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 비밀의 꽃, 튜울립나무 [박대문]
매혹, 비밀의 꽃, 튜울립나무
2022.06.08
상큼발랄하게 살랑대던 봄바람이 이제는 무덥고 후끈한 여름바람으로 바뀌어가는 계절이 되었습니다. 앙상한 나뭇가지에서 새 생명의 움을 틔우던 여린 새순의 담록(淡綠) 빛깔도 이제는 무겁고 칙칙한 녹음으로 짙어져 갑니다. 봄이 한창 무르익어가는 봄날의 담록빛은 참으로 매혹적입니다. 짙은 초록도 아닌, 여린 듯 부드럽고 맑은, 담록의 새 이파리에는 신비감마저 감돕니다. 화사하지 않으면서도 정갈스러운 아름다움이 배어나는 마력이 있습니다. 이때쯤이면 피어나는 풀꽃도 아름답지만 새롭게 돋아나는 새움으로 나무 전체가 밝은 초록빛 덩어리가 되어 꽃처럼 빛이 나니 꽃보다 아름답습니다. 담록의 숲 바다가 되면 세상천지가 아름답고 부드럽고 따스한 기운으로 가득찬 것만 같습니다. 꽃에서 느끼지 못한 또 다른 새 잎새의 마력이라 하겠습니다.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하기도 하지만 유달리 담록의 이파리가 아름다운 나무가 있습니다. 처음 새순이 나올 때는 연한 초록빛이 곱고 녹음이 짙어져도 잎 색깔이 맑고 정갈스러워 이파리 자체가 아름답습니다. 이파리가 시원스레 넓으면서도 지나치지 않고 탱탱한 육질의 감이 들어 부드럽고 싱싱해 보입니다. 게다가 금상첨화로 푸른 잎새 속 꽃등처럼 큼직한 연녹황색 꽃을 은밀하게 피워냅니다. 바로 튜울립나무입니다.
매혹적이고 깔끔한, 싱싱하면서도 우아한 모습의 튜울립나무, 맑고 깔끔한 연초록빛의 이파리와 은밀하게 피는 꽃이 고운 나무입니다. 꽃 색깔이 산뜻하게 눈에 띄지 않아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데 알아볼수록 매혹적입니다. 꽃 색깔이 푸른 잎에 묻히기 쉬운 연녹황색이고 주변 나무 또한 한창 녹음이 우거지는 시기에 높이가 십여 미터 이상인 높은 나뭇가지 끝에 꽃이 달립니다. 따라서 고개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 않고, 눈앞 땅바닥만 보고 가는 길손에게는 꽃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또한 위를 쳐다본다고 하더라도 널찍한, 겹겹이 층을 이루는 푸르고 맑은 이파리에 가려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비밀스럽고 품격 있는 신비의 꽃입니다.
튜울립나무, 꽃 모양이 튜울립을 닮아 붙여진 이름인데 중국에서는 백합목(百合木)이라 불러 백합나무라고도 합니다. 튜울립나무는 우리의 자생종은 아닙니다. 원산지는 중국과 아메리카 북부입니다. 국내의 튜울립나무는 1925년 국립산림과학원에서 미국으로부터 소량의 종자를 들여와 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추위에 강하고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라 바닷가를 제외한 전국 각지에 분포합니다. 속성수로서 나무 높이 최고 60m, 둘레가 10m까지 자랄 수 있다고 합니다. 잎은 4~6개의 갈래 조각이 있는, 손바닥 모양의 독특한 형태로서 맑고, 털이 없고, 매끈하며 시원스레 넓적한, 맑고 깨끗한 초록빛입니다. 잎에는 긴 잎자루가 있으며 포플러나무를 닮아 미국에서는 yellow poplar라고도 합니다.
꽃은 꽃받침조각 3개, 꽃잎은 6장입니다. 5∼6월에 녹색을 띤 노란색으로 가지 끝에 지름 약 6cm의 튜울립을 닮은 꽃이 1개씩 달립니다. 손바닥 크기만 한 나뭇잎에 가려 가까이 가도 위를 쳐다보지 않으면 보여 주지 않으니 비밀스레 피는 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꽃잎 아랫부분에 주홍빛 무늬가 있어 꽃송이가 주홍빛 띠를 두른 듯하며 햇빛이 환하게 비치면 마치 불을 켠 연등처럼 화사하게 빛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매혹의 꽃입니다, 꽃에는 꿀도 많아 벌이 꼬이며 밀원식물로서의 가치도 크고 병충해에 강해 커다란 푸른 잎과 수피가 항상 깨끗합니다.
더욱 신비하고 놀라운 것은 튜울립나무는 지금으로부터 약 1억 1천만 년 전 공룡이 활약하던 중생대 백악기 때부터 지구상에 넓게 분포했던 화석식물이라는 점입니다. 신생대의 빙하기를 거치면서 대부분 지역에서 모두 사라지고 북미와 중국에 두 종만이 남아 현재까지 유구한 세월에 걸쳐 종(種)을 이어온 강인하고 끈질긴 식물 중의 하나입니다. 따라서 은행나무, 메타세쿼이아 등과 함께 ‘살아있는 화석’ 나무라 불립니다.
맑고 정갈한, 고운 담록 빛 이파리와 보일 듯 말 듯 사람의 눈길을 피해 높은 곳에 은밀하게 꽃등을 켠 듯 잎새 속에서 꽃을 피우는 신비의 나무! 유구한 세월을 강인하게 견디어 내며 싱싱한 생을 이어오는 비밀스럽고 매혹적인 튜울립나무입니다. 내놓을 것 없이 나대고 낄끼빠빠도 모른 채 개념 없이 설쳐대는 자들이 넘치는 이 사회에 튜울립나무를 닮은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고매하고 멋지고 아름다워 보일까? 자꾸만 부럽고 시새움마저 일게 하는 튜울립나무입니다.
매혹, 비밀의 튜울립나무꽃
오월의 환한 햇살 아래
해맑은 초록 물결 너울 속에
화사한 꽃등(燈)을 밝힌다.
보일 둥 말 둥
있는 듯 없는 듯
화사한 꽃등인가?
나풀대는 잎새인가?
하늘 향해 고개 들어
간구(懇求)하는 목마른 갈망에는
꽃으로 나타나고
앞만 보고 스쳐 가는
무심(無心)의 길손에는
그저 잎새로 남는 꽃.
유구한 세월 품어 안고서도
드러냄 없이 신비에 싸인
매혹의 꽃이다.
비밀의 꽃이다.
(2022. 6월 튜울립나무꽃을 보며)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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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꽃사랑, 혼이 흔들리는 만남』가 있다.
ⓒ 2006 자유칼럼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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