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인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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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인 아버지

 

    태풍 힌남노가 남부지방을 때리며 통과하던 지난 6일의 일이다.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의 풀빌라 한 동이 통째로 내려앉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모습이 담긴 사진이 온라인 커뮤니티로 확산됐다. 그러자 일부 네티즌들이 “부실공사가 의심된다”고 했다. 또 일부는 “마케팅 수단일지도 모른다”며 불신감을 나타냈다. 그것도 풀빌라 운영주가 피해의 충격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와중에 이런 비아냥이 나왔다.

 

전병수 논설위원

건설인 아버지

 

과연 그럴까. 네티즌들의 바람(?)대로 풀빌라는 부실하게 지어졌을까. 운영주는 굳이 풀빌라를 무너지게 까지 하면서 마케팅 효과를 노렸을까.

 

참다못한 운영주가 입을 열었다. 그는 “(풀빌라는) 아버지의 자부심이 담긴 건물이다. 20년을 넘게 건설업에 종사하신 아버지께서 마지막 노후를 위해 직접 지으신 펜션이다. 남은 인생을 함께할 동반자를 짓는 마음으로 튼튼하고 안전하게 지었다고 자부한다.”고 했다.

 

운영주는 건물이 부실시공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설명했다. “무너진 건물뿐 아니라 그 앞에 있던 주차장 부지까지 약 30m 가까이 지반이 침식됐다. 인근 저수지에서 물이 넘쳐 위쪽 도로와 제반시설들이 무너지면서 그 토사와 나무들이 떠밀려 와 지반을 침식시켰기 때문이다. 건축상의 부실 공사는 아니다”고 했다. 그는 “오히려 C동이 튼튼하게 지어져 범람하는 토사를 버텨주었기에 뒤에 남은 나머지 건물이 무사했다”고 강조했다.

 

 

 

 

이어지는 운영주의 말. “비록 새로 지은 건물이 무너지고 그로 인해 저희는 파산을 할지도 모르지만 풀빌라를 짓지 않았다면 인명피해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버지께선 우리 집은 망했어도 덕분에 한 명도 죽지 않고 살았다고 하셨다”라고 말했다. 운영주는 한 순간에 생계의 터전을 잃게 될 처지에 몰렸다. 그럼에도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부실공사라든지 마케팅이라고 하는 것은 아픈 얘기다. 부디 자제해주길 바란다.”

 

풀빌라 운영주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20년 넘게 건설업에 종사한 아버지가 부실시공을 할 리가 없다. 더구나 노후를 함께 할 동반자라 생각하고 건물을 지었다는데 여기에 부실이 끼어들 틈은 없었을 것이다. 건설인 아버지는 처음부터 부실시공을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 수십 년 건설인의 마지막 자존심은 흔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자연재해에 건물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네티즌들은 왜 부실시공을 거론했을까. 강한 태풍에 예상을 뛰어넘는 집중호우가 쏟아졌다는 사고의 배경보다는 부실시공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먼저 떠올렸을까. 아픈 장면이다.

 

물론 여기에는 건설인의 책임이 가장 크다. 끊이지 않은 안전사고, 입찰담합 등으로 국민들이 건설업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가지도록 했다. 특히 지난 2019년 4월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건설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화재사고는 결정타였다. 시커먼 연기가 하늘로 치솟는 장면이 TV 화면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되다시피 했다. 이런 사고들이 반복되면서 건설업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고착됐다.

 

사람 눈에는 아는 것만큼만 보인다고 했다. 카메라를 든 네티즌의 눈에는 무너진 건물이 ‘부실시공’ 건물로 보였을 수 있다. 건설인과 건설업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장 먼저 떠올렸을 것이다. 네티즌들의 입이 가볍다고만 할 수 없는 이유이다.

 

그런데 건설인을 아버지로 둔 포항의 풀빌라 운영주는 달랐다. 건물이 무너진 원인은 부실시공이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건설인 아버지의 자존심을 걸고. 안전시공에 대한 아버지의 자부심은 자녀들과 가족들의 자부심인 동시에 건설인의 자존심이기도 하다. 그가 지키려고 한 아버지의 자부심 속에는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존중, 건설인의 긍지가 담겨져 있다. 그의 언행이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내린 건설인에 대한 불신과 폄훼를 한 꺼풀 벗겨주는 듯하다.

 

 

 

 

한바탕 재난이 지나가고 나면 많은 이야기가 남는다. 이번에도 그랬다. 폭우 속에서 빛난 의인들이 조명됐다. 장갑차를 타고 물에 빠진 사람들을 구한 해병대 병사, 흙탕물 속에서 구조 활동을 벌인 이름 모를 청년의 이야기 등이다. 수마로 가족을 잃은 아픈 사연도 많았다.

 

재난은 짧게 지나가지만 그 여파는 오래 간다. 건설인 아버지의 이름을 지킨 풀빌라 운영주의 이야기도 오래 갈 것 같다. 지난달 폭우 때 “비가 더 와야 사진이 잘나온다”고 한 정치인이나 흙탕물에서 수영을 즐긴 사람, 적어도 이런 자(者)들의 이야기보다는 오래 기억돼야 한다.

[국토매일=전병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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