MbiojZGrzcnqP1Skk/img.jpg)
5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사기 범죄 발생 건수는 42만9949건으로 잠정 집계됐다. 직전 최대치를 기록한 2023년(34만7901건)보다도 약 24% 폭증했다. 산술적으로 계산했을 때 하루에 1178번꼴로 범죄가 일어난 셈이다. 특히 사기 범죄는 최근 들어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경찰은 연 1회 통계로는 최신 범죄 동향을 빠르게 파악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수용해 2021년 3분기부터 전국 범죄 발생 현황을 분기별로 공개하고 있다. 이 집계에 따르면 사기 범죄는 2021년 3분기부터 2023년 4분기까지 7만~9만건에 머물렀지만, 지난해 1분기 10만722건으로 처음 10만건을 돌파한 이후 2분기 10만9065건, 3분기 10만2694건, 4분기 11만968건으로 꾸준히 늘었다. 인구 10만명당 범죄 발생 건수는 지난해 839.5건을 기록해 2021년(569.5건) 대비 47% 늘었다.
실제로 크고 작은 사기에 휘말리는 시민도 갈수록 늘어나는 모양새다. 5년 차 직장인 B씨는 지난해 말 처음으로 사기 범죄를 접했다. B씨는 "신용카드를 신규로 발급받고 얼마 안 가 모 카드사 직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사람한테 연락을 받았다"며 "해당 카드사에는 발급을 신청한 적이 없었는데 보이스피싱 범죄였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경기 불황에 따라 생활형 사기 범죄가 늘어나는 추세인 데다 온라인 플랫폼 발달로 범행 기회나 범행 표적이 크게 늘어난 것도 사기 범죄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는 "사람들이 인터넷 거래, 온라인 금융 서비스 등을 많이 활용하면서 사기 범행 기회가 갈수록 늘어나는 반면 이를 감시할 수 있는 능력은 제한돼 있다"고 설명했다.
사기 범죄로 얻을 수 있는 이득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약한 처벌 수준도 사기 범죄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의 일반사기 범죄에 대한 현행 양형 기준은 범행 규모가 크더라도 가중 요소를 더한 최장 권고 형량이 13년이다. 300억원 이상 조직사기 범죄도 기본 양형은 징역 8~13년이다. 2019년 7000억원대 사기 범죄로 기소된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 처벌도 징역 12년에 그쳤다. 전체 피해액을 중심으로 양형이 결정되는 미국에서는 650억달러 규모 폰지사기 주범에게 징역 150년이, 4억5000만달러 규모의 보험사기범에게는 징역 845년이 내려졌다.
이 같은 지적이 제기되자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지난달 13일 사기 범죄 양형 기준 상향안을 의결했다. 300억원 이상 사기의 경우 일반사기는 징역 최장 13년에서 최장 17년으로 상향하고 조직사기는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했다.
박동환 기자 zacky@mk.co.kr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