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에 영향 미치는 판사의 성향
소설 같은 세상
김규나 소설가
“존경하는 재판장님, 지금 내리신 판결의 근거가 무엇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몰토가 물었다. 한번 붙어 보겠다는 듯 판사석을 올려다보고 있다. 서로 증오하고 있는 것이 확연히 드러나 보였다. 두 사람 사이에 쌓인 원한을 파헤치자면 고고학적 기술이 필요할 것 같다. 원한의 일부는 캐롤린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몰토는 원시인같이 질투심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북부 지원에 있을 때도 리틀 판사가 캐롤린과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는 것을 알았을까?
-스콧 터로 ‘무죄 추정’ 중에서
영장 전담 부장판사는 ‘위증 교사 혐의는 소명되는 것으로 보인다. 관여가 있었다는 상당한 의심, 부적절한 개입을 의심할 만한 정황들’이 있다고 판결문에 적었다. 하지만 현직 대표라는 점을 감안, 야당 대표의 구속을 불허했다.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근거가 높은 자리, 큰 권한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애인과 가족, 친척의 개인 정보를 부정 열람한 공무원이 무죄판결을 받았다. ‘잘못한 점이 없진 않지만, 권한을 넘어 정보를 취득했으나’ 정상 업무를 볼 때처럼 ‘자신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이용해 로그인’했으므로 불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법이 공무원의 권한 남용을 인정한 셈인데 카드사나 통신사, 금융사 직원이 고객의 개인 정보를 들여다봐도 같은 결과가 나올까?
사주 공부에 빠진 MZ 세대들...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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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슨 포드가 주연한 영화 ‘의혹’의 원작 소설은 수석 부장검사 러스티가 동료 여검사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재판받는 과정을 그린다. 판사는 검찰의 무리한 수사 방식과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재판을 중단시키고 러스티를 석방한다. 공정한 판결처럼 보였지만, 죽은 피해자와 함께 뇌물을 받고 무죄 방면해주던 과거가 드러날지 모른다는 판사 자신의 두려움이 더 컸다.
솔로몬왕은 어미라고 주장하는 두 여인에게 아기를 칼로 잘라 반씩 나눠 가지라고 했다. 한 명은 좋다고 했지만 다른 여인은 포기할 테니 아이를 살려달라며 울부짖었다. DNA 대신 왕의 지혜로 친모를 가려낸 판결이었다.
죄의 유무는 법이 판단한다지만 그 기준이 되는 법도 사람이 만들고 판결도 사람이 한다. 재판관의 정치적 성향과 인간관계, 성품과 인격, 경험과 지혜가 판결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김규나 소설가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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