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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팔'에게서 배워야 할 것들
2016.01.26
‘응답하라 1988’이 케이블 TV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종영했습니다. 후반부에 스토리의 구성을 억지스럽게 우연에 기대어 이끌어갔다는 점, 그리고 시청률을 의식한 편집으로 드라마의 몰입도를 떨어뜨렸다는 점이 옥의 티로 회자되기도 하지만 필자의 소견은 나무랄 데 없는 드라마였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출연 배우들의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연기는 이 드라마의 가장 큰 성공 요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광고주들이 가장 선호하는 20대부터 40대까지의 시청률 10.9%, 점유율 52%를 기록하면서, 공중파 방송사들을 긴장하게 만든 ‘응답하라 1988’은 일명 '응팔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방영 내내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응팔' 신드롬의 원인을 필자는 보통사람들의 이야기가 만들어낸 위대한 결과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1987년 ‘보통사람 노태우’를 외치며 ‘보통사람들의 위대한 시대'를 열겠다며 야심 차게 출발한 노태우 정권 이후, 대통령이 다섯 번이나 바뀌었지만 단 한번도 보통 사람들이 대접받은 적은 없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보통사람들은 사회의 주류에서 한없이 밀려나서 1997년에는 IMF의 직격탄을 맞았고 2008년에는 금융위기 속에 다시 한번 지갑이 홀쭉해졌으며, 2010년 이후에는 치솟는 전세값에 점점 시 외곽으로 밀려나거나 아파트에서 연립주택으로 주거를 옮겨야 했습니다.경기가 안 좋아지고 소득이 낮아질수록 여가활동은 줄고 TV를 보는 시간은 늘어납니다. 대중은 잠시라도 현실의 고통을 잊고 TV를 통해 대리만족을 하고 한바탕 웃기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합니다. 그런데 TV프로그램이 항상 순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어서 오히려 스트레스를 주기도 하고 위화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과거엔 드러내놓지 않던 스타들의 억대의 출연료라든지, 수억대의 CF계약 금액이라든지, 그들이 사는 수십억짜리 호화빌라의 내부가 공개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흔히 말하는 연예정보 프로그램마다 스타들을 밀착 취재하면서 그들의 생활을 마치 졸부들이 돈 잔치를 하는 듯이 보여주었습니다. 인터넷 포털에는 누가 구입한 얼마짜리 빌라, 누가 구입한 얼마짜리 차량, 톱스타 소유의 빌딩 등등 주로 돈으로 이목을 끄는 기사들이 올라옵니다. 마치 하늘을 향해 바벨탑을 쌓아 올리듯 인기를 돈으로 환산하는 일도 잦아졌습니다. 십여 년 전만 해도 대한민국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 중, 천만 원 이상의 출연료를 받는 연기자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불과 10년도 되지 않아서 억대에 가까운 출연료를 받는 연기자들이 많아졌습니다. 보통 미니시리즈 드라마 한 편당 제작비가 3억 5천만원에서 4억 원 정도 듭니다. 톱스타의 출연료는 1억 정도 되고 주연급 스타의 경우도 5천에서 7천만 원 정도 됩니다. 물론 그 정도의 출연료를 줘도 이익이 남을 거라고 판단하니까 드라마를 제작할 것이고, 한류 열풍으로 해외 시장으로 수출되는 점을 감안하면 배우들의 억대 출연료를 그 자체만으로 문제가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스타급 배우들의 출연료가 이렇게 오르는 동안 드라마를 제작하는 스태프들의 제작 여건은 좋아졌는가? 그리고 드라마의 완성도는 높아졌는가? 하는 점은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SBS의 옴부즈맨 프로그램인 ‘열린TV 시청자 세상’에서 대중문화를 진단하는 정덕현 씨의 칼럼 중에 요즘 드라마에 결손 가정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에 대한 해석은 우리의 드라마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알려줍니다. ‘드라마에 편부 편모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톱스타 한 명을 캐스팅하면 제작비의 절반 가까이 지출을 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조연급 배우의 캐스팅에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이름 있는 조연급 중견 연기자의 출연료는 보통 500~1,000만원 정도인데 두 명을 캐스팅 해서 부부로 출연시킬 정도로 제작비가 넉넉하지 않기 때문이다.사실 출연료 상승이 드라마의 질을 저하시키고 방송사의 적자를 유발한다고 벌써 오래 전에 보고가 되었습니다. 2008년 PD저널의 기사를 보면 당시 양문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이 “MBC 〈에덴의 동쪽〉의 국대화 회장은 엄청나게 큰 집에 혼자 산다. 가정부도, 운전사도, 집사도 없다. 이게 말이 되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드라마 제작비의 80%를 주연 배우들과 작가가 가져간다. 그러니 전투 장면에 50명만 나오고, 비가 오는데 카메라 앞에만 물이 떨어지는 황당무계한 설정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바 있습니다.톱스타들의 몸값 상승 이면에는 연예기획사와 외주제작 시스템이 있습니다. 이 문제는 워낙 복잡해서 쉽게 설명하기 어려우나 간단히 정리하면 연기자와 방송사 사이에 중간에 거간꾼이 생겨서 출연료가 너무 가파르게 올랐다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을 부채질한 것 중 하나가 방송사가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즉, 수요와 공급의 측면에서 톱스타는 항상 공급이 모자랍니다. 그 결과 최근에는 공중파 방송사 조차 스타 연기자의 출연 섭외가 쉽지 않습니다. 갑을 관계가 사실상 뒤집어진 셈입니다. 스타 작가 또한 모시기 힘듭니다. 드라마는 광고 수입과 직결되기 때문에 시청자의 사랑을 받는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방송사 간부들은 이분들을 모시기 위해 삼고초려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어찌보면 자승자박을 한 셈인데 방송 일선에 있는 사람들이 뼈를 깎는 노력을 하지 않고는 이런 추세를 되돌리기 어려워 보입니다.그런데 ‘응답하라 1988’은 스타급 주연이 없이 보란 듯이 시청자의 격한 사랑을 받았고 신드롬까지 일으켰습니다. 거품이 잔뜩 들어간 연기자의 출연료를 절약하는 대신 실력 있는 배우를 제대로 쓴 결과이며, 이들의 캐릭터를 드라마에 제대로 녹여낸 연출자의 빛나는 연출 덕이었습니다.오늘날 방송사에는 ‘톱스타와 스타 작가의 작품을 만드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믿는 풍토가 만연해 있습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방송사와 제작사 그리고 연예기획사의 돈잔치에 지쳐가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방영된 ‘응답하라 1988’은 출연배우와 시청자의 거리감을 무너뜨리며 시청자 모두를 쌍문동 주민으로 만들어서 과거의 푸근했던 시절을 떠올려 주었습니다. 출연 배우들은 회당 수천만 원의 출연료를 받지 못했을 겁니다만 돈보다 값진 시청자의 사랑을 고루 받았습니다. 필자는 이런 드라마가 올해에는 SBS에서도 KBS에서도 MBC에서도 많이 방영되길 희망합니다.자본주의에 역행하는 얘기 같지만 우리 사회가 톱스타에게 너무 많은 비용을 지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광고모델료가 비싸면 제품 가격에 그 비용이 반영되고 출연료가 비싸면 다른 곳에서 비용을 삭감하게 되고, 그 결과 드라마 산업 전반에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이들이 받는 돈이 너무 여과 없이 노출되고 부풀려서 공개되면서 돈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세상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에, 돌아서서 씁쓸해지는 느낌입니다.청년실업, 비정규직 문제, 쉬운 해고, 임금피크제 등등 서민들의 허리를 졸라매는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응답하라 1988’의 성공에 숨어있는 대중들의 메시지를 기억해야할 것입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박상도
SBS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TV 토요일 아침 '모닝와이드'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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