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품관리사의 기록] 의사 동생은 왜 고독사했을까

카테고리 없음|2023. 1. 1. 14:41

 

   찌는 듯한 여름의 고독사 현장은 처참하다. 한겨울 보일러를 가동하거나 전기장판을 사용하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의 상황도 나쁘지만, 여름과는 비교할 수 없다. 찜통더위 속에서 구더기와 파리는 무서운 속도로 불어난다.

 

그렇게 무덥던 어느 여름, 찾아간 곳은 작은 원룸이었다. 살림이라 할 것도 없을 만큼 조촐한 방. 고인의 방에선 어떤 것도 읽어낼 수 없었다. 고인이 생전 겪었을 고통과 시련의 흔적조차 찾기 어려웠다. 정리를 의뢰한 유가족들이 전해준 이야기가 유일한 실마리였다.

 

[유품관리사의 기록] 의사 동생은 왜 고독사했을까

 

고인은 수재였다. 의대를 졸업하고 동기들과 성형외과를 차려 크게 성공했다고 한다. 성공은 더 큰 꿈과 야망을 낳았고, 중국에 진출해 병원을 차렸다. 거액의 투자를 받아 개원한 중국의 성형외과는 탄탄대로가 열린 듯 순항했다.

 

 

그러나 잠시뿐, 이내 중국 공안과 마찰이 생기면서 병원 운영 자체가 어려워졌다. 결국 투자금 회수는커녕 말 그대로 쫄딱 망하고 말았다. 간신히 맨몸으로 한국에 들어왔지만, 고인은 도망자 신세를 면치 못했다.

 

한국에서 그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의학품업체 배달 운수업에 잠시 종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극도의 스트레스와 쇠약해진 몸은 노동을 감당해내지 못했다.

 

고인이 마지막에 거주했던 골방은 고시원처럼 좁디좁았다. 냉장고는 텅텅 비어 있었고, 쓰레기통에도 식사를 챙겨 먹은 흔적은 없었다. 쉬지 않고 피워댔는지 담뱃갑과 꽁초만이 가득했다. 아마도 고인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자신의 삶을 끼니 대신 곱씹었나 보다. 한때마다 새 출발을 꿈꿨던 건지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한 흔적도 눈에 띄긴 했다. 그러나 고인은 절망의 늪에서 결국 헤어나지 못했다. 모든 것이 멈춰버린 그의 방에선 주인 잃은 시계만 무심히 돌고 있었다.

 

한참 정리 중에 고인의 형이 찾아왔다. 그는 굉장히 고가인 듯한 수입차를 타고 나타났다. 보증금 300만원짜리 단칸방에서 돌연사한 동생의 삶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듯한 형의 모습. 고인은 형제들에게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다고 했는데….

 

마침 이날은 독립영화 감독과 함께 현장을 찾았다. 유품을 정리하는 현장을 기록하던 감독이 내게 물었다….

 

“고인이 가장 힘들어 했던 것이 무엇이었을 것 같으세요?”

“전부요. 보여지는 모든 것.”

 

적막한 공간, 암담한 미래, 좀처럼 덜어낼 수 없는 삶의 무게, 그리고 지독한 외로움.

 

 

“차라리 아무도 없었다면 오히려 살아냈을 것 같아요. 가족도, 형제도 차라리 없었다면…. 어떤 방법으로도 답을 찾을 수 없을 때가 있잖아요. 그땐 자꾸 다른 사람을 탓하게 돼요. 그러면 순간은 편하니까요. 그런데 나는 알거든요. 남 탓할 일이 아니라는 걸. 그런 자신에게 실망하고 점점 고통스러워져요. 이게 반복되면 삶의 의지를 잃게 돼버려요. 죽으면 끝날까. 죽으면 편할까. 차라리 탓할 사람이 없는 게 낫겠더라고요. 나를 도와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희망인 동시에 고문이 된달까요. 아무도 없는 게 나을 때가 있어요. 괜히 희망고문이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에요. 그렇죠?”

 

‘희망고문’. 무언가 바라는 마음이 육체와 정신에 고통을 준다는 의미의 말이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지만, 고독사 현장은 늘 미련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이 세상에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모든 것을 잃고 고독사한 동생, 그리고 동생이 떠난 뒤에야 단칸방을 찾아온 형. 혹시나 고인도 혼자가 아니어서 더 힘든 건 아니었을까. 혹시나 그에게 형이 희망이면서 고문이었던 건 아닐까.

에디터 김새별 중앙일보

 

 

김새별

특수청소부 c_project@joongang.co.kr

유품정리사 또는 특수청소부라고 불린다. 2009년부터 고독사, 자살, 범죄 피해 현장의 유품 정리와 특수 청소를 하고 있다. 삶의 의지를 놓아버리거나 도태되는 많은 이들의 사연을 알리고자『떠난 후의 남겨진 것들』을 출간했다. 유튜브 채널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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