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와 명태는 형제간[정달호]
대구와 명태는 형제간
2022.02.10
제철에 먹어야 좋은 건 채소나 과일뿐 아니라 바닷고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겨울철 입맛을 돋우는 별난 생선으로 우선 아귀나 방어를 꼽을 수 있지만 연안 지역이 아니면 제대로 찾아 먹기가 어렵겠지요. 전국 어디서든 사람들이 두루 즐길 수 있는 요즘의 제철 생선은 대구와 명태가 아닐까 싶군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겨울철에 가장 당기는 생선이 뭐냐고 물어보면 대개 이 둘을 대지 않을까요? 대구와 명태는 사실 겨울뿐만 아니라 사시사철 우리의 입맛을 돋우는 생선입니다.
지난달 중순에 여러 사람이 집에 모여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 한 참가자가 여수에서 막 보내온 커다란 대구 한 마리를 가져왔습니다. 얼마나 컸던지 아이스박스를 열면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죠. 5, 6 킬로는 족히 됨 직한 놈인데 요리해 먹기가 미안할 정도로 거룩해 보였습니다. 아무튼 이걸 탕으로 끓여서 일곱이 잘 먹고 네 명이 한 번 더 먹고 그래도 남아서 우리 두 식구는 두어 번을 더 먹었습니다. 며칠이 지나도 그대로 맛이 좋았지만 당분간 대구탕 생각은 더 나지 않을 듯하네요.
좋아하는 생선 중 특히 대구에 관하여 무언가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뜻밖에 대구탕을 실컷 즐기고 나니 지금 그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저는 생대구탕만큼 생태탕도 좋아합니다. 가끔 찾는 단골집은 생대구탕과 생태탕이 고정 메뉴인데 그 선택은 짜장면과 짬뽕만큼이나 마음을 볶지요. 저는 대개 생태탕으로 기우는데 귀해서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대구보다 덩치가 작은 명태에 더 정이 가서 그런 것 같습니다. 회유성인 명태에서는 힘들게 먼바다를 다녀온 독특한 냄새가 배어 있다는 느낌에다 몸통에 드러난 고유한 무늬가 마음을 끌기도 하죠.
대구에 관한 어떤 책에서 여태 모르던 사실을 발견했는데, 대구와 명태는 같은 과(대구과)에 속하는 바다물고기라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크기는 달라도 두 물고기의 생김새가 서로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둘을 형제간으로 부르고자 하는 것이죠. 살이 희고 부드럽고, 말려서 먹기도 좋은 물고기라는 것 또한 둘 사이의 공통점이고요.
말린 대구는 오래 보관할 수 있다는 이점으로 한때 바이킹들의 전략물자이기도 했으며 중세 이후로 대구 무역은 네덜란드를 비롯한 여러나라의 국가 경제를 좌우했다고도 합니다. 대구는 유럽에서 국민생선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죠. 명태도 오랫동안 우리나라의 국민생선이었고요. 연근해 어획이 사라진 명태는 인근국에서 수입하여 지금도 여러 형태로 우리 밥상에 자주 오르고 있습니다. 모르긴 해도 저 못지않게 생태탕에 대한 향수를 가진 분이 많을 것입니다.
대구와 명태가 형제인 이유는 또 있습니다. 설날 등 명절 음식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전부침인데 대구와 명태가 전부침의 대표적 재료죠. 전에는 무슨 생선인지도 모르고 생선을 밀가루와 계란에 담갔다가 노릿노릿하게 부쳐 낸 생선전을 맛있게 먹기만 했는데 요즘 집사람과 함께 부침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해보고서야 그 흰살 생선이 대구 또는 명태인 줄 알게 된 것이죠. 이 두 생선이 우리의 식생활에서 차지하는 몫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유럽인은 중세 때부터 대구 잡이에 본격적으로 나섰는데 15세기에는 대서양을 넘어 신대륙 뉴펀드랜드까지 진출하여 대구를 잡았다고 하죠. 대구 어획량이 줄어드는 추세지만 지금도 미국 메인주에서 캐나다 뉴펀드랜드에 이르는 수역에서 대구가 가장 많이 잡힌다고 하네요. 대구 큰 놈은 길이가 2미터 가까이 된다고 하죠. 지금은 세계적으로 대구 어장들이 말라서 크건 작건 대구를 잡기가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늘어나는 대구에 대한 수요로 남획이 횡행했기 때문이죠. 우리 연안에서 사라진 명태도 같은 이유로 씨가 마른 것이 안타깝습니다.
대구가 유럽인들이 먹는 생선의 60%를 차지한다는 것도 놀라운 사실입니다. 바다에서 나오는 그 많은 생선 중 오직 대구가 그들의 식성을 채워준다는 것이 믿기 어려울 정도죠. 유럽인들이 흰살 생선을 좋아할 뿐 아니라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대구라서 그들의 식탁에 많이 오른 것 같습니다. 매주 금요일 고기를 먹지 못하는 금식일에도 대구 요리로 식탁을 채워왔다고 하는군요.
그들이 대구를 조리해서 먹는 방법은 매우 단순한 편이죠. 피시핑거라고 불리는 손가락처럼 가늘게 썰어낸 살을 밀가루에 살짝 묻혀 튀겨서 먹거나, 영국 국민 음식인 '피시 앤 칩스'처럼 머리를 뺀 생선살 튀김을 감자칩과 함께 먹는 정도인 것 같습니다. 한번은 프랑스에서 대구를 적당한 두께로 썰어서 올리브유에 절여 숙성한 걸 먹어본 적이 있는데 이렇게 대구를 요리해서 먹는 나라도 있구나 하면서 다소 놀라웠답니다. 서양인들은 대구의 머리, 내장, 알은 물론, 맛은 좋은데 처리하기 힘든 볼살도 버리다시피 합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나라에서는 다 귀중한 대접을 받는데 말이죠.
명태 또한 알, 내장 등 버리는 것 없이 다 요리하거나 가공해서 먹을 수 있지요. 생태탕 타령을 하였지만 굳이 생태가 아니라 잘 끓인 동태탕도 겨울철 입맛 돋우는 데는 딱이죠. 명태, 황태, 동태, 먹태, 백태, 코다리 등 말리는 방식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오는 명태는 가곡의 주제가 될 정도로 우리 먹거리 정서의 큰 부분을 차지해왔지만 전처럼 우리 연안에서 잡히지 않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죠. 근래 들어 명태 치어 방류를 많이 한다는데 이런 노력이 크게 성공하여 머지않아 명태 어획이 옛날로 돌아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형제간인 대구와 명태를 쉽게 먹을 수 없는 겨울을 생각하기 싫으니까요.
맛 좋은 대구가 잡히는 걸로 유명한 진해만 연안의 통영이 생대구탕을 비롯한 대구 요리로 유명한데 그중 '통대구'라는 반쯤 말린 대구 구이 요리가 최근 어느 신문에 소개되어 적잖이 구미를 당깁니다. 언제 통영에 가서 대구 요리를 차례로 먹어보고, 아울러 통영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볼락 구이도 다시 먹어보고 싶습니다. 생선을 매우 좋아해서 조만간 생선 이야기를 한 번 더 쓰게 될지도 모르겠군요. 아무튼 겨울 제철 생선을 많이들 즐기시길 바라겠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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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달호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줄곧 외교관으로 일했으며 주 파나마, 이집트대사를 역임했다. 은퇴 후 제주에 일자리를 얻는 바람에 절로 귀촌을 하게 되었고, 현재 제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한라산 자락에 텃밭과 꽃나무들을 가꾸며 자연의 품에서 생활의 즐거움을 찾는다.
2006 자유칼럼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