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방색(五方色)’과 함께하는 음식 문화 [방재욱]
‘오방색(五方色)’과 함께하는 음식 문화
2022.04.19
새봄을 맞이하며 화사하게 피어나는 꽃들과 파랗게 움터 오르는 새싹들을 보며, 음양오행의 목(木), 화(火), 수(水), 금(金), 토(土) 오행을 청(靑), 적(赤), 백(白), 흑(黑), 황(黃)의 5가지 색깔에 연계한 ‘오방색(五方色)’이란 말이 떠오릅니다.
색(色)은 사람의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감성언어로 백기(白旗)는 항복이나 평화를 의미하며, 붉은색 하트는 사랑을 의미하고, 길거리 신호등에서 보는 파랑색과 빨강색 신호는 진행과 정지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요리에서는 보기에 좋은 색감(色感)이 '맛 감' 나는 음식을 만드는 디자인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는데,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고 있는 음식들은 오방색과 어떻게 연계되어 있는 것일까요.
우리나라는 서로 다른 성향을 지니고 있는 오방색 음식을 고루 섭취해 자연에 순응하며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음식 문화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 실례로 비빔밥은 계란 노른자(황색)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을 의미하는 청, 백, 적, 흑색의 나물들로 이루어진 ‘컬러 푸드(color food)’로, 이를 비벼 먹음으로써 우리 몸의 오장육부를 건강하게 해줍니다.
만물의 생장이 시작되는 봄의 색깔로 오행의 목(木)에 해당하며, 청록(靑綠)으로도 표현되는 청(靑, 파랑)색은 생명, 젊음, 희망을 상징하는 색깔입니다. 파랑색은 방위로는 동(東)과 연계되어 있으며, 신체기관으로는 간장(肝臟), 그리고 맛으로는 신맛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녹색 봄나물을 섭취해 신진대사를 활성화해 춘곤증(春困症)을 예방해온 것으로 전해져오고 있습니다. 봄나물 냉이에는 비타민과 칼륨 성분이 많으며, 칼륨은 나트륨 배출에 도움이 되어 이뇨작용을 촉진해줍니다. 비타민 A, C와 칼슘이 풍부한 두릅에 들어 있는 사포닌 성분은 혈액순환을 도와 피로를 풀어주는 효과가 있으며, 쑥은 비타민 A를 생성하는 베타카로틴을 많이 함유한 식물입니다.
만물이 무성하게 피어오르는 여름을 의미하는 적(赤, 빨강)색은 오행의 화(火)에 해당하고, 왕성한 에너지와 젊음, 열정과 사랑, 그리고 적극성을 상징합니다. 빨강색은 방위로는 남(南)과 연계되어 있으며, 신체기관으로는 심장(心臟), 맛으로는 쓴맛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딸기와 자두에 들어있는 안토시아닌은 노화 방지에 효과가 있으며, 빨간 고추에는 혈액순환을 돕는 캡사이신 성분을 많이 포함하고 있습니다. 토마토와 수박에 들어 있는 라이코펜 성분은 전립선 건강과 노화방지, 그리고 알코올 분해 효과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행의 금(金)에 해당하며 결실의 계절 가을을 의미하는 백(白, 하양)색은 어떤 색이든 덧입힐 수 있다는 면에서 완전하고 절대적인 색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순결, 청결, 순수, 신성, 정직성 등을 상징하는 하양은 방위로는 서(西)와 연계되어 있고, 신체기관으로는 폐(肺), 맛으로는 매운맛을 담고 있습니다. 채소인 무에는 전분 분해효소인 디아스타제와 단백질 분해효소인 프로테아제를 많이 포함하고 있으며, 양파를 날로 먹으면 비타민 B1의 흡수가 좋아져 신진대사가 활성화되어 피로 해소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콩나물에는 간에서 숙취의 원인 물질인 알데히드 분해하는 데 필수적인 아스파라긴이 풍부하기 때문에 해장국에 많이 이용되고 있습니다.
오행의 수(水)에 해당하며 겨울을 의미하는 흑(黑, 검정)색은 절제된 아름다움과 신비스럽고 고급스러운 권위를 담고 있습니다. 지혜, 저장, 죽음을 상징하는 검정색은 방위로는 북(北)과 연계되어 있으며, 신체기관으로는 신장(腎臟), 맛으로는 짠맛과 연계되어 있습니다. 노화방지와 체력 증진, 그리고 탈모 방지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검은콩에는 혈액순환 촉진과 혈관 강화 기능을 도와주는 단백질과 비타민 B군이 풍부하며, 소화효소와 지방질이 많은 검은깨는 신장 보호에 도움을 줍니다. 예전 임금의 보양식은 주로 흑색 음식이었는데, 장수를 누린 숙종은 오골계와 흑염소, 검은깨, 검정콩으로 만든 ‘흑색탕’을 즐겨 먹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행의 토(土)에 해당하며 4계절을 상징하는 황(黃, 노랑)색은 우주 중심의 의미를 담고 있는 고귀한 색깔로 부와 권위, 행복과 명예, 그리고 조화를 상징합니다. 노랑색은 방위로는 ‘중앙’, 신체기관으로는 위(胃)와 연계되어 있으며, 단맛과 신맛을 포함하고 있는 노랑색 음식은 소화가 잘되기 때문에 소화기관이 약한 사람들에게 좋은 음식입니다. 대표적인 노란 음식으로는 늙은 호박, 유자, 감, 살구, 황도, 노랑 파프리카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들 음식에는 베타카로틴이 풍부해 건강한 시력 유지와 함께 피부와 점막의 건강 유지에도 도움을 줍니다. 인도인의 주식인 황색 음식 카레에는 강력한 항산화 물질이 많이 들어 있어 암세포의 성장을 돕는 물질의 작용을 약화시켜주기 때문에 인도인은 식도암에 잘 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음식이 단순한 먹을거리 차원에서 오감으로 느끼며 즐기는 차원으로 발전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는 ‘오방색(五方色)’의 다양한 음식을 고루 섭취하면서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일상이 바로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방법입니다. 오방색으로 고유한 맛 감과 시감(視感)을 지닌 우리 고유 역사와 문화가 담긴 먹을거리 ‘한식’의 세계화 추진의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오방색을 바탕으로 한 ‘컬러 농업’의 개발과 함께 소비자들에게 우리 음식에 담긴 색깔의 기능성과 영양적 가치에 대해 과학적으로 입증된 정확한 정보가 제시되어야 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방재욱
양정고. 서울대 생물교육과 졸. 한국생물과학협회, 한국유전학회, 한국약용작물학회 회장 역임. 현재 충남대학교 명예교수, 한국과총 대전지역연합회 부회장. 대표 저서 : 수필집 ‘나와 그 사람 이야기’, ‘생명너머 삶의 이야기’, ‘생명의 이해’ 등. bangjw@cnu.ac.kr
2006 자유칼럼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