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부터라도 시간대별 전기료를 [이승훈]

 



제주도부터라도 시간대별 전기료를
2022.02.05

우리나라는 2020년 10월에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였고, 2021년 11월 제26차 글라스고 당사국 회의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2030년 탄소 배출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2019년도 4.8%인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30년까지 30%대로 확대한다고 합니다. 취임 초부터 추진하던 탈원전이 탈탄소의 에너지 전환과 엇박자를 내고 있지만, 탈탄소의 세계 조류를 거스르지 않으려면 필경 원전도 함께 가야겠지요. 전력산업은 석탄과 LNG 같은 화석연료 발전을 줄이면서 발전 연료 구성을 태양광 풍력과 원자력 중심으로 개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태양광 풍력과 같은 재생에너지는 해가 뜨고 바람이 불어야 발전 가능합니다. 전력이 필요 없을 때는 발전하다가 정작 전력이 필요할 때 발전이 불가능한 상황이 수시로 일어납니다. 이 통제 안 되는 특성을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이라고 하지요. 전력 저장장치(ESS)는 필요 없을 때 발전되는 전력을 저장했다가 발전 불가능한 시간대에 빼 쓰는 용도의 배터리입니다.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는 유망한 수단인데 비용이 많이 들고 화재가 잦은 단점을 극복해야 합니다.

 

 



원자력 발전은 일단 가동을 시작하면 정비해야 할 때 말고는 멈출 수가 없습니다. 전기가 남아돌아가는데도 계속 발전해야 하는 상황이 수시로 발생합니다. 남아도는 전기로 물을 높은 곳에 파 놓은 저수지에 퍼 올려 두었다가 이 물로 전기가 모자라는 시간대에 수력발전기를 돌리는 양수발전은 원자력 발전의 경직성에 대처하려고 등장한 발전 방식입니다. 간헐적 재생에너지 발전과 경직적 원자력 발전이 함께 가려면 간헐성과 경직성을 잘 대비해야 합니다.

2019년 한 해에 제주 전력망은 풍력 발전 전력을 수용하지 못하고 9,000여 MWH를 감발(減發), 즉 출력 제한하였습니다. 70KWH 용량의 전기차를 13만 회나 가득 충전할 수 있는 전력을 그냥 버린 것입니다. 같은 해 제주도에 등록된 전기차가 1만 8,000대였으니 도내 모든 차량을 각 7회, 즉 한 달 동안 충전할 전력을 버렸습니다. 당시 제주도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14%였으므로 전국이 재생에너지 발전을 30%대로 확대할 2030년에는 버릴 전력의 규모도 훨씬 더 커질 것입니다. 실제로 2021년에 차단된 풍력 발전은 본토 역송전 선로가 추가 확충되었음에도 2019년 대비 40%가 증가한 1만 2,000여 MWH였습니다. 아무리 바람 많은 섬이라도 너무하지 않나요?

아까운 전력을 왜 버려야 할까요? 그 까닭은 전력은 그때그때 사용량만큼만 공급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더 많이 공급되면 전압과 주파수가 올라가면서 전기 기기에 부담을 줍니다. 반대로 공급이 모자라면 발전기에 부담을 주기 때문에 심하면 10년 전에 겪었듯이 지역별로 돌아가며 정전해야 하는 순환정전 사태를 맞습니다. 전력거래소는 이러한 사태를 막기 위해 전력의 수요공급 상황을 실시간 모니터하면서 수요에 맞추어 공급을 조절합니다. 전체 발전을 최대한 줄여도 발전량이 수요를 초과하면 계통 안전을 위하여 초과 전력만큼 발전기를 차단해야 하는데, 차단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이 감발 대상입니다.

 

 

 


ESS를 장착한 태양광 풍력 발전이나 소규모 원전은 아직 미래기술입니다. 현 상태로 2030년도 재생에너지 발전 30%를 달성하면 높은 원가 때문에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합니다. 탄소중립위원회가 2050 탄소 중립 시나리오를 작성하면서 소요될 ESS 비용을 따져봤더니 787조~1,248조 원이라는 계산 결과를 얻었다지요. 2020년도 한국 GDP가 1,900조 원입니다. 에너지 전환에 이처럼 비용이 많이 드는데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고 견디겠습니까? 그런데도 비싼 전력을 엄청나게 많이 버리는 출력 제한을 앞으로 매년 규모를 확대해 가면서 반복해야 한다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까지는 전기가 필요할 때마다 스위치만 올리면 됐습니다. 발전기는 스위치가 많이 올라가면 돌아가다가 스위치를 내리면 발전량을 줄여나가다가 결국 멈춥니다. 그런데 원자력 재생에너지 시대에는 소비자들이 스위치를 내려도 발전량을 줄이기 어려워서 차단 비용이 낮은 발전기부터 강제로 차단합니다. 탈탄소의 에너지 전환을 피할 수 없다면 이 낭비를 줄이는 해법은 전력 소비를 전력이 남아도는 시간대로 돌리는 것뿐입니다. 이게 가능할까요? 세탁기는 기다렸다가 돌릴 수 있습니다. 에어컨은 30분 정도는 당기거나 늦춰 켜도 효과가 비슷하니 어느 정도 조절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근본 대책이 될 수 없습니다.

​과거의 전력 소비는 스위치를 켜고 끄는 패턴이었습니다. 전선이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는 전기를 쓸 수 없었지요. 그런데 이동 중에도 전기를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휴대용 라디오를 시작으로 배터리를 이용하는 전기기구가 그 예입니다. 그러다가 노트북과 휴대폰의 등장으로 재충전이 가능한 2차전지 시대가 열렸습니다. 충전할 때나 전선과 연결할 뿐 이동하면서 일단 충전한 전력은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전기차의 등장은 에너지 전환의 시류를 타고 충전수요를 크게 확대할 터입니다. 전력산업은 소비패턴의 이러한 본질적 변화를 수용하도록 바뀌어야 합니다.

 



전기가 모자라는 시간대에 충전수요가 몰린다면 재앙이지만 남아도는 시간대라면 축복입니다. 전기가 모자랄 때 비싸고 남아돌 때 싸도록 요금이 책정되어야 충전수요를 축복 쪽으로 유도할 수 있습니다. 제주도의 전기요금을 시간대별 수요공급에 맞추어 변하도록 바꾸면 엄청난 전력을 버리는 사태는 지금이라도 피할 수 있습니다. 시간대별 수급 사정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고 휴대폰을 통한 감발 규모 예보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경직적 요금 체제로는 재앙을 축복으로 돌릴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태양광이나 풍력 등 재생에너지 여건이 다른 나라에 비해 불량합니다. 에너지 전환 대책이 기술적으로 불안하고 이미 투자해놓은 화석에너지 인프라도 아깝습니다. 그러나 석유자원은 전혀 없으니 에너지 전환은 길게 보면 우리에게 오히려 더 유리합니다. 세계적 시류를 거스르기보다는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는 전향적 자세가 바람직할 것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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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이승훈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
서울대 교수, 전기위원회 위원장, 녹색성장위원회 민간위원장, 한국가스공사 사장 등 역임.
 
2006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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