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가 北에 침투하면 벌어질 일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

北 주민 인권 문제 관심, 지난 3년간 급속히 후퇴
미국법, 北 인권 개선 없이 제재 완화 허용 안 해
우한 폐렴 北서 발생하면 한·미 양국 안 나설 수 없어



    한반도에 또 하나의 위기가 꿈틀대고 있다. 언론이 미·북 또는 남북 정상회담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기 때문에 주목을 못 받고 있을 뿐이다. 조용히 움직이고 있는 이 위기는 바로 북한의 인권유린 문제다.

국제사회는 불과 6년 전 북한 인권 문제 해결을 위해 시작했던 노력들을 벌써 잊은 것 같다. 마이클 커비 전 호주 연방대법관이 이끌었던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는 북한 김정은을 비롯해 국방위·보위부·조선노동당·인민군·비밀경찰 등의 책임자를 '반인도 범죄'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세울 것을 권고했다. COI는 또 유엔 안보리에 북한 인권 문제가 상정돼야 한다고 했고, 실제로 안보리는 2014~2017년 정식 의제로 채택했다. 국제사회에선 전례 없는 진전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유엔인권최고사무소(OHCHR)는 반인도 범죄자들을 언젠가 법정에 세우겠다며 북한 인권 자료 수집을 목표로 서울에 사무소를 설립했다. 미 국무부 톰 말리놉스키 민주주의·인권·노동담당 차관보는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행사에서 북한 지도부를 향해 "당신들이 누군지, 주민들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다. 당신들은 언젠가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수십 년간 어둠에 묻혔던 북한 인권 문제가 이렇게 동력을 얻는 모습을 보는 건 정말 벅찬 일이었다. 하지만 지난 3년 이 동력은 급속히 시들해졌다.



2018년 유엔 안보리는 COI 보고서 발간 이후 처음으로 북한 인권 문제를 의제에서 제외했다. 2019년 이 문제를 다시 의제에 올리려는 노력은 있었지만, 그에 필요한 9국 동의를 얻지 못했다. 미국이 트럼프·김정은 정상회담을 이유로 찬성표를 던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 행정부는 북한 비핵화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었고, 트럼프와 김정은의 '브로맨스'는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어떤 관심에 대해서도 초점을 흐리게 만들었다. 미·북 정상회담은 3차례 열렸지만 북한 주민 인권 개선에 관해선 단 한 번의 성명도 나오지 않았다.

2004년 제정된 북한인권법에 따라 미국에 정착하는 탈북자는 급기야 작년에 0명이 됐다. 한국 정부는 북한 인권과 관련된 활동에 대한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여기엔 2017년 12월 20년 가까이 지속됐던 탈북자협회에 대한 자금 지원 중단과 북한인권재단에 대한 예산 92% 삭감 등이 포함됐다. 한국 정부는 2008년 이후 한 번도 빠지지 않았던 유엔 총회의 북한 인권 결의안 '공동제안국'에서도 발을 뺐다. 작년 11월 문재인 정부는 북한 어부 2명을 강제로 돌려보냈다. 그들은 송환되면 틀림없이 처벌될 것이라고 인권 운동가들이 두려워했는데도 말이다. 문 정부의 이런 조치에 대해 국제 인권 단체들은 작년 12월 공동 서한을 보내 비난했고, 토마스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도 비난의 대열에 합류했다.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문 정부는 휴전선 이북 형제자매의 인권보다 남북 문제에 더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지난 2년간 문 대통령은 김정은과 4차례 정상회담을 가졌지만 인권 문제는 단 한 번도 거론하지 않았다. 남북 관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된 것도 없으면서 말이다.



한국과 미국 같은 선진 민주국가들은 '편할 때'가 아니라 '언제나' 보편적 인권을 지지해야 한다. 다음 달 미 서부의 스탠퍼드 대학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잃어버린 동력을 되찾기 위해 주요한 회의를 열 계획이다. 동부에선 CSIS가 행동에 나설 것이다. 지난번 CSIS가 북한 인권 콘퍼런스를 열었을 때 뉴욕 주재 북한 대표부가 공식 항의를 하는 일도 있었다. 북한이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는 확실한 신호다.

물론 이런 움직임에도 한·미 양국 정부 정책 결정자들이 당장 북한 인권에 관심을 집중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두 가지 중요한 현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첫째, 미국 법은 인권 상황에 대한 개선 없이는 북한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어떤 제재 완화나 경제 유인책 제공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둘째, 코로나 바이러스가 북한에 침투한다면 한·미는 북한 인권 위기에 대해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게 된다. 북한은 전염병 확산 방지는 고사하고, 발생 사실 자체를 감지할 능력조차 없다. 그런 상황이 되면 미국과 한국은 북한 주민들을 돕기 위해 제재를 완화해야 하는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 맞닥뜨릴 것이다.

2020년을 북한 인권 개선 운동의 추락세를 뒤집는 해로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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