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하루 미접종 르포] 방역 패스는 주먹구구식 행정..."실익이 뭔지 다시 생각해봐야"
코로나19 예방접종 정보를 껐다, 모든 식사 약속을 취소했다
대형마트 못 가게 된 첫날
미접종자로 살아보니
방역패스 논란이 뜨겁다. 지난 10일부터 전국의 3000㎡(약 900평) 이상 규모의 마트나 백화점, 서점, 쇼핑몰을 가려면 ‘방역패스(백신접종증명·음성확인제)’를 제시해야 한다. 당초 유흥 시설 등 일부에만 적용됐던 방역패스가 지난달 식당·카페 등 다중이용시설에 이어 대형마트와 쇼핑몰로 확대된 것이다. 지난달 10일 고등학생 등 450여 명은 정부와 전국 17개 시·도지사를 상대로 방역패스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고, 의대 교수와 의료계 인사 등 1023명은 지난달 31일 서울시장과 보건복지부장관, 질병관리청장 등을 상대로 방역패스 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했다. 이 신청을 일부 인용해 14일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는 방역패스 효력을 일부 정지했다. 다만 이 판단은 서울 지역에 한해서만 적용돼, 미접종자의 기본권과 개인의 신체결정권 침해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1·2차 화이자 접종을 완료했지만, 방역패스가 강화된 지난 10일 하루 동안 미접종자로 살아보기로 했다. 백신 접종 완료 후 통행증처럼 들고 다녔던 ‘네이버 QR 체크인’에서 코로나19 예방접종 정보를 껐다. 휴대폰에서 백신 정보 하나 껐을 뿐인데, 하루 만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백화점은 안되고 재래시장은 되고?
‘미접종자’가 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예정된 약속을 모두 취소한 것이다. 식당이나 카페에서 사적 모임은 10일 현재 4명까지 가능하지만, 미접종자가 끼어 있으면 불가능하다. 미접종자는 1인 이용, 즉 ‘혼밥’만 가능하다. 대부분 직장인이 그렇지만, 특히 기자에게 식사 자리는 취재원을 만나 정보를 주고받는 업무의 연장선. 계속 미접종자로 살아가려면 이를 포기하거나, 매번 PCR검사를 받고 음성확인서를 제출해야 한다.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 서서, 어디 가서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지 잠시 망설였다. ‘혼밥’이라도 ‘미접종자’라고 하면 안 받아준다는 얘기, 교복 입은 학생은 아예 들어오지도 못하게 한다는 말을 들어서다. 고민하다 대로변에서 한참 떨어진 소규모 식당에 들어갔다. 미접종자 혼밥이 가능하냐고 물었다. “가능하다”는 주인의 답에 “감사하다”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어제까지 아무 거리낌 없이 먹을 수 있던 밥을, 오늘은 눈치와 함께 먹었다.
밥을 먹고 광화문 교보문고로 갔다. 방역패스 시행 첫날이라 온라인상에선 서점이 해당하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900평 넘는 규모만 방역패스에 해당한다는데, 평소 자주 찾는 장소임에도 평형을 외우고 다니진 않으니 직접 가보는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광화문 교보문고에는 어른 키만 한 대형 입간판이 서있었다. 방역패스 의무적용시설이라 접종증명서나 음성 확인 후 입장이 가능하다고 했다. 첫 번째 거절이었다.
내친김에 평소 자주 장을 보러 가는 서울역 롯데마트에도 가보기로 했다. 대표적 3밀(밀접·밀집·밀폐) 환경인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데는 방역 패스가 필요 없었다. 예상대로 롯데마트 서울역점, 롯데 아울렛 서울역점 모두 입장 불가. 입구에서 안내 직원이 검은 옷을 입고서, 방역 패스를 일일이 확인했다.
궁금한 점이 생겼다. 롯데아울렛은 층마다 서울역과 출입문이 이어져 있다. 역사(驛舍) 인구를 자연스레 아울렛으로 유입하기 위해서다. 롯데아울렛을 거쳐 서울역 주차장으로 이동 가능하고, 아울렛 행사 매대가 역사까지 나와있는 경우도 많다. 이날도 그랬다. 직원에게 문의하니 “매대 물건을 살 순 있지만, 아울렛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고 했다. 또 “주차장을 이용하는 목적에 한해서만 미접종자가 아울렛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역사와 복합 쇼핑몰이 함께 있는 용산 아이파크몰도 비슷한 상황. 용산역을 드나드는 건 자유로웠지만, 바로 출입문 하나를 사이에 둔 아이파크몰은 들어갈 수 없었다. 미 접종자인 마트 아르바이트생이 ‘일은 할 수 있지만 구매는 불가능하다’고 한 지침을 두고 “물건 고르고 결제하는 순간 코로나 바이러스가 활동하나 보다”고 올린 글에 새삼 공감이 갔다. 다시 장소를 백화점으로 옮겼다. 롯데백화점 본점·신세계 백화점 모두 출입을 거부당했다.
숱한 거부 끝에 허락된 곳은 재래시장. 서울 종로구 통인 시장엔 체온측정기는 있었지만, 그 누구도 QR 코드를 체크하지 않았다. 코로나는 백화점만 좋아하는 건가.
미접종자는 과연 이기적인가
일각에선 미접종자를 두고 이기적이라며 이들에 대해선 코로나에 걸려도 치료비를 본인이 전액 부담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내에서 백신을 맞지 않은 미접종자는 350만명으로 추산된다. 만 18세 이상 성인 94%는 백신 접종을 완료했다. 과연 이들은 시민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얌체족일까.
중소기업의 현장직 사원인 김원일(가명·31)씨는 미접종자다. 화이자 백신 1차 접종을 했지만, 심장 두근거림·흉통 등의 부작용으로 2차 접종은 못했다. 그는 재택근무도 불가능한 상태. 매일 도시락을 싸와 혼자 따로 밥을 먹는다. 김씨는 “대단한 신념이 있는 ‘안티백서’라거나, 음모론 때문에 백신을 맞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랬으면 아예 1차 접종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정부는 의학적 사유로 인한 예외 등을 인정한다. 그러나 정부가 인정하는 중대 이상반응이 아나필락시스, 심근·심낭염 등으로 제한돼 예외 대상자로 등록하기는 매우 어렵다. 김씨는 “회사에서는 매일 무언의 압박을 가하고, 주변에선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한다”며 “맞을 수만 있다면 가장 맞고 싶은 사람은 나다. 미접종자 페널티 강화 정책으로 간다면, 나처럼 맞고 싶어도 맞지 못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했다.
경기도에 사는 이서연(가명·33)씨도 미접종자. 처음엔 백신 1차 예약까지 마쳤으나, 신우염으로 치료받고 있어 당시 의사가 접종을 말렸다. 그사이 접종을 마친 이씨 어머니가 부작용으로 크게 고생했다. 지인의 아버지는 인과관계는 알 수 없으나 백신을 맞고 나서 돌아가셨다. 이씨는 “어머니와 평소 체질이 비슷하기 때문에 백신 맞는 게 주저될 수밖에 없더라”며 “오미크론 변이가 생기면서 현재 백신의 효력에 대한 의구심도 생겼다”고 했다. 이씨는 “원래도 바깥출입을 최대한 자제하고 쇼핑도 온라인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마트나 백화점 못 가는 건 괜찮다. 이렇게 해서라도 코로나 확산을 막을 수 있다면 협조할 수 있다”면서도 “다만 이 기준이 과연 공정한가에 대해선 의문이 든다. 왜 마트는 방역패스가 필요하고 골프장은 필요하지 않은지 모르겠다”고 했다.
미접종자인 임신부 박다영(36·가명)씨도 “어렵게 가진 아이인 데다, 고위험군에 속해 일반 의약품도 조심하고 있어 백신 접종은 출산 이후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박씨는 “원래도 재택근무만 하고 병원 가는 날 외에는 히키코모리(외톨이)처럼 생활하고 있다”면서도 “지금 정부 정책은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백신을 맞지 못하는 사람을 이해 못 하는 것 같다. 백신을 맞아도 돌파 감염이 되는 상황인데, 백신 접종자가 마스크 벗고 식당에서 음식 먹는 것은 괜찮고 미접종자가 백화점에서 마스크 끼고 육아용품 사는 건 위험한 것인지 되묻고 싶다”고 했다.
마상혁 대한백신학회 부회장은 “지금처럼 3000㎡ 이상은 방역패스를 하고, 그보다 작으면 하지 않는다는 것부터가 방역 패스가 얼마나 주먹구구식 행정인지 보여주는 것”이라며 “규모가 크다고 해서 확진자가 많이 나오는 게 아니라, 단위면적을 따져서 사람이 얼마나 붐비는 곳인지 실제 환자는 얼마나 발생하는지 조사한 뒤 국민에게 동의를 구해야 한다. 방역패스 효과만 따지자면 80대 기저질환이 있는 노인과 30대 건장한 남성을 비교했을 때, 누가 더 돌파 감염에 취약하겠나? 그런데 방역패스 기준은 똑같다”고 했다.
마 부회장은 또 “정부는 해외와 비교해서 우리나라가 기본권 침해를 줄이기 위한 예외 조항이 많다고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며 “우리나라에서 학원은 학교만큼 중요한 곳인데, 여기에 방역패스를 적용했다. 우리나라는 이미 성인 접종률이 94%에 달할 정도로 상당히 높은 나라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진 게 없다. 백신으로는 집단 면역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다면 이제는 방역패스로 백신 접종을 강제해서 얻을 수 있는 실익이 뭔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남정미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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