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투표지 못맡겨” 투표지 갖고 돌아간 확진자...본투표 사실상 불허
선관위 “지역 선관위가 상황 기록 확인해 결정”이라지만
일부 지역 선관위 “누가 투표 않고 갔는지 기록 없어”
제 20대 대선에서 코로나 확진·자가격리 유권자를 대상으로 하는 사전투표가 지난 5일 치러졌다. 하지만 상당수 투표소에서 ‘신분증을 낸 뒤,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기표소에 들어가기 전에 그냥 돌아간 사람’이 여럿 나왔다. ‘추워서’, ‘아파서‘, ‘대리 투표 방식이 불만이어서’ 등 이유도 다양했다. 확인 결과 이런 사람들은 5일 직접 투표용지를 수령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9일 본투표에 대부분 참여할 수 없는 상황으로 드러났다.
당사자들 “투표지 구경도 못했고, 본투표 불가 공지도 없었다”
모르고 돌아간 유권자 본투표 시도시 혼란 예상
조선닷컴은 7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확진자 사전 투표장에서 신분증을 보여준 뒤, 기다리다가 투표용지를 받지 않은 상태로 귀가한 유권자’의 본투표 여부에 대한 중앙선관위 방침을 물었다. 답변은 “일괄 구제는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이렇다.
격리·확진자 투표는 ①야외 투표소에 도착한 유권자가 신분증을 투표사무원에게 주면 ②투표사무원이 신분 확인을 거친 뒤 ③유권자에게 ‘선거인본인확인서’를 작성하도록 한다. ④투표사무원이 유권자 신분증과 선거인본인확인서를 가지고 ⑤유권자를 밖에서 대기시킨 상태에서 투표소 안으로 들어가서 ⑥투표용지를 대리 발급 받고 ⑦유권자에게 돌아와 신분증과 투표용지, 봉투를 준다. ⑧유권자는 임시로 설치된 기표소에서 기표를 하고, ⑨투표사무원이 나눠준 봉투에 투표용지를 넣어 투표사무원에게 넘기면, ⑩투표사무원은 다시 투표참관인과 함께 투표소 안으로 이동해 투표함에 넣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공직선거법상 투표함은 투표소 1곳당 1개여야 한다.
쉽게 말해, 유권자가 일단 투표장에 도착해 신분증을 제출하면, 당사자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실내에선 그 사람의 투표용지가 발급되는 구조인 것이다.
문제는 ‘투표용지 발급 기록’은 전산에 분명하게 남은 반면, 이후 해당 유권자의 ‘투표지 수령 및 실제 투표 기록’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각 지역선관위가 자체적으로 ‘사실 확인’을 거쳐 본투표를 허용할 것인지, 투표 거부 처리할 것인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확인의 방법에 대해서는 “지역선관위가 투표장 특이 사항을 기록한 ‘투표록’ 등을 전반적으로 검토하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현장에선 이 같은 중앙선관위 방침을 ‘사실상 불허’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서울 강동구 상일1동 투표소가 대표적 사례다.
지난 5일 오후 5시5분쯤 상일1동 주민센터 외부에 수십m 긴 투표 대기행렬이 생겨났다. ‘격리·확진자 사전투표장’으로 향하는 줄이었다. 주민센터 안에서 투표사무원이 나오더니, 대기 행렬을 돌며 투표자 신분증을 한꺼번에 걷어갔다.
투표가 시작됐다. 1명당 3분 넘게 걸리는 느린 진행이었다. 이때 서울지역엔 초속 4.4~5.5m의 꽤 강한 바람이 불었고, 평균 체감기온은 1도 안팎이었다. 대기행렬에선 손에 입김을 불어넣는 모습도 보였다.
오후 6시20분쯤. 투표사무원이 기표된 투표지를 허술하게 들고 실내의 투표함에 가져가는 상황이 유권자들 눈앞에서 반복되자, 대기자 일부가 목소리를 높여 항의했다. “이런 식이면 투표 안한다”는 고성이 터져나왔다. 그러자 투표사무원은 걷어갔던 신분증을 대기행렬의 모두에게 돌려줬다. “기다리세요”라는 것 외엔 다른 설명이 없었다.
이무렵 대기행렬에 끼어있던 확진자 A(25)씨는 몸이 아파 견디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본투표 때 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그냥 집에 왔다.
이튿날 오후, A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강동구선관위에 본투표 가능 여부를 물었다가 “당신 이름으로 이미 투표용지가 발급됐다고 전산에 나오기 때문에 본투표를 하실 수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A씨는 “나는 투표용지 구경도 못했고, 용지가 발급됐다는 안내조차 없었는데 무슨 소리냐”고 따졌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안내라도 해줬으면 아파도 참고 기다렸을 것”이라며 “이건 매우 잘못된 일”이라고 했다.
강동구 선관위 관계자는 “상일1동 확진자 사전투표소에서는 약 200여명이 투표지를 발급받았는데, 일부 유권자가 항의·귀가한 상황에서 투표가 끝났을 때 7장이 남았다”며 “투표록에도 항의 소동이 있었다는 것만 적혔을 뿐, 누가 그냥 갔고, 누가 투표했는지는 기록되지 않았다”고 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논란이 됐던 전북 전주 농촌진흥원 투표소처럼 봉투 외부에 이름을 적도록 했다면, 적어도 투표자 파악은 됐겠지만, 그런 경우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대부분 투표소에서 재투표는 어려울 것이란 의미였다.
선거 당일 대규모 혼선이 빚어질 우려가 제기된다. 중도 귀가자 상당수가 이 같은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익명의 선관위 관계자는 “5일 현장에서 ‘나는 본투표 할 거다’라며 돌아간 유권자가 꽤 있었다고 들었다. 이들이 9일 본선거일에 투표장에 와서야 상황을 알게되면 가만히 있겠는가”라며 “중앙선관위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최훈민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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