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가는 부동산 보유세] "재산 적은 사람, 몇 배로 더 많은 세금 물어야 한다는 정부"
2주택자에게 고가 1주택자보다
높은 세율·공시가격 적용해
몇배 세금 더 내라는 게 공정인가
부동산 보유세가 꼬여도 너무 꼬였다. 재산이 적은 사람이 몇 배로 더 많은 세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 속출하게 됐다. 2주택자가 보유한 주택 가격을 모두 더해도 고가 한 주택보다 못한데, 세금은 몇 배를 더 내야 하는 식이다. 이런 식의 세금은 전 세계에 유례가 없다. 더 적게 가진 사람이 더 내는 일은 없어야 하며, 세금에 차등을 둔다고 해도, 더 가진 사람이 더 많이 낸다는 게 조세의 기본 원칙이다. 특정한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해 이 원칙을 어긴다고 해도 필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건 상식이다.
선진국은 다주택자 세 중과 없어
집값 폭등 주범으로 몰지도 않아
독일은 세감면·수선비 지원 혜택도
정부는 같은 재산이라고 해도 사람에 따라 가치를 달리 계산해 세금을 매기겠다고 한다. 똑같은 집인데, 어떤 사람이 갖고 있으면 집값을 10억 원으로 보고 세금을 매기는 반면, 또 다른 어떤 사람이 보유하고 있으면, 집값을 8억 원으로 보고 세금을 매기겠다고 한다.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일이다. 재산에 매기는 세금은 재산 가치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건 상식이다. 그런데 보유한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재산 가치를 다르게 보겠다고 하니, 말이 되는 일인가. 역시나 조세의 기본 원칙이 무너지고 있다.
정부가 원칙에 어긋나는 일을 벌인다는 게 믿기지 않지만, 사실이다. 정부는 보유세 산정 시 1주택자에게는 작년도 공시가격을 적용하겠지만, 2주택자를 비롯한 다주택자에게는 올해 17.2% 오른 공시가격 상승분을 온전히 반영해 세금을 매기겠다고 했다. 예를 들어 작년 공시가격이 8억 원인 집의 올해 공시가격이 10억 원으로 올랐다고 해도, 1주택자가 보유하면, 8억 원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고, 2주택자가 보유하고 있으면 10억 원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겠다는 것이다. 재산 가치를 누가 보유하느냐에 따라 달리 보겠다는 황당한 일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현재 종합부동산세율은 다주택자가 최고 6%로 1주택자보다 훨씬 높다. 다주택자에게만 높은 공시가격을 적용해 이런 고율의 세금을 부과한 결과는 불공정하다. 당연한 얘기지만, 다주택자가 보유한 집 몇 채 가격을 모두 더해도 서울 강남의 고가 1채보다 못할 수 있다. 그런데도 세금은 몇 배를 더 내야 한다. 실제로 서울 강북 마포래미안푸르지오 84㎡와 광장현대 84㎡ 보유자는 집 두 채를 합친 공시가격이 서초구 아크로리버파크 84㎡보다 1억 원이 낮은데도 보유세는 3배인 6220만 원을 내야 한다고 한다.
노후 대비를 위해 집을 한 채 세놓은 퇴직자, 노모 봉양을 위해 집을 한 채 더 산 샐러리맨의 사례는 더욱 당황스럽다. 퇴직 후 정부나 가족에게 손을 빌리지 않고, 혼자 힘으로 살기 위해 주택 1채를 더 구입해 세를 놓는 사람들이 꽤 있다. 월세 소득으로 검소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상당수다. 이들에게 훨씬 고가의 주택에서 훨씬 부유하게 사람들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라고 하면 그게 과연 공정인가. 부모 봉양을 위해 시골에 집을 한 채 더 샀다는 이유로 자신보다 더 부유한 이들보다 더 많은 보유세를 내야 하는 상황에 몰린 사람들도 억울하기는 마찬가지다. 보유세가 효도세가 된 꼴이다.
이 모든 게 다주택자를 집값 폭등의 주범으로 몰아붙인 결과다. 현 정부는 재개발, 재건축을 비롯한 민간의 주택 공급을 틀어막아 집값이 오른 걸 다주택자 책임으로 떠넘겼다. 세금 폭탄을 투하했다. 그러나 그 결과로 집값이 더욱 올랐다. 고율의 양도세를 매기니, 다주택자들이 집을 매물로 내놓지 않는다. 시장에 공급이 줄어 집값이 더욱 오른다. 고율의 보유세를 매기니, 그 세금이 세입자에게 전가된다. 전셋값이 더욱 오른다. 모두에게 손해가 되는 이런 정책을 왜 펴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집값 급등의 책임을 다주택자에게 전가할 목적이 아니라면, 할 이유가 없다.
독일은 국민 중 51%가 민간 임대, 다시 말해 다주택자가 세놓은 집에 살고 있지만, 2000년대 들어 집값은 가장 안정된 나라가 됐다. 반면 싱가포르는 92%가 자가에 살지만, 집값 급등락이 심한 나라다. 2000년대 들어 미국은 대출 지원 등으로 자가 보유를 70% 수준으로 밀어붙이더니, 집값에 거품이 끼게 됐다. 2008년 거품이 꺼지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왔다. 이런 역사적 사실은 다주택자가 집을 여러 채 사서 임대를 놓는 게 집값 상승의 이유가 아니라는 걸 설명한다. 임대 수요가 있기에 집을 사서 세놓은 것이다. 다시 말해 집이 부족하니까, 높은 전월세를 받을 수 있을 거 같으니까, 사람들이 집을 사서 세를 놓는 것이다. 그런 수요가 높다면, 집을 더 지어 공급하는 게 올바른 대책이다. 집은 못 짓게 하고 세금 폭탄을 투하하니까 집값이 더 오르는 것이다.
선진국의 보유세제는 한국과 완전히 다르다. 집값이 비싸다고 더 높은 보유세율을 적용하지도 않는다. 다주택자에게 세금을 중과하지도 않는다. 만약 다주택자가 집값 상승의 주범이라면, 선진국이 이런 식의 세금 정책을 펼 이유가 없을 것이다. 오히려 한국과 반대로 임대 사업자를 지원한다. 독일은 세를 놓는 집 주인에게 유지 수선비를 지원한다. 민간 임대 사업자에게는 면세 혜택도 제공한다. 공실 등으로 임대 소득 손실이 발생하면 세금도 줄여준다. 독일의 집주인들이 정부의 임대료 규제를 받아들이는 것도 각종 혜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독일에서 규제만 배워 왔다. 혜택 대신 세금 폭탄만 투하했다.
[김인수 논설위원]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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