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연장전이 된 6·1지선 [임철순]




대선 연장전이 된 6·1지선
2022.05.27

6월 1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거리와 건물은 펼침막으로 뒤덮이고, 지하철 역사 주변이나 동네 길거리는 소음 홍수로 정신이 없습니다. 원래 지자체선거는 뽑아야 할 사람과 출마자들이 많아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올해에는 3월 9일 대통령선거를 치르고 5월 10일 새 대통령이 취임한 지 한 달도 안 돼 박빙의 승부로 끝난 대선의 연장전이 벌어지는 양상입니다. 대선 결과를 납득하지 못하는 유권자들과 정당의 선거운동은 사생결단이라도 하려는 듯 더 악착스러워 보입니다.

큰길에서 가까운 우리 집은 요즘 선거운동 소음공해가 막심합니다. 영탁의 ‘막걸리 한잔’을 개사한 노래 등을 매일 지겹게 듣다 보면 ‘내가 널 찍어주나 봐라’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됩니다. 나 같은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선거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딱합니다. 뙤약볕에 시달리며 명함을 돌리고 목이 터져라 마이크로 외쳐도 알은체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어느 시의원 후보자는 어머니가 아들과 따로 거리에 나와 “아무개 엄마입니다”하고 명함을 돌리는데, 그동안 열 번도 더 마주쳤습니다. 키 작고 옷차림도 그렇고 그래서 더욱 안쓰러워 보입니다. 어느 작은 정당의 후보자는 “3등까지 당선된다”며 자신을 찍어달라고 호소하고 있는데, 유권자들은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듣는 것 같지 않습니다. 

대선 연장전이 된 6·1지선 [임철순]


‘이번 선거에서는 누구누구를 뽑는 건가, 대체 몇 번이나 표를 찍어야 되나?’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며칠 전 ‘2022년 6월 1일 실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안내문·선거공보’라는 큼지막한 봉투[사진]가 배달돼 왔습니다. 도지사, 시장, 도의회 의원, 시의회 의원, 교육감 후보들의 개별 홍보물에다 비례대표 의원 선출을 위한 정당 단위 팸플릿까지 수십 장의 인쇄물이 들어 있었습니다. 투표 장소, 선거인명부 등재번호를 알리는 투표 안내문과 코로나19 예방수칙 안내문은 있는데, 정작 누구를 뽑는 선거인지, 어느 경우는 두 사람 이상을 뽑는 건지 이런 걸 알기 쉽게 한눈에 보여주는 자료는 없었습니다.

 

 



왜 자료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하며 살펴보니 어떤 사람은 같은 홍보물이 두 벌 들어 있기도 했습니다. 선거관리 업무를 이렇게밖에 하지 못하나 싶었습니다. 3월 대선 때는 선거인명부 등재번호가 잘못 표기돼 재발송해 오기도 했는데, 투표 당일 이걸 문제삼아 “부정선거 하려고 그런 거 아니냐?”고 항의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불신을 자초한 부실행정이었지요.

지방선거에서 도지사, 시장, 군수까지는 몰라도 도의원, 시군구 의원이 누가 되건 그게 무슨 상관이 있나 싶습니다. 지방자치제는 ‘풀뿌리 민주주의’라지만 사업으로 돈을 좀 번 사람들이 명예를 얻으려고, 아니면 정치바람 든 허풍선이들이 무위도식을 면하려고 출마한 게 아닌가 싶은 거지요.

누가 누군지 알 수도 없는 상황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데, 4년 전 전국 동시지방선거 결과는 정말 황당했습니다. 박근혜 탄핵 분위기 탓인지 문재인 대통령 당선에 이어 전국에서 더불어민주당이 거의 싹쓸이를 하는 바람에 중앙정치든 지방정치든 ‘일당독재’의 폐해와 부작용이 커지고, 각종 행정과 정책이 왜곡되거나 정체되곤 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지자제 선거는 1995년 김영삼 대통령 때 처음 실시됐습니다. 첫 임기 3년을 지나고 2회 선거부터 4년마다 동시선거가 실시된 데 이어 기초자치단체까지 확대됐습니다. 그동안 지자체마다 앞다투어 길을 닦고 번듯하고 화려하게 청사는 새로 지었지만 풀뿌리 민주주의가 그만큼 발전했습니까? 경포대 해수욕장에 웬 야자수를 심어 말라죽게 하는 식의 예산 낭비, 성 추문과 비위, 무분별한 외유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지방 의원들을 보면 아직도 요원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지자체장 243명, 지방의원 3,860명을 뽑는 이번 선거의 입후보자 7,531명 중 1건이라도 전과가 있는 후보는 36.2%인 2,727명이나 됩니다. 전북 군산의 경우 시장 후보 4명이 모두 전과자이고, 이 중 한 명은 전과가 14건이나 됩니다. 전과가 있는 후보의 비율은 지방선거 때마다 30%를 넘는데, 달라지는 게 없습니다.

그러니 ‘깜깜이 선거’ 와중에라도 유권자들 스스로 열심히 옥석을 가려 찍을 수밖에 없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지방정치가 중앙정치에 휘둘리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번 선거결과는 새 정부 출범 초기인 데다 2024년에 치러지는 22대 국회의원 선거에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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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철순(任喆淳)
한국일보 편집국장 주필, 이투데이 이사 겸 주필 역임. 현재 데일리임팩트 주필, 한국기자상 삼성언론상 등 수상. 저서 ‘한국의 맹자 언론가 이율곡’, ‘손들지 않는 기자들’, ‘노래도 늙는구나’, ‘내가 지키는 글쓰기 원칙’(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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