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조 원 규모 "세계 물 산업 시장 뚫어야"
우물안 벗어나 1000조원 세계 물 산업 시장 뚫어야
정남정 전 K-water 4대강사업본부장
옛날 왕조시대에는 가뭄과 홍수 피해를 막는 치산치수(治山治水)가 국가 경영의 요체였다. 오늘날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동안 댐을 건설하여 우기에는 물을 가두어 홍수를 예방하고, 갈수기 때 필요한 물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으나 이제는 기후변화 여파로 예상치 못한 사태가 세계적으로 속출하고 있다. 가뭄과 홍수가 지역별로 극단으로 갈려 나타날 뿐만 아니라 산업 발전으로 신종 유해 오염물질의 배출이 증가하면서 수질 문제까지 겹치는 등 물 관리는 어느 나라를 가릴 것 없이 국가적인 난제가 되었다. 최근 우리나라 남부지방을 강타한 극심한 가뭄도 앞으로 더욱 빈발해질 가능성이 높다.
지금이야말로 국가적으로 ‘물 산업’을 크게 진흥시켜야 할 적기라고 생각한다. 물 산업은 상수도 시설, 쓰고 난 물을 처리하는 하수도 및 재이용 시설, 하천수가 부족할 경우 바닷물의 염분을 제거하는 담수화와 같은 시설에 필요한 설계기술과 기계 및 전기설비를 비롯한 각종 기자재, 화학약품 개발 및 스마트 운영관리기술 등을 망라한다. 글로벌 물 분석 기관에 따르면, 물 산업 시장 규모는 2020년 세계적으로 1000조원 규모이고, 해마다 3~4% 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마디로 유망한 수출 산업 분야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물 산업 경쟁력은 아직 갈 길이 멀다. 한국수자원공사 분석에 따르면, 해수담수화 기술 수준은 세계 선도 국가인 미국의 60% 정도에 그치고, 상하수도 건설과 운영 관리 분야에서는 이스라엘, 영국 등의 30~59% 수준이라고 한다. 기술 수준도 떨어지지만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한 준비는 더욱 미비한 상태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도 물 산업과 관련한 특허를 동시에 출원한 실적을 보면, 미국·영국·네덜란드·이스라엘 등의 10%에도 못 미치는 분야가 허다한 실정이다. 이렇게 되면 해외에서의 시장 지배력,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물 산업은 국내 시장만을 위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국토 면적이 우리나라의 5분의 1인 이스라엘은 전형적인 물 부족 국가이지만 자국 내 물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물 산업을 진흥시켜 세계 100여 국가에 진출한 상태다. 대구시 면적보다 작은 싱가포르 역시 정수기술을 비롯한 각종 물 기술 연구개발과 상용화에 성공해 세계적인 물 전문기업을 육성하는 데 성공했다. 로마가 세계사의 주역이 된 것은 반도(半島)라는 우물 안에서 벗어나 바다 너머로 눈을 돌렸기 때문이다. 물 산업도 다르지 않다. 국내의 물 문제 해결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물 산업을 신산업으로 키워 세계로 진출하는 방안을 하루속히 마련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달리는 말에 채찍을 휘두르는 수준이 아니라 달리는 말에 날개를 달아줄 정도의 획기적인 정책 수립이 선행돼야 한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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