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기진 눈에 아른대는 하얀 좁쌀밥, 조팝나무꽃 [박대문]
허기진 눈에 아른대는 하얀 좁쌀밥, 조팝나무꽃
2022.05.04
조팝나무 (장미과)
추위가 가고 따스한 햇볕이 온 세상을 포근히 감싸는 계절, 봄이 되면 여기저기서 새 움이 트고 새싹이 돋아나며 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봄은 모든 생명체에게 활력, 환희, 기쁨을 주는 성장과 부활의 계절입니다. 겨우내 꽃에 눈이 고팠던 꽃쟁이들도 봄꽃이 피기 시작하면 어디서부터 가봐야 할지? 나날이 분주한 일정에 기쁨의 비명이 터지고 다른 꽃 찾아가느라 미처 가보지 못해 개화기를 놓친 야생화에 대하여는 다음 해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아쉬움도 남는 계절입니다. 차갑고 묵직한 흙덩이를 밀고 나오는 여리디여린 봄꽃과 새순의 곱고도 강인한 생의 의지를 감탄하며 즐기다 보면 어느새 봄이 후딱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봄꽃 탐방! 여리고 가냘픈 꽃에서부터 크고 화려한 꽃과 희귀성 야생화를 직접 찾아가 대면하는 일은 보고 즐기는 기쁨도 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끔 하는 기회도 됩니다. 꽃에 얽힌 꽃말과 사연, 앙증맞고 고운 모습, 어려운 주변 여건에도 불구하고 꽃을 피워내는 강인한 생명력, 꽃 탐방길에 얽힌 추억 등 다양한 방면으로 생각의 나래를 펴기도 합니다.
조팝나무꽃, 가까운 주변 거리에서나 산과 들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꽃입니다. 이 꽃을 볼 적마다 배고픈 시절의 보릿고개가 생각납니다. 4~5월에 피는 조팝나무는 가지에 다닥다닥 꽃이 붙어있는 모양이 하얀 좁쌀밥이 수북이 쌓여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또한 조그만 하얀 꽃은 마치 튀긴 좁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조팝나무라는 이름도 이러한 모습에서 연유한 것이라 합니다.
먼저 조팝나무에 관하여 고려 시대의 문인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시문집,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나오는 시 한 수를 소개합니다. 한학자인 지인께서 알려준 한시(漢詩)입니다.
黍飯花 (서반화)
花却纖圓色未黃 (화각섬원색미황) 꽃은 잘고 둥그나 누른빛이 아니라서
較他黍粒莫相當 (교타서립막상당) 기장알에 비교하면 서로 같지 않네
此名休爲饞兒說 (차명휴위참아설) 이 꽃 이름 굶주린 아이들에게 말을 마오.
貪向林中覓飯香 (탐향림중멱반향) 탐내어 숲속에서 밥 냄새 찾으리니.
서반화(黍飯花)는 기장밥꽃이라고도 하는 조팝나무꽃을 말합니다. 그 옛날 고려 시대에도 조팝나무꽃을 보면 허기진 눈앞에 아른대는 좁쌀밥으로 보였나 봅니다. 허기진 어린아이들에게 신기루처럼 나타난 하얀 쌀밥 모양의 꽃 무더기를 찾아 눈이나마 호강하고자 숲속을 헤매댔을 굶주린 어린아이들의 심정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시가 아닌가 싶습니다. 보릿고개가 한창인 4~5월에 하얀 밥처럼 소담하게 피어오른 꽃을 마주하면 배고픈 설움이 조금이나마 가셨을까? 아니면 배고픔을 더욱더 부추겼을까?
‘뭐니 뭐니 해도 배고픈 설움이 가장 크다.’고 합니다. 농업에 생계를 의존해 온 이 땅의 민초에게는 봄철이면 항시 겪는 ‘보릿고개’가 배고픈 설움의 역사를 대변해주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좁은 땅덩어리와 열악한 농사 환경에 수확도 적은데 가렴주구(苛斂誅求)에 시달린 민초의 삶에 봄은 참으로 잔인한 계절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봄은 산천에 풋나물이 돋고 꽃이 피는 희망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거리 없이 어렵게 겨울을 지내느라 쌀독은 비고 먹거리는 떨어지는데 허기진 배로 감당해야 할 농사일은 바빠지고 해는 길어지니 배곯아 보채는 어린 자식들을 보는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오죽하면 산과 들에 보이는 하얀 꽃 무더기가 좁쌀밥처럼 보여 조팝나무꽃이라 불렀을까? 조팝나무꽃을 볼 적마다 가슴이 찡하게 아려옵니다.
조팝나무는 늦은 봄에 잎보다 조금 일찍 또는 잎과 같이 꽃이 핍니다. 제주도와 북부 고산지대를 제외한 전국의 양지바른 곳에서 흔하게 자라는 키 작은 떨기나무로써 가느다란 가지에 자그마한 하얀 꽃들이 수백, 수천 개가 무리 지어 핍니다. 꽃 하나하나를 떼어 놓고 보면 좁쌀 밥알만큼 작아 보여 좁쌀로 지은 밥을 붙여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봄 햇살에 눈부시게 반사된 흰빛이 마치 하얀 눈이 온 것처럼 보이며, 잎 모양이 버들잎과 닮아 일본 사람들은 눈버들〔雪柳〕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조밀하게 다닥다닥 붙어 피는 하얀 꽃은 4∼6개씩 산형꽃차례로 달리며 가지의 윗부분은 전체에 꽃만 달려서 백색 꽃으로 덮입니다. 꽃잎은 달걀을 거꾸로 세운 모양이며 꽃받침조각이 뾰족하며 꽃잎, 꽃받침이 각각 5개씩입니다.
국내에 자라는 조팝나무 종류는 20여 종이나 됩니다. 꽃과 잎 모양에 따라 공조팝나무, 당조팝나무, 산조팝나무, 갈기조팝나무, 아구장나무 등 다양하며 흰 꽃만이 아니라 꽃 색깔이 연한 붉은색으로 피는 꼬리조팝나무, 참조팝나무가 있습니다. 이들 중 들판이나 산자락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조팝나무입니다. 또한 집 주위의 생울타리나 도로변 축대에 무리 지어 심어 놓으면 꽃필 때 흰 구름이 덮여 있는 듯해서 아주 보기가 좋습니다. 최근에는 정원이나 공원에 다양한 조팝나무류를 많이 심으며 원예품종도 많습니다.
조팝나무는 한약재로도 다양하게 쓰입니다. 뿌리는 상산(常山) 혹은 촉칠근이라 하여 학질을 낫게 하고 가래를 토하게 할 뿐 아니라 열이 심하게 오르내릴 때 약재로 쓰였다고 합니다. 북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말라리아에 걸리거나 구토할 때 또는 열이 많이 날 때 민간 치료 약으로 사용했으며 최근에는 버드나무와 함께 조팝나무에서 해열제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아스피린 원료를 추출한다고 합니다.
약재로도 유용하게 쓰이는 조팝나무는 아무래도 배고픈 시절에 하얀 쌀밥을 연상케 했던 봄철 보릿고개의 애환이 담긴 꽃입니다. 조팝나무와 함께 보릿고개의 배고픈 시기에 하얀 쌀밥을 연상시키는 또 하나의 다른 식물이 있습니다. 이팝나무입니다. 이팝나무는 낙엽성 교목으로서 늦은 봄 이팝나무 꽃송이가 온 나무를 덮을 정도로 핍니다. 이를 멀리서 바라보면 나무 전체에 핀 꽃송이가 사발에 소복이 얹힌 흰 쌀밥처럼 보입니다. 서울 시내에도 거리의 가로수로 심은 곳이 몇 군데 있습니다. 이팝나무는 입하(立夏)에 꽃이 피어 입하목(立夏木)이라 불리다가 이팝나무가 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이팝나무꽃의 하얀 꽃 무더기가 하얀 쌀밥으로 보여 붙여진 이름이라 합니다.
물질적 풍요가 넘쳐나는 요즘의 우리 사회에서는 ‘보릿고개’라는 단어가 생소하리만큼 굶주림에 절박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지금 우리는 보릿고개 시절의 그때보다 과연 더 나은 행복한 삶이라 여기고 있을까? 배고팠던 그 시절보다 오히려 더 힘들고 불만도 더 많아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는 옛말처럼 기본 욕구가 충족되고 나면 한 단계 더 높은 욕망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에 미치지 못하면 또 불만이고 안달입니다. 과연 욕망의 끝은 어디까지이며 행복의 척도는 무엇일까? 배고픈 설움을 벗어났음에도 결코 만족해하지 못하는 요즘의 사회를 보며 착잡한 마음으로 조팝나무꽃의 이름을 되뇌어 봅니다.
(2022. 5월 조팝나무꽃을 보며)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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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꽃사랑, 혼이 흔들리는 만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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