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어리뻐꾸기와의 40년 [방석순]
벙어리뻐꾸기와의 40년
2022.03.22
중학 시절 미술 선생님은 칠판에다 여러 그림들을 늘어놓고 감상을 묻기도 하고, 그림 설명을 해주기도 하셨습니다. 어린 눈에 유독 인상 깊었던 그림 한 점이 있었습니다. 길고 가느다란 호리병과 둥글납작한 항아리가 나란히 탁자에 놓인 그림이었습니다. 똑같은 교복, 똑같은 빡빡머리, 뭐든 같아야만 한다고 생각하던 때여서 그랬을까요. 왜 그렇게 서로 다른 물건 둘을 나란히 그렸을까, 궁금했습니다. 하나는 길고 다른 하나는 짧고, 하나는 가느다랗고 다른 하나는 통통하고, 그래서 더욱 조화롭고 균형을 이루는 것이라고 선생님은 설명하셨던 것 같습니다.
살아가며 세상살이도 그와 흡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똑같은 생김새나 성격의 부부, 친구가 어울리는 경우보다 다소 대조적인, 어찌 보면 사뭇 달라 보이는 모습을 더 자주 보게 됩니다. 한쪽이 활달하면 다른 한쪽이 차분하고, 한쪽이 조용하면 다른 한쪽이 수다스럽고. 저희 부부 사이는 뭐가 잘못된 것인지 제가 비교적 말이 많고, 아내는 말이 없는 편입니다. 아니, 아예 벙어리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내를 ‘벙어리뻐꾸기’라고 놀려줍니다. ‘뻐꾸기’ 하면 으레 먼 숲에서 들려오는 은은한 ‘뻐꾹’ 소리를 연상합니다. 그 소리가 하도 좋아 뻐꾹 시계도 만들었을 겁니다. 그런데 ‘벙어리뻐꾸기’ 소리는 전혀 다릅니다. 무엇엔가 눌린 듯 숨어들 듯한 소리로 ‘버버 버버’ 해서 거의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물론 아내는 저를 ‘잔소리꾼’이라며 반격하지요.
저는 모처럼 맘에 드는 식당엘 다녀오면 꼬박꼬박 옥호(屋號)와 전화번호를 기록해 둡니다. 다들 그렇게 하는 것 아닙니까. 제 아내만은 그런 거 절대 안 합니다. 가고 싶을 때 그냥 찾아가는 거지요. 혹 그 집이 쉬는 날일 수도 있고, 손님이 넘쳐 더 이상 못 받을 때도 있을 텐데, 아내는 그런 자잘한 계산은 않고 통 크게 맘 편히 잘 살고 있습니다.
아내쪽 친척 결혼식에 함께 가기로 한 날이습니다. 아내의 성향을 잘 알아서 집을 나설 때까지도 예식장 이름이 뭔지, 전화번호는 어찌 되는지 묻질 않았습니다. 순전히 제 불찰이지요. 대충 들은 방향대로 운전해 가다가 이제 슬슬 목표물을 확인해야 할 지점에 이르렀습니다. 비로소 “그 예식장 이름이 뭐래?” 하고 물었습니다. 아내는 이름은 모르지만 근처 네거리에 들어서면 쉽게 찾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몇 번 왔다갔다해도 예식장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참 헤맨 끝에 네거리에서 꽤 떨어진 곳에서 간신히 찾아냈습니다. 허겁지겁 뛰어 들어가 혼주와 인사도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뭐? 할 것 다 했잖아! 아내는 그런 식입니다. 더 따져봐야 입만 아프고 싸움만 길어집니다.
어느 날 점심 무렵 아내는 혼자 옷을 챙겨 입고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디 가게?” 하고 물었더니 “아니, 당신 왜 그러고 있어요?” 하고 나무랍니다. “왜, 무슨 일인데?” “아니, 내가 전화하는 소리 못 들었어요?” 세상에, 아들과 점심 약속을 하고선 나보고 그 전화 소리를 못 들었느냐고 야단치는 거였습니다.
저희 집엔 바가지가 없습니다. 흔히들 마누라 바가지에 못살겠다는데 저는 아내가 너무 말이 없어 답답해서 못 살겠다고 느낄 때가 더 많습니다. 꼭 필요한 말 아니면 입을 여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아니, 때때로 꼭 필요한데도 말을 않으니 오히려 답답할 뿐이지요. 물론 입이 무거워 좋을 때도 있긴 있습니다. 어떤 모임에서는 안식구가 재잘재잘 너무 떠들어 함께 나오기 겁난다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그런 점에선 절대 안심입니다. 주위에서 장황하게 떠들든 말든 아내는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도로 깔끔하게 인사를 마무리하니까요.
그날은 정다운 사람들과 즐겁게 만찬을 마치고 귀갓길에 올랐습니다. 집에 좀 더 빨리 편히 가려고 차를 끌고 나왔다가 길이 막혀 혼이 나긴 했지만. 그래도 모임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끝나고 이제 차를 세워둔 곳까지 버스를 타고 가면 만사오케이.
오랜만에 가는 길이라 버스 노선을 확인하며 두리번거리는데 아내가 잽싸게 먼저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뒤따라 오르며 혹시나 싶어 “OOO 가는 버스지요?” 물었는데 기사가 대꾸를 않습니다. 다시 한 번 물었더니 오히려 언짢은 기색입니다. 혼잣소리로 “왜 대답을 않는 거야?” 툴툴거리는데 기사가 “다인승 맞죠?” 하고 되묻습니다. 아내가 “네!” 하고 간단히 대답했습니다. 그제서야 사태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아내가 교통카드를 찍지 않고 좌석에 앉았는데 뒤이어 오른 제가 딴소리를 해대 승차요금에만 신경 쓰던 기사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이지요.
자리에 앉아 잠시 혼란스러운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아내 역시 아내답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또 슬그머니 기분 나빠 하려다가 ‘아니야. 저 사람이 지금 속으로 미안해서 암말도 못하고 있을 거야.’ 하고 맘을 다스렸습니다. 골목길에서 차를 되찾아 집으로 올 때까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튿날 아침 지난밤 일은 까맣게 잊고 있는데 다른 말끝에 아내가 추궁했습니다. “어젯밤 집에 올 때 당신 언짢아서 한마디도 안 한 거죠?”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우리는 여태 이렇게 알콩달콩 다투어가며 심심치 않게 살고 있습니다. 기가 막혔다 뚫렸다 하면서. 예전 운동회에서는 두 사람이 이웃한 다리 하나씩 끈으로 함께 묶고 달리는 경주가 있었지요. 둘의 보조가 맞지 않으면 맨땅에 곤두박질하기 십상입니다. 40년 넘게 엎어지고 고꾸라지고 코피 터지고 무릎 까지고 하다가 기력이 쇠한 이제야 간신히 둘의 발걸음을 맞추어가는 느낌입니다. 신참 부부들에게 훈수 한번 두어도 된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원만한 부부생활? 결코 사랑만으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라고! 다리 묶고 달리기처럼 부단한 노력과 실패 끝에 비로소 얻어지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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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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