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 [권오숙]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
2022.03.02

 


최근 우리나라의 서점가에 반가운 베스트셀러 한 권이 등장했습니다. 2021년 12월 22일에 초판이 발행되었는데, 약 한 달 만인 2022년 1월 28일에 10쇄를 찍었습니다. 인문학 서적 분야에서는 가히 놀라운 속도입니다. 책의 제목은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 너무 평이하면서도 솔직한 책 제목에 ‘이거 뭐지?’ 하는 뜨악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Wonderworks: The 25 most powerful inventions in the history of Literature 라는 원제를 의역한 것이었습니다. 문학 작품이 발명품이라고? 그것도 '막강한 힘을 지닌 발명품'?

잔뜩 호기심에 부풀어 당장 저자에 대해 찾아보았습니다. 앵거스 플레처(Angus Fletcher)는 미시간 대학교에서 신경과학을 공부했고, 예일 대학교에서 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세계 최고 스토리 연구 학술 기관인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의 <프로젝트 내러티브>(Project Narrative) 소속 교수입니다. 한마디로 그는 스토리텔링 기술 전문가입니다. 그리고 이 책은 그가 공부한 두 가지 학문인 신경과학과 문학을 접목한 것입니다. 그는 문학을 인류가 필요에 의해서 개발한 테크놀로지 중 하나로 보고 서문에 이렇게 썼습니다.

“문학의 테크놀로지는 신석기 시대의 도끼나 청동기 시대의 쟁기, 그 밖에 금속과 돌과 뼈로 만들어진 여러 창조물과 확실히 구별되었다. 그러한 창조물은 세상에서 살아남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외부로 눈을 돌렸지만, 문학은 우리 자신으로서 살아남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내부로 눈을 돌렸다...... 인간 생물학에서 제기되는 심리적 도전에 맞서도록 돕는 서술적, 감정적 테크놀로지였다. 아울러 인간으로 존재하는 데서 제기되는 의심과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발명품이었다.”

 

 



총 25장으로 구성된 각 장에서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부터 셰익스피어의 『햄릿』, 심지어 현대의 <곰돌이 푸> 스토리까지 특정 문학 작품들을 선정하여 그 작품들이 우리 마음에 작동하는 방법을 설명합니다. 어떻게 슬픔과 불안, 외로움과 비관적 기분을 치유하고, 창의성과 용기, 사랑과 공감 등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 그리고 그 뒤에서 신경과학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자세히 설명합니다.

문학이 지닌 이런 치유 효과에 대해서는 이미 기원전 4세기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 (Poetics)』에서 '카타르시스(catharsis)'라는 용어로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때 '카타르시스'란 '정화(purgation)', '정제(purification)'라는 뜻의 의학 용어인 그리스어 katharsis를 차용한 것입니다. 그리고 '정화'란 건강한 신체에 필요한 체액의 균형을 위해 '과도한 체액을 제거'한다는 뜻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의학용어를 비극이 지닌 정신적 정화 작용을 의미하는 메타포로 사용했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스승인 플라톤의 예술론에 반론을 제기하기 위해 『시학』을 썼다고 추측합니다. 플라톤은 『국가론』 제 10권에서 이데아론에 입각하여 예술가들은 진실재인 이데아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상 또는 영상을 모방하는 데 불과하여 아주 위험한 존재라고 주장합니다. 또한 시는 인간의 자제력을 강화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고삐를 풀어 “우리가 마땅히 시들어지게 만들어야 할 것에다 물을 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시는 인간을 히스테릭하고 무절제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극은 '연민'과 '공포'의 감정을 너무 자극하여 사람들의 정신을 압도해서 국민, 특히 청소년의 교육에 극악한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이 두 감정을 언급함으로써, 그의 책이 플라톤의 주장에 대한 반론임을 드러냅니다. 그는 오히려 계속 억압될 경우 언젠가는 위험하게 폭발할 수도 있는 '연민'과 '공포'의 감정을 비극이 안전하게, 관례적으로, 그리고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출케 함으로써 오히려 정신을 건강하게 유지해준다고 썼습니다.

 

 



​현대의 인지 심리학자인 키이스 오틀리(Keith Oatley)도 문학이 지닌 치유 효과를 주장했습니다. 『꿈 같은 그런 것: 픽션의 심리학』(Such Stuff as Dreams: The Psychology of Fiction)에서 그는 픽션이 지닌 변화의 힘에 대해 “픽션을 읽을 때 독자들은 넌픽션을 읽을 때보다 더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에 변화를 받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에 의하면 픽션 독자는 주인공에 감정이입을 하게 되고, 그들의 삶과 결정과 자신들의 삶과 결정을 비교합니다. 그러고 나서 그 경험을 통해 자신들의 평상시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습관적인 자아 구조'에서 자유로워집니다.

이런 여러 주장들을 종합해보면 어떤 도덕적 설교보다도 문학에 인간을 교화하는 특별한 힘이 있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에게 문학이 필요합니다. 백일하에 드러난 범법 행위에도 뻔한 거짓말과 은폐로 일관하는 대선 주자들에게는 진실로부터 도망치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죄와 그 처벌을 온전히 감내했던 『오이디푸스 왕』이, 권력에 대한 헛된 야망과 욕망에 사로잡혀 이 시각 적대국 사람뿐만 아니라 자국민까지 도탄에 빠뜨린 전쟁광에게는 헛된 권력욕에 휘둘렸다 파멸한 『맥베스』가 필요해 보입니다. 그리고 참기 힘든 저급한 대선 행보,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전쟁 도발 등에 시달리는 우리 모두에게는 인간의 온갖 어리석은 행동을 웃음으로 승화시킨 『걸리버 여행기』가 필요해 보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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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권오숙
한국외대에서 셰익스피어 연구로 박사학위 취득. 현재 한국외대, 서울과학기술대 외래교수, 한국셰익스피어학회 연구이사. 주요 저서 『셰익스피어: 연극으로 인간의 본성을 해부하다』 『청소년을 위한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와 후기 구조주의』, 『셰익스피어 그림으로 읽기』 등. 『햄릿』, 『맥베스』,『리어 왕』, 『오셀로』, 『베니스의 상인』, 『살로메』 등 역서 다수.

 


2006 자유칼럼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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