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우습냐고? 그래 우습다! [임철순]
국회가 우습냐고? 그래 우습다!
2022.04.25
더불어민주당 김용민(金容民, 46) 의원은 내가 사는 곳의 지역구 국회의원입니다. 초선이면서도 지난해 5월 당내 선거에서 수석 최고위원으로 당선된 강성 친문 성향의 정치인이지요. 민주당 초선 의원들의 모임 ‘처럼회’의 핵심인 김 의원은 국회의원이 된 뒤 문빠들의 극성스러운 성원과 지지를 업고 혁혁한 활동을 해왔습니다. 그도 여든 야든 나쁜 짓 잘 하는 사람들이 많은 법조 출신입니다. '나는 꼼수다’로 유명한 시사평론가 김용민(金容敏, 48) 씨와 한글 동명이인이어서 사람들이 더러 헷갈리는데, 내가 보기엔 어디까지나 피장파장, 도긴개긴인 거 같습니다.
어쨌든 그런 김 의원이 자신의 발언을 왜곡 보도했다며 6개 매체에 정정보도를 해줄 것을 언론중재위원회에 중재 신청했습니다. 지난 18일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 제1소위 회의에서 소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에 대해 김형두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국회에서 논의하는 게 차장님 보실 때는 무모하고 우스워 보이는 건 아니시지요?”라고 물었는데, 여러 신문이 이걸 확 줄여 “국회가 우습냐?”고 보도했다는 겁니다. 이 보도가 나가자 조종태 광주고검장이 “국회가 우습냐고 하셨더군요. 제가 묻고 싶습니다. 국민이 그렇게 우스운가요?”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오고, 일반 국민들의 항의가 이어졌다는 겁니다.
본인은 억울한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는 김 차장이 입법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입법정책적 사안인데 법제처가 이래라 저래라 의견을 제시하는 게 타당하냐. 앞으로는 그런 의견을 주지 않는 게 맞다”고 불쾌감을 표시하면서 그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니 문맥상 “국회가 우습냐?”로 들린다고 해도 하나도, 조금도, 눈곱만큼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나는 김 의원의 당선에 손톱의 때만큼도, 발톱만큼도 기여한 바 없지만 그래도 우리 동네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이라서 늘 그의 언동에 주목하게 됩니다. 내 탓이 결코 아닌데도 그의 어거지 정치활동에 ‘책임감’과 창피와 아슬아슬한 기분을 느끼곤 합니다.
사실 이번 논란에는 국회의원들의 평소 행태에 대한 해묵은 국민감정이 담겨 있습니다. 그들이 국민들을 우습게 보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며 국민들이 그들을 우습게 보는 것도 한두 해 묵은 일이 아닙니다. 홍서윤 민주당 대변인은 지난 9일 검찰을 향해 “검찰총장 대통령 시대가 다가왔다고 국민의 대의기관인 입법부가 우습게 보이냐?”고 물은 바 있습니다. 민주당의 입법 움직임에 검찰이 집단 반발하자 “집단행동은 수사권 분리를 재촉할 뿐”이라며 한 말입니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이지요.
우습다는 말은 1)재미가 있어서 웃을 만하다, 2)대단치 않거나 하잘것없다, 3)못마땅하여 보기에 거북하다, 이런 뜻입니다. 지금의 우스움은 그중에서도 3)에 가까운 감정, 나아가 아예 넌덜머리가 난다는 표현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민주당이나 김용민 의원만 우스운 게 결코 아닙니다. 민주당과 대립하며 ‘검수완박’ 저지를 위해 한사코 투쟁할 것 같던 국민의힘은 왜 저렇게 된 걸까요? 박병석 국회의장이 중재안이랍시고 내놓은 것에 합의하고 박수까지 치면서 113석 소수정당으로서 할 만큼 했다고 자화자찬하는 꼴이 정말 가관이고 우습습니다. 그렇게 양보를 해주면 앞으로 인사 청문회나 국정 운영에서 협치가 잘 될 거라고 믿는 것인지, 무슨 뒷거래가 있었던 건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검찰이 9월부터 선거사범과 공직자 수사를 할 수 없게 한 이번 중재안에 두 당이 합의함으로써 민주당의 떠나는 권력은 비리를 덮을 수 있게 되고, 새로 들어서는 국민의힘의 권력은 혹시 모를 정권수사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게 됩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합의, 아니 야합입니다. 당이 다를 뿐 국회의원들의 이해관계와 행태는 판박이처럼 똑같습니다. 그래서 “당신들도 법치 파괴 공범”이라는 비난이 국민의힘에 쇄도하는 것입니다.
나한테 “국회가 우습냐?”고 물어보면 “그래, 천 번 만 번 우습다. 어쩔래?”라고 반문할 것입니다. 사실 이 글을 쓸 때 처음엔 ‘그들은 선량이 아니라 쓰레기다’라고 제목을 붙이려 했습니다. 그러다가 바꾼 것입니다만, 앞으로 나라 꼴, 국회 꼴 돼가는 걸 보는 게 여전히 큰 고역일 것 같습니다. 정권이 바뀐다고 뭐가 달라지는 건지, 달라지는 게 있기나 할 건지 그저 한결같이 종전대로 걱정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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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철순(任喆淳)
한국일보 편집국장 주필, 이투데이 이사 겸 주필 역임. 현재 데일리임팩트 주필, 한국기자상 삼성언론상 등 수상. 저서 ‘한국의 맹자 언론가 이율곡’, ‘손들지 않는 기자들’, ‘노래도 늙는구나’, ‘내가 지키는 글쓰기 원칙’(공저) 등.
2006 자유칼럼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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