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 달라진 재벌 3,4세들... 도넛 사들고 직원에 90도 인사

 

재벌 문화 바꾸는 3~4세 오너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인 정기선 HD현대(옛 현대중공업지주) 사장은 얼마 전 경기 판교 글로벌연구개발센터(GRC) 공사 현장에 나가 있는 공사 관리담당 직원 수십 명에게 1인당 1개씩 간식 박스를 보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공사 현장에 식사할 곳도 마땅치 않다는 얘기를 듣고 간식과 커피를 보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 사장은 지난해 초 현대중공업그룹 사내 벤처 1호로 자율운항 선박 기술을 개발하는 아비커스의 사무실에 직접 도넛을 사들고 찾아가기도 했다. 그는 애로 사항을 묻고 기술 개발에 대해 직원들과 격의 없이 소통했다고 한다. 정 사장이 서울 북촌의 유명 가게에서 직접 도넛을 사왔다는 얘기를 듣고 아비커스 직원들이 감동했다고 한다.

 

최근 잇따라 경영 일선에 나서고 있는 국내 주요 그룹의 오너 3~4세들이 사내 문화를 바꾸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들은 딱딱하고 수직적인 사내 문화를 수평적이고 소통을 중시하는 문화로 바꾸는 젊은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들 3~4세는 대부분 실리와 합리성·소통을 중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면서 “새로운 리더십으로 회사에 자신만의 색깔을 입히고 있다”고 말했다.

 

달라진 재벌 3,4세들... 도넛 사들고 직원에 90도 인사

 

 

 

출산용품 보내고 직원 생일까지 챙기는 오너들

철강업체 세아그룹의 특수강사업 부문 지주회사 세아홀딩스에서는 이태성 사장이 사내 카페나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마주 앉아 대화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이 사장은 노조가 없는 지주사에도 직원들의 고충을 들어줄 창구가 필요하다면서 지난해 노사협의체를 만들었다. 이 사장은 고(故) 이운형 전 세아그룹 회장의 아들이다. 세아홀딩스 관계자는 “이 사장은 임직원과 소통을 위해 인사관리 설명회나 문화 행사에도 빠짐없이 참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이 사장의 아이디어로 2015년부터 출산한 직원의 가정에 회사 캐릭터를 넣어 제작한 옷·턱받이 같은 출산용품도 보내고 있다.

 

구자엽 LS전선 회장의 아들 구본규 LS전선 대표이사(부사장)는 올해 초 취임 이후 지금까지 현장을 20여 차례 찾아 직원들과 간담회를 열었다. 구 대표는 업무 특성상 한자리에 모이기 어려운 생산직을 제외하고 사무직 전원(1000여 명)을 모두 만날 때까지 간담회를 이어갈 계획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직원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직장 생활을 하는지, 어떤 애로 사항이 있는지를 듣고 직접 회사 비전도 설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LS전선으로 오기 전 LS엠트론에서 일할 때는 틈날 때마다 생일을 맞은 직원을 자리로 찾아가 축하했다고 한다. 구 대표가 LS전선으로 옮길 때 LS엠트론 젊은 직원들이 아쉬움을 나타냈다고 한다.

 

구광모 LG그룹 회장도 겸손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젊은 오너다. 그는 사업 현장을 방문할 때마다 업무 현황을 설명하러 나온 직원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젊은 직원들이 ‘연초 신년사를 제대로 읽어볼 시간이 없다’는 의견을 전하자 올해 신년사는 평소보다 10일 먼저 만들어 보내기도 했다.

 

 

 

사업 성과로 경영 능력 인정 받아야 하는 과제도

오너들의 리더십 변화는 시대의 흐름과 함께 필연적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과거 고도성장기에는 창업 1~2세대의 강한 리더십이 필요했지만 지금처럼 직원들의 창의성과 자발적인 열정이 강조되는 시대에는 직원들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 10대 그룹 임원은 “MZ세대 직원들은 언제든 대기업의 명함을 버리고 성과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소통하는 문화가 있는 스타트업·벤처로 이직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인재들을 끌어모으기 위해서라도 조직 문화를 바꿀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달라진 재벌 3,4세들... 도넛 사들고 직원에 90도 인사

하지만 이들 오너 3~4세가 경영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새로운 리더십을 기반으로 사업 성과를 내야 하는 과제도 남아 있다. 김경준 CEO스코어 대표는 “세대가 바뀌면 생각과 문화가 바뀌기 때문에 리더십과 조직문화도 당연히 달라져야 한다”면서 “이들이 바뀐 사내 문화와 새로운 리더십을 토대로 어떤 성과를 내는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강한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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