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교 붕괴] 이런!...‘철근 속여 써도 책임 없다’는 5년전 판결
2018년에도 정자교 인근에서 유사 사고 발생
건설에도 ‘유통기한’이 있다고 미친 판결내린 판사
(편집자주)
지난 4월 5일 보행로 붕괴 사고로 2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경기 성남시 ‘정자교’ 붕괴 사고 이후 전국 다리 안전에 빨간불이 켜졌다. 1993년 6월 탄천에 준공된 정자교는 길이 108m, 폭은 25m 규모인데 이번 사고로 마치 엿가락이 휘어지듯 무너져내렸다.
경찰은 교량이 건설된 지 오래되었고 폭염으로 도로 침하가 일어나고 상판 구조물 하부에 설치된 배수 배관에 하중이 더해지면서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정자교는 ‘프리 스트레이트 콘크리트(PSC) 슬래브 공법’으로 건설되었는데 성남시는 탄천에 설치된 전체 20개 교량 가운데 같은 방식으로 건설된 16개 교량에 대해서도 임시구조물을 설치하는 등 대책마련에 나섰다. 정자교를 설계한 삼우기술단은 1993년 정자교를 설계하고 2년 뒤인 1995년 자금난으로 폐업했다. 이 업체는 폐업 전 올림픽대교와 부산 광안대교, 서해대교 등의 설계도 맡은 것으로 밝혀졌다.
사고 이후 밝혀진 정자교 안전관리의 현주소는 참담하다. 준공 12년 만인 2005년 ‘정밀안전진단’을 받을 정도로 ‘이상징후’가 발생했는데도 어찌된 일인지 이듬해 2006년 1월에는 정밀진단 우수(A등급) 판정을 받는 등 평가 결과가 들쑥날쑥이었다. 현재 수사당국은 안전진단이 제대로 이뤄졌는지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다.
이번 사고가 ‘관리 부실에 의한 인재’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는 가운데 성남시 관계자들은 5년 전 발생한 야탑 10교 침하 사건이 이번 정자교 붕괴 사고와 유사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야탑10교 사고 이후 시공사에 대해 이렇다 할 책임을 묻지 않았던 것도 이번 사고의 한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당시 사고 원인은 설계도에 정착길이 840㎜로 돼 있는 철근을 490~710㎜짜리로 부실시공했고, 배수불량과 상수관에 의해 다리에 가해지는 무게가 늘어난 탓이었다. 야탑10교는 정자교와 공법도 비슷하게 지어졌다.
정자교 붕괴와 닮은꼴 야탑10교 사건
2018년 7월 발생한 ‘야탑10교 사건’ 관련 성남시 내부 보고서와 사고 직후 시공사 K사를 상대로 성남시가 제기한 민사소송 판결문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당시 법원은 실제 시공사에 대해 책임을 묻지 못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야탑10교는 정자교와 같은 PSC슬래브 공법으로 시공되었으며 사고 사진을 보면 다리가 엿가락처럼 내려앉아 붕괴 양상도 비슷했다. 당시 사상자가 없어 성남시는 긴급보수와 내진보강공사를 실시한 이후에 K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그런데 법원은 “피고(시공사)의 시공상 잘못이 존재하지만, 사고와 상당 인과관계가 없다”며 시공사의 책임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성남시의회 관계자는 “시공을 잘못했는데 왜 책임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는지 궁금해 판결문을 입수해 수차례 읽어 봤지만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판결문이었다”고 했다.
당시 성남시는 야탑10교가 무너진 이유를 “설계도상 철근 정착길이 840㎜에 미치지 못한 490~710㎜의 철근으로 시공한 탓”이라고 줄곧 주장했는데 사고 사진을 보면 철근 길이가 부족하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도 법원은 “증거 및 영상으로 보아 야탑10교 공사 중 철근 시공과 관련해 시공사의 시공상 잘못이 존재한다고 의심이 든다”고 인정하면서도 사고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철근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했음에도 사고와 관련이 없다는 이상한 결론을 내린 셈이다.
법원이 이런 결론을 내린 첫 번째 이유는 “준공된 시점(1993년 10월)으로부터 24년이 지난 뒤에 사건 침하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비유하자면 건설에도 일종의 ‘유통기한’이 있다는 논리인데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건설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둘째 이유는 “원고(성남시)는 공공시설(야탑10교)의 소유자로서 이를 유지·관리할 책임이 있음에도 침하사고가 발생하기 전까지 철근 시공과 관련된 하자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즉 시공사가 아닌 성남시의 관리책임을 강조한 것이다. 하자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 하자를 파악하지 못한 성남시가 더 문제라는 논리다.
셋째 이유는 “정기점검을 실시하여 다양한 결함을 확인하였음에도 별다른 보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고, 하자보수기간(7년)이 지났다”는 것이었다. 역시 시공사의 책임보다는 관리 책임자의 잘못을 더 문제삼았다. 법원의 이런 논리대로라면 이번 정자교 역시 시공사에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된다.
넷째는 “폭염과 같은 자연적 요인이나 공용기간 증가”다. 사고에 다른 요인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논리로, 법원은 “인구 및 교통량이 상당한 수준으로 증가하였음이 경험칙상 명백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철골을 제대로 쓰지 않은 것이 명백한데도 시공사에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판결은 끝난다.
당시 성남시는 항소했으나, 2022년 11월 시공사로부터 손해배상금 3억5500만원을 받는 것으로 합의하고 사건을 끝냈다. 사실 시공사 입장에서는 배상금보다 영업정지를 막는 것이 중요했다. 2021년 1월 경기도는 행정처분으로 시공사에 대해 영업정지 2개월 처분을 내렸으나 이후 일련의 판결을 통해 시공사는 영업정지를 피할 수 있었다.
당시 사건 발생 이후 성남시의 사후 조치에도 문제가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성남시의회 국민의힘 김보석 의원은 “야탑10교 사고로 경고등이 울린 이후, 당시 은수미 시장은 ‘성남시 전체 150개 교량 중에서 야탑10교와 유사한 교량에 대해 안전진단을 확대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2018년 이후 분당지역에서 정밀안전진단을 실시한 교량은 단 한 곳도 없다”고 주장했다. 즉 “야탑10교 사고 이후 제대로 후속 조치를 했다면 이번 정자교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사고였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이번 정자교 사건으로 인해 진행될 안전점검은 이미 5년 전에 실시되었어야 한다”고도 했다.
이정현 기자 [주간조선]
케이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