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에서 날아온 메시지 [방석순]

 


빈에서 날아온 메시지
2022.05.20

멀리 태평양 건너에 살지만 친구는 영락없는 한국인입니다. 국내 소식에 귀 기울이며 때로는 뛸 듯이 기뻐하고 때로는 발을 구르며 안타까워하고‧‧‧ 사는 곳에서도 행여 한국인이라 손가락질당하는 일이 생길까 봐 노심초사하고‧‧‧ 지나칠 정도의 결벽 때문에 가끔 부담스럽게 느낄 때도 없지 않지만 그와의 소통은 늘 진지하고 울림이 큽니다.

사실 살아가는 환경도 살아온 경위도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저는 평생을 국내에서 엎어지고 넘어지면서도 큰 기복 없이 대충대충 살아온 편입니다. 그는 한 분야의 전문인으로 활동하면서 국내외 여러 곳에서 성취도 컸지만 부딪힘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는 집에서는 꽃을 가꾸고 밖에서는 구름 따라 여행하고 사진 찍는 것이 큰 즐거움이라고 했습니다. 타고난 미적 감성 덕분이기도 할 겁니다. 정원의 꽃은 언제나 정갈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여행 중 찍은 사진 한 장마다 멋진 구도에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평소 건강이 좋지 않은 데다 웬만큼 나이도 들어 더 이상 여행은 어려울 것이라던 그가 또 먼 길을 나섰답니다. 평소의 건강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서는 여행이지만 언제 또다시 볼 수 있으랴, 하고 작정한 모양입니다.

 



그가 좋아하던 프랑스 프로방스 전원 풍경도 돌아보고, 옛것과 새것이 멋진 조화를 이루었다는 영국 런던 도심, 그리고 거석문화의 신비가 어린 스톤헨지도 구경하고··· 제게 그 아름다운 풍경들을 사진으로 보내면서 이제 음악의 도시 빈으로 가노라고 자랑했습니다.

저도 젊은 시절 취재 출장에 여가를 더해 이곳저곳 다녀보긴 했지만 빈과는 연이 닿지 않았습니다. 부러운 마음에 “언젠가 내가 그곳에 가면 꼭 중앙묘원을 찾아 베토벤 묘지에 꽃 한 다발 헌정하고 싶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괴롭거나 외로울 때 그의 음악이 참으로 큰 위안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20세기 초 거듭된 전쟁, 체제의 질곡과 시대적 혼란 속에 인간애를 잃고 유럽대륙이 신음할 때 프랑스의 지성 로맹 롤랑(Romain Rolland, 1866~1944)은 새로운 기운, 희망을 불러 일으키고자 영웅들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늙은 유럽은 탁하고 썩은 분위기 속에서 마비되고 있다. 숭고하지 못한 물질주의가 사고를 억누르고‧‧‧ 비루한 이기주의에 허덕이며 질식하고 있다. 다시금 창을 열어젖히자. 자유로운 대기가 흘러들게 하자. 영웅들의 숨결을 들이마시자.”


그래서 선택한 첫 번째 인물이 바로 베토벤이었습니다. 그 자신 말할 수 없는 고난과 고통을 겪으며 초인적인 열정과 노력으로 마침내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위대한 음악으로 인류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준 사람! 그 시대를 위로하고 격려해 줄 영웅으로 베토벤보다 더 적절한 인물은 없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빈에서 날아온 메시지 [방석순]
왼쪽부터 모차르트의 기념비,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묘지


며칠 후 빈에서 친구의 메시지가 날아왔습니다. 중앙묘원 앞에 꽃 파는 가게가 있어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세 음악가의 기념비와 묘지에 꽃을 놓고 왔노라고. 그래서 짐짓 “감사해요. 내 맘대로 내 부탁 들어준 걸로 생각할게요.” 하고 농을 쳤습니다.

사진도 몇 장 날아왔습니다. 맨 먼저 모차르트의 동상 아래 빨강, 노랑, 하양, 세 가지 색깔의 장미 꽃다발이 놓인 사진이었습니다. 장미는 이제 막 정원에서 꺾어 온 듯 싱싱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사진에 뒤이어 보내온 메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꽃다발을 확대해 보세요.” 

무슨 뜻일까, 하며 사진을 확대한 순간 꽃다발을 묶은 노란 리본에 쓰인 제 이름을 발견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베토벤, 슈베르트 무덤 앞에도 제 이름이 적힌 빨간 리본의 장미 꽃다발이 놓여 있었습니다. 울컥, 숨이 막히고 눈물이 솟았습니다. 평생 위로를 받아온 음악의 주인들에게 감사의 꽃다발을 바치고 싶다던 소망이 뜻밖에도 그렇게 단숨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여기, 서울 땅에 앉아서 친구의 손으로. 

빈에서 날아온 메시지 [방석순]
세 음악가의 기념비와 묘지에 놓인 장미 꽃다발. 놀랍게도 리본에 필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세상에는 돈이나 물질보다 훨씬 더 귀한 것들이 많습니다. 가족이나 친구, 이웃과의 사랑과 이해, 공감과 배려, 친절과 감사 같은 것들이지요. 월남전에 참가했던 친구 하나는 바로 제 눈앞에서 지뢰를 밟아 전사한 소대장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아 50년째 기일마다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찾고 있다고 했습니다. 애틋한 전우애에 감동해 저도 현충원에 들른 길에 그의 묘소를 찾아가 묵례를 올린 적이 있습니다.

좋은 음악을 듣다 보면 저도 몰래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음악은 그렇게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정화해 주는 힘을 가진 모양입니다. 예기치 못한 친구의 배려와 친절은 또 다른 감동이었습니다. 그에 대한 감사와 들뜬 마음으로 그날 종일 세 음악가의 선율 속에 파묻혀 지냈습니다. 아름다운 음악, 따뜻한 우정에 오늘도 살아 있는 행복을 느낍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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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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