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인] “노량대교 주탑이 8도 기울어진 이유" 문남규 GS건설 상무

 

“토목은 ‘홍익인간(弘益人間)’적인 존재"

 

    “시도 때도 없이 강풍이 불고 너울이 닥치는 바다 위에서 다리를 짓는 일 자체가 힘든 작업입니다. 거기에 노량대교가 들어선 바다에는 해상국립공원이 있었고, 남해시 부근에서 교량과 맞닿는 부분에는 터널이 공사 중이어서 제약이 많았죠. 악조건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다 보니 노량대교 앞에는 각종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게됐습니다.”

 

세계 최초로 U자 형태의 3차원 곡선형 케이블을 배치해 노량대교를 건설한 문남규 GS건설 인프라공사담당 상무가 지난달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그랑서울 GS건설 본사에서 인터뷰를 갖고 있다. /박상훈 기자
 

 

문남규(사진) GS건설 인프라담당 상무는 토목 전문가다. 1996년부터 중부내륙고속도로 등 GS건설의 각종 토목관련 시공 현장에 참여해왔다. 수많은 토목 공사 현장 중에서도 그의 정체성을 형성해 준 건 교량이다. 남한강 인근 ‘양평대교’, 경인아라뱃길을 횡단하는 12개의 교량 중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한 ‘백석대교’ 등이 그의 손을 거쳤다. 그러나 베테랑 교량 전문가인 그도 노량대교 시공은 쉽지 않았다고 했다.

 

노량대교는 경남 남해군 설천면 덕신리와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를 잇는 총연장 3.1㎞의 ‘고현∼하동IC2 국도’의 일부로, 노후화된 남해대교를 대체하기 위해 건설됐다. 지난 2019년 완공 후 ‘세계 최초 경사주탑 현수교’가 된 노량대교는 국내 교량 기술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을 인정받아 같은 해 ‘올해의 토목구조물 금상’을 수상했다. 지난달 12일 서울 종로구 GS건설 본사에서 노량대교 현장소장이었던 문 상무에게 시공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노량대교 전경 / GS건설 제공

 

 

주탑 설치 방식이 특이하다던데

“현수교에는 차량이 오가는 상판을 지지하도록 하기 위해 케이블을 설치한다. 이 케이블을 고정하는 콘크리트 구조물을 주탑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인 주탑은 옆에서 봤을 때 수직으로 서있다. 주탑이 상판 양측에서 수직으로 서있어 측면에서 보면 직사각형 모양을 이룬다. 그러나 노량대교의 주탑은 육지 방향으로 8도 가량 기울어져있다. 옆에서 보면 직사각형이 아니라 밑변이 짧은 사다리꼴이라 생각하면 된다.

 

주탑이 세워진 위치도 일반적인 해상 교량과 달리 바다가 아니라 육지다. 노량대교가 들어서는 남해 앞바다는 해상국립공원이 있을 만큼 청정 해역이다. 수많은 양식장도 있어 해상에 주탑을 세울 경우 시멘트 등 공사 자재로 환경이 오염될 가능성이 컸다. 최대한 환경에 해가 되지 않을 방법을 고민하다가 주탑을 해상이 아닌 육지에 세우게 됐다. 섬과 섬을 연결하며 바다 위에 어떠한 시설물도 두지 않은 점이 특징이다.”

 

 
그래픽=손민균

 

 

주탑을 기울인 특별한 이유가 있나

“주탑을 육지로 옮기면서 생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노량대교는 크게 상판과 상탑을 지지하는 줄인 행어, 수많은 행어들을 고정시키는 주케이블과 주탑으로 구성돼 있다. 상판을 빨래, 행어를 빨래집게, 주케이블을 빨랫줄, 주탑을 빨래줄을 고정시키는 나무 막대기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케이블을 육지에 고정하는 장치는 앵커리지라고 불린다.

 

빨랫줄을 땅에 고정하듯, 케이블을 육지에 고정하는 작업을 하기 위해선 충분한 공간이 필요하다. 주탑 꼭대기에서 육지로 내려온 케이블이 땅에 고정될 때 주탑과 케이블의 경사각이 30~40도 정도로 형성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주탑과 앵커리지의 거리가 180m 정도 확보돼야 하는데 노량대교의 경우 남해측에서 진행 중인 터널 공사때문에 165m의 여유만 있었다.

 

앵커리지를 해상 쪽으로 이동시키는 게 불가피했다. 주탑 높이는 낮출 수 없는 상황에서 주탑과 앵커리지의 거리가 짧아질수록 경사각이 작아져 주탑이 뒤로 넘어지려는 힘이 강해지는 등의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줄다리기할 때도 뒤로 몸을 젖히면 강한 힘이 발휘되지만, 올곧게 서서하면 힘을 충분히 주지 못하지 않나.

 

결국 주탑을 8도 뒤로 눕히기로 했다. 주탑이 뒤로 기울어지면, 앵커리지가 육지 방면으로 깊게 들어가지 않아도 케이블 고정을 위한 경사각 30~40도를 맞출 수 있었다. 주탑을 눕히지 않았을 때보다 앵커리지 크기도 11% 줄어들게 됐다. 환경적 제약을 해결하면서 기술적으로도 비용적으로도 이득을 보게 된 것이다.”

 
노량대교 전경 / GS건설 제공

 

노량대교 3차원 케이블 개념도 / GS건설 제공

 

 

 

상판을 지지하는 방식도 보통의 현수교와 다르다던데

“노량대교를 공중에서 자세히 내려다보면, 상판을 지지하는 케이블들이 항아리 모양을 하고 있다. 보통 주케이블에서 뻗어나와 상판을 지지하는 케이블들은 수직으로 늘어서있는데 가운데 부분이 미세하게 튀어나온 것이다. 가운데가 유선형으로 배치되는, 3차원 케이블이다.

 

이 또한 환경적 제약을 뛰어넘기 위한 방법이다. 우선, 해상 위에 세워진 현수교는 강한 바닷바람을 받아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게 된다. 좌우로 최대 5.2m까지 움직이게 된다. 하지만 케이블을 유선형으로 배치하면 좌우로 움직이는 폭이 4.6m까지 줄어든다.

 

더구나 주탑을 기울이면서 도로 폭에 비해 주 케이블 간격이 줄어들었다. 주탑이 뒤로 눕혀지면서 H자 모양이 아닌 A자 모양이 됐기 때문이다. 주탑이 A자가 되면서 도로폭은 24m인데, 케이블 두 케이블 간격은 6m가 되는 식의 비대칭이 일어났다. 도로폭과 케이블 간격의 비대칭을 해결하면서 내풍저항성을 높이기 위해 선택한 것이 케이블을 3차원으로 배치한 것이다.

 

노량대교를 건설하며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그동안 경험하지 않은 공법들을 적용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주탑을 뒤로 눕힌 것도, 케이블을 유선형으로 설치한 것도 대다수 근로자들이 경험하지 못한 공법들이었다.

 

두려움을 견디기 위해 무수히 많은 시뮬레이션을 했다. ‘프리콘(Pre-Con, Pre Construction)’이라고, 각 공정에 대한 가상 시공 시뮬레이션을 수도 없이 했다. 예컨대 케이블을 주탑 상단에 묶는 장치가 있다. 주탑이 육지에 있기 때문에 이 장치를 배를 통해 육지에 닿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위치까지 옮기고, 케이블로 묶어 육지 그리고 주탑 위로 끌어올려야 했다. 이 과정을 시뮬레이션을 통해 미리 학습하며 수정할 부분을 찾고, 작업자들에게도 작업 전에 보여줘 현장에 대한 익숙함을 심어줬다.

 

 

또 회사 내에 현수교팀을 별도로 조직했다. 일반적인 공사현장에서는 설계, 기술, 공사 인력들이 독립적으로 일을 한다. 노량대교 만큼은 경사주탑, 케이블 3차원 배치 등 처음 시도하는 공법들이 많아 설계, 기술, 공사 인력들을 ‘원팀(One team)’으로 통합해 공사를 진행했다. 각 담당자들이 한팀이 되다보니 보다 긴밀한 소통이 가능해졌다.”

 

 
노량대교 주탑 정상부에 주케이블을 고정시키기는 과정을 사전에 가상으로 실험하는 모습 / GS건설 제공

 

현장에서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나

“당연히 안전이다. 교량 공사에서는 캣워크 작업이 필수적이다. 캣워크는 작업자들이 상판을 지지하는 케이블 설치 작업을 하는 공간이다. 케이블과 철망 등으로 바닥과 난간이 구성된, 일종의 ‘출렁다리’다. 작업자들은 안전벨트 성격의 와이어를 차고 캣워크 작업을 한다. 안전을 위해 와이어를 거는 게 매우 중요하지만, 행동반경이 제약되다보니 와이어를 푼 채로 작업하는 작업자들도 많다. 매일, 하루에도 수십번씩 와이어 고정의 중요성을 작업자들에게 상기시켰다.

 

안전을 위해 정리정돈도 강조했다. 건설현장 특성상 무거운 자재와 장비가 많다. 상판을 고정시키는 주케이블은 실처럼 가는 케이블이 모이고 모여 완성되기에 일반적인 공사현장보다 자잘한 자재도 많다. 자재가 정갈하게 정리돼 있지 않으면 동선이 방해돼 사고의 위험이 높다. 직원들에게 자재를 적재적소에 설치하는 것만큼, 사용한 자재를 제때 정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노량대교는 건설 경력에서 어떤 의미의 현장인가

“1996년 지금의 GS건설에 입사한 후 줄곧 토목 공사 현장에서 일했다. 그중 고속도로 현장만 5개를 겪었다. 고속도로 공사에 많이 참여하다보니 특수교량도 많이 경험했는데, 노량대교는 특수교량의 정수다. 특수 교량인 만큼 힘들었지만, 그런 현장을 현장소장으로 경험한 것 자체가 건설 인생에서 화룡점정을 찍게해준 것이다.

 

현수교를 경험한 것도 행운이다. 현수교는 시공이 까다로워 국내에 몇 개 없다. GS건설이 현수교를 시공한 것도 노량대교가 처음이다. 50년이 넘는 GS건설 역사 상 처음으로 시공하는 현수교를 현장소장으로 경험한 것이다. 누구나 하기엔 불가능한 공사를 GS건설의 전문가들과 해냈다. 건설기술인으로서 접하기 어려운 현장을, 무사히 마무리한 것을 큰 자랑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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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목 공사란 어떤 존재인가

“토목은 ‘홍익인간(弘益人間)’적인 존재라고 생각한다. 누구든 하루를 살아가며 수많은 토목 건축물을 이용한다. 도로, 지하철이 달리는 대교 등 지나온 모든 길이 토목 공사를 통해 닦여진 것들이다. 길이 있으니 사람들이 이동하고 경제활동을 해 국가 경제가 돌아가는 게 아니냐. 토목 늘 인간을 이롭게하는 공사라 생각한다.

 

 

현장에서 시간이 더 걸리고 비용이 더 발생해도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간을 이롭게하는 시설물을 만들면서 사람을 죽게하는 건 말이 안 된다. 현장소장으로 있던 모든 현장에서 안전을 최우선으로 했고, 덕분에 노량대교 현장은 107개월이란 긴 공사기간 동안 중대재해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아쉬운 점은 사회간접자본(SOC) 시장이 많이 위축되다보니 대형 건설사들에게도 대형 토목 공사를 시공할 기회가 많이 줄었다. 국내 건설사의 토목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앞으로 국내외 대규모 토목 공사 현장이 많아져서 후배들이 참여할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노량대교가 나의 건설인생에서 화룡점정 현장이듯, 후배 토목인들의 인생에서도 화룡점정이 될 수 있는 현장이 생기길 바란다.”

김송이 기자 조선비즈

 

https://youtu.be/syD199lGy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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