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천국 대한민국: 보험사기
일본은 5억에 발칵 뒤집혀
한국은 조단위 보험사기 발생에 묵묵대책
(편집자주)
#. 지난 7월 일본의 중고차 매매업체 빅모터가 5년 이상에 걸쳐 자동차 보험금을 조직적으로 부풀려 청구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일본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이들은 전국 33개 지점에서 5년간 불필요한 부품을 교체하거나 도장 품질을 실제보다 더 높은 등급으로 제출하는 등의 방식으로 보험금을 부정 수급했다. 그러나 이렇게 타낸 보험금은 약 5000만엔. 우리돈으로 5억원 가량이다.
한국은 어떨까.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1년 간 적발된 보험사기 규모는 1조818억원. 매년 급증세를 보이던 보험사기는 급기야 처음으로 1조원을 넘었다. 전라도 함평(5100억원)과 무안(5900억원)의 올해 예산보다도 많다. 심지어 정부가 지방을 살리겠다고 만든 지방소멸대응기금 1조원을 웃돈다. 발각되지 않은 사기 금액까지 고려하면 지방정부가 먹고 살 수 있는 어마어마한 돈이 사기꾼들의 손에 들어간다는 얘기다.
보험사기가 진화하고 있다. 소수 개인 일탈의 문제를 넘어선지 오래다. 설계사와 브로커, 의사, 가입자들 간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조직화되고 있다. 수법도 교묘해지면서 보험 사기와의 전쟁은 흡사 ‘두더지 게임’ 처럼 되고 있다.
설령 걸린다해도 처벌 수위가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로 낮다는 점도 보험사기를 방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상품 구조상 맹점이 많은 실손보험은 보험사기의 좋은 먹잇감이 되고 있다. 이 때문에 보험사들은 경찰, 간호사 출신 등 관련 인력들을 대거 기용하고, 수십억원을 들여 각종 시스템을 만드는데 에너지를 쏟고 있다.
헤럴드경제가 국내 10대 보험사의 보험사기조사(SIU) 인원 현황을 살펴본 결과 5개 손보사 226명, 5개 생보사 176명으로 총 402명에 달했다. 사별로 보면 100명이 넘게 인력을 배치한 곳도 있었으며, 최소 수십명 단위로 SIU 인원이 있었다. 금융감독원은 40여개 보험사에서 활동하는 SIU인원만 600여명을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보험상품을 개발하고, 소비자보호를 강화해야할 여력이 사기꾼을 잡아내는데 쓰이는 셈이다.
당국도 마찬가지다. 금감원은 보험사기대응단을 꾸려 3팀, 18명으로 운영 중이다. 초창기만해도 부서 산하 팀으로 있었으나, 보험사기가 심각해지면서 조직을 갈수록 키우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보험사 SIU, 18개 지방 시도와 매년 보험사기 특별수사 기간에 협의회를 만들어 각종 보험사기 현안 등을 공유하며 협력을 하고 있다”며 “조직을 확대하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험사들이 이처럼 보험사기를 밝혀내는데 막대한 인원을 투입하는 이유는 보험사기가 매년 늘고 있어서다. 보험사기 적발 금액은 ▷2018년 7982억원 ▷2019년 8810억원 ▷2020년 8986억원 ▷2021년 9434억원 ▷2022년 1조818억원 등을 기록했다. 보험사기로 적발된 사람들 또한 10만명을 넘어섰다.
특히 실손보험에서 백내장수술, 도수치료, 무좀치료, 여유증 등을 가장한 보험금 과다 청구문제로 보험금 누수도 만만치않다. 여러 이유로 궁지에 몰린 의사들이 양심을 저버리고 조직화된 브로커가 개입하고, 보험소비자가 보험사기에 공범으로 뛰어들면서 피해는 고스란히 선의의 가입자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다. 금융사, 금융당국이 보험사기와 ‘두더지 게임’을 벌이는 사이 2023년도 실손보험 보험료는 평균 8.9%(수입보험료 기준 가중평균) 인상됐다.
하지만 처벌은 여전히 솜방망이다. 보험연구원이 대검찰청 범죄분석 통계를 활용해 2020~2021년 보험사기죄 및 사기자 범죄자 처분결과를 분석한 결과 보험사기죄의 경우 일반사기죄에 비해 구약식 비중이 50% 이상으로 매우 높고, 불기소 처분 중 기소유예 비중도 일반 사기에 비해 한참이나 높았다. 검사가 피고인에게 벌금형을 구형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통상 구약식을 활용하고,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하면 불기소처분을 내린다. 불기소처분 중 기소유예 처분은 혐의가 인정되고 증거도 충분하지만 피의자 연령이나 범죄의 성질 등을 감안해 기소를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치솟는 손해율과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아예 실손보험 판매를 중단한 보험사들도 있었다. 2011년 이후 생보사 11곳, 손보사 3곳이 실손보험 판매를 포기했다. 현재 실손보험을 판매하는 회사는 생보사 6곳, 손보사 10곳 등 16곳에 불과하다. 실손보험 판매를 유지하더라도 보험료 인상은 피할 수 없다. 가입심사나 보험금 지급심사 역시 더욱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기가 증가하면 선량한 가입자만 손해를 보게 된다”며 “보험사기에 대한 대응이 강화되지 않으면 향후 보험료 인상 등에 따른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헤럴드경제=서정은·강승연 기자] lucky@heraldcorp.com sp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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