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野 패악질' 책임 與에 묻고 있어" 조선일보

 

野 관례 깨고 2명 임명 고집

헌재 결원 원인 제공했는데

 

합의 촉구한 崔대행 추궁

위원 추천 막고 4차례 탄핵

 

[사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국회가 방통위원들을 충원하지 않는 것은 방통위법 위반 아니냐”고 했다. 김형두 헌법 재판관은 “퇴임한 헌법 재판관 3명 후임도 왜 선출하지 않느냐”고 했다. “국회는 헌재와 방통위보고 일하지 말라는 뜻이냐”고도 물었다. 작년 11월 12일 헌재 재판관들이 민주당 소속 정청래 법사위원장에게 따져물은 장면이다. 민주당은 “여야 합의가 안 돼서 충원 못 했다”고 했다.

 

野가 만든 방통위 2인 체제

책임을 위원장에 씌워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5차 변론에서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에게 증인심문을 하고 있다./헌법재판소

 

당시 방통위원은 정원 5명 중 4명이 결원 상태였다. 민주당이 야당 몫 2명은 물론 여당 몫 1명 추천까지 과반 의석으로 의결을 막았고, 대통령이 임명한 이진숙 방통위원장을 취임 이틀 만에 탄핵소추로 직무를 정지시켰다. KBS와 MBC의 친야(親野) 성향 이사진 교체를 막으려고 방통위를 식물 상태로 만들었다.

 

 

헌재 역시 재판관 9명 중 국회 추천 3명의 충원이 미뤄지고 있었다. 여당 몫 1명, 야당 몫 1명에 나머지 1명은 여야 합의로 추천하는 게 관례였는데 민주당이 2명을 야당 몫으로 하겠다고 고집하면서 틀어졌다. 민주당은 헌재가 재판관 결원으로 제 기능을 못 하는 걸 즐기기까지 했다. 자신들이 마구잡이로 탄핵소추한 윤 정부 공직자들의 탄핵 심판이 늦어져 직무 정지 기간을 장기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12월 3일 계엄 사태로 대통령이 탄핵심판 대상이 되면서 민주당 태도가 돌변했다. 한덕수 권한대행을 헌법재판관 임명을 미룬다는 이유로 탄핵했다. 뒤이은 최상목 권한대행이 여야 몫 1명씩만 임명하자 나머지 1명을 임명 안 한 것에 대해 위헌 소송을 제기했다. 헌재 재판관 충원에 그렇게 미적대더니 대통령 파면이 필요해지자 속도전에 나섰다.

 

민주당이야 정략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꿔 왔으니 그러려니 했다. 석연치 않은 것은 덩달아 장단을 맞추는 헌재 태도다. 최 대행이 헌재 재판관 1명을 유보시킨 것은 민주당이 석 달 전 헌재에서 “여야 합의를 못해서” 재판관 3명을 추천 못 했다고 한 것과 같은 이유다. 그래도 최 대행은 여야 합의가 된 2명은 임명해서 8인 체제를 만들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8인 체제에서 전원일치로 파면 결정이 내려졌으니 탄핵심판에 문제가 없다. 그런데도 헌재는 밀려 있는 다른 탄핵 일정은 미뤄둔 채 재판관 1명 유보가 위헌인지 따지는 결정만 서둘렀다. 민주당 때문에 심의 정족수 7인에 미달할 때는 “왜 빨리 임명 안 하느냐”고 핀잔 한마디 하고 방치했던 것과 대비된다. 헌재가 대통령 파면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려고 재판관 1명 추가에 안달하는 민주당과 입장을 같이하는 것처럼 비친다.

 

헌재가 이진숙 방통위원장에 대한 어거지 탄핵소추를 4대4 동수로 가까스로 기각시키고, 더구나 “탄핵소추는 남용이 아니다”라고 정당성까지 부여한 것은 이런 의구심을 부채질한다. 파면에 찬성한 4명은 “이 위원장이 방통위 2인 체제로 공영방송 이사진을 개편한 것은 충분한 탄핵 사유가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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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위 5인 체제를 2인 체제로 쪼그라뜨린 것은 문형배 대행이 석 달 전 지적한 대로 국회를 장악한 거대 야당이다. 문재인 정부 때 자신들이 구축해 놓은 우호적인 MBC, KBS 지휘부를 지키기 위해서다. 윤 대통령이 처음 임명한 이동관 방통위원장에 이어 김홍일 위원장, 심지어 이상인 위원장 직무대행까지 탄핵 발의하면서 방통위에 방통위원이 한 명도 없는 ‘0인 체제’가 된 적도 있다. 2인 체제는 민주당의 무력화 공작에 맞서 확보할 수 있는 최대 인원이었다. 그런데도 헌재는 2인 체제로 방통위 업무를 추진한 것을 ‘중대한 범법’이라고 했다. 가해자의 ‘패악질’은 못 본 척하고 피해자에게 “왜 더 참지 않았느냐”고 질책했다. 이진숙 파면에 찬성한 헌재 4인은 민주당 나팔수 MBC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헌법정신에 맞다고 공표한 셈이다.

 

최상목 대행은 민주당 사보타주로 정족수 미달이었던 헌재 6인 체제를 8인 체제로 정상화시켜 놓고도 민주당이 과거 합의를 깨고 단독 통과시킨 1명을 임명 안 했다는 이유로 헌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썼다. 이진숙 방통위원장은 민주당 방해를 뚫고 어떻게든 방통위를 굴러가게 한 것에 대해 범법 지적을 받았다. 헌재 재판관이 충원 안 된 책임도 여당에 묻고, 방통위 위원이 충원 안 된 상태에서 운영한 책임도 여당에 씌운다. 야당 패악질이 남긴 장애물을 안 치운 것도, 그 장애물을 그냥 돌파한 것도 모두 여당 잘못이라는 헌재 판단이다. 그런 헌재에 맡겨진 탄핵 심판에 대한 공정성이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다.

김창균 논설주간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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