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시 vs 한전' 변환소 건설 갈등

"평택 북당진변환소 33% 진척, 

제2의 밀양 사태 우려"


23일 오전 충남 당진시 송악읍 부곡리 부곡국가산업단지내 북당진변환소 부지의 모습./당진=전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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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당진시에 10억원 손배소 제기..."북당진변환소 건축 시급" <2015.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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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거대한 검붉은 진흙 벌판이 휑하니 눈앞에 펼쳐졌다. 중국에서 불어오는 미세 먼지 때문이었을까? 하늘에는 뿌연 먼지가 가득했다.


12월 23일 오전 충남 당진시 송악읍 부곡리 부곡국가산업단지에 갔다. 한국전력의 북당진변환소가 들어설 예정인 2만5000평 부지에선 굉음을 내는 불도저도, 굴삭기도, 작업하는 사람들의 분주한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진흙 벌판 위를 매서운 겨울 바람이 거칠게 핥고 지날 때 마다 뿌연 흙 먼지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공사 현장 진행 상황을 알리는 전광판 불은 꺼진 지 오래다.


“당진시가 건축 허가를 내주지 않습니다. 지난 3월부터 이런 상태로 방치돼 있습니다. 납기를 조금이라도 단축하려고 깊이 70m가 넘는 구멍을 미리 뚫어 놨는데, 쓸 수가 없어요. 하루 기계 유지 비용이 3억씩 나갑니다. 낭비도 이런 낭비가 없습니다.”


김홍장 당진시장, 한전 북당진변환소 건설 신청 연거푸 거부

“제2의 밀양 사태 우려"

한전과 충남 당진시가 당진과 평택을 연결하는 북당진변환소 건설 공사를 두고 갈등을 빚고 있다. 갈등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졌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 상태다. 제2의 ‘밀양 송전탑 사태’로 번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인 김홍장 당진시장은 ‘송전탑 지중화’를 요구하며 건축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 


북당진변환소 현장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80억원 짜리 건설 장비는 천막에 꽁꽁 쌓여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었다. 부지 이곳저곳의 건축 자재들은 진흙 속으로 가라 앉고 있었다. 


한전 관계자는 “한숨만 푹푹 쉬고 있다. 법원이 빨리 판단해줬으면 좋겠다. 건설 지연으로 인한 손해는 한국전력이, 궁극적으로는 고스란히 당진 시민과 충청 도민, 국민들이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북당진변환소 건설현장 현황판은 모두 꺼져 있다. /당진=전효진 기자


한전은 작년 12월 “2016년 8월까지 북당진 변환소를 짓게 해달라”고 당진시에 신청했다. 당진시는 “주민과 협의가 우선이다”며 허가를 거부했다. 한전이 같이 짓고 있는 경기도 평택 고덕변환소는 올 해 3월부터 건설 공사를 시작했다. 


북당진변환소는 교류를 직류로 바꿔 전송하는 송전 시설이다. 당진화력발전소, 태안화력발전소, GS EPS 발전소가 생산한 전력을 당진, 충청, 경기 동남부 고덕국제화지구에 공급하기 위한 필수 시설이다. 


한전은 당진 시민과 협의한 뒤 지난 4월 다시 신청을 냈다. 당진시는 재신청을 접수한 지 4개월 만인 지난 8월 “송전선로를 전 구간 지중화해야 한다”며 한전의 신청을 또 거부했다.


당진시 관계자는 “당진에는 189㎞나 되는 송전 선로와 526개의 송전탑이 있다. ‘철탑 공화국’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당진 화력과 북당진을 잇는 33㎞ 구간에 80여개의 철탑이 더 들어서면 경관 훼손, 지가 하락, 주민 건강 피해 등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전은 “송전선로 지중화 비용은 일반 송전선로 건설비의 10배 이상 든다. 법으로 인구밀집 지역 등 제한적인 경우에만 하게 돼 있다. 김홍장 시장 개인의 정치적 이해 때문에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한전은 11월27일 김 시장과 공무원 5명을 상대로 우선 1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11월20일에는 김홍장 시장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다.


한국전력은 “북당진변환소 준공이 지연되면 4200억원을 투자한 전력 설비를 사용하지 못한다. 공사를 못하는 시공사 손해가 연간 124억원, 사업 지연에 따른 선투자 비용 손실이 연간 157억원, 준공설비 미가동으로 인한 감가상각 손실이 연간 629억원 등 매년 1210억원에 이르는 손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전 관계자는 “주민들과 원만히 합의 했는데도 시장이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 국가기간망 사업인데 착수조차 못 하고 있다. 밀양의 악몽이 떠오른다”고 했다. 


경기 평택 고덕변환소는 올 3월 착공 “공정 33%”

한전 ”이러다간 민간에서 전기 사야 될 판"

반면 경기 평택항 근처 고덕변환소는 지난 3월부터 공사를 시작했다. 북당진변환소와 같은 규모로, 삼성전자 평택공장과 경기 남부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한 시설이다. 


12월 24일 오후 고덕변환소 부지에는 거대한 트럭들이 쉼 없이 오갔다. 현장 관계자는 “현재 공정 진행률은 33%로, 건물 외관은 거의 다 지어졌다”고 말했다. 진흙 벌판으로 방치된 북당진변환소 예정 부지와 딴 판이었다.

 

경기도 평택항 근처 고덕변환소 부지. 차질 없이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현재 공정률 33%다. /평택=전효진 기자


“고덕변환소를 빨리 지어도 소용이 없어요. 북당진변환소가 지어져야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습니다. 지금 상황이면 민자발전소에서 비싼 전기를 사서 (삼성전자 등에) 공급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한전은 “북당진 변전소가 2018년 6월까지 준공되지 않으면 4200억원 들여 지은 전력 설비는 무용지물이 되고, 평택 지역 전력 공급도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럴 경우 한전은 평택 인근의 민자발전소인 평택에너지서비스(하나대투증권 PEF인 ‘하나발전인프라 제1호 사모투자전문회사’가 가지고 있는 오성복합화력발전소)에서 전기를 사서 삼성전자에 공급해야한다. 연간 300억원 이상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고, 손실은 세금으로 보전해야 한다.


송·변전 시설 건설이 늦어지면 발전소 가동이 차질을 빚고, 결국 지자체의 세수도 줄어 든다.


한전은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금', ‘지역자원시설세’ 등 지자체 수입도 준다. 당진시가 매년 70억원, 태안군이 30억원, 충남도가 30억원 가량 손실을 볼 것”이라고 했다.


“당진 ‘송전탑 공화국’될라" vs “변환소 건설 반대 안해

당진 시민들도 답답"

당진 주민들의 생각을 들어봤다. 의견의 편차가 있었지만, “하루 빨리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당진에 송전탑이 많기는 해요. 한 번, 두 번 허락하다 보면 ‘송전탑 공화국'이 될 겁니다. 이번 기회에 막자는 주장도 이해는 갑니다.”(이모씨·55·당진시 송악읍)


“당진이 자기 이익만 내세워서 ‘변환소 건설을 막는다’, ‘지역 이기주의’라 하는데, 속상하지유. 솔직히 우리는 변환소 건설에 반대 안해요. 발전소 다 세워 놨는데 반대할 거면 애초부터 반대를 하든지···. 갑자기 (시장님이) 변환소를 못 짓게 하니까, 주민들 마음도 어수선합니다.”(한모씨·64·당진시 송악읍)


“우리 시장님인데, 나쁘게 말하고 싶지는 않아유. 근데 지금은 뭐 대화도 안되고 저 상태로 계속 되니까 우리도 답답하지유. 겉으로는 악수하는데, 속으로 원수지는거 아니고 뭐여. 우리도 안 해주는 이유가 뭔가 궁금해유. 기자님이 좀 대신 물어봐줘유.”(김모씨·59·당진시 송악읍)


당진 시민들도 답답해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당진 도심에는 흥겨운 크리스마스 캐럴 대신 무겁고 답답한 공기만 가득했다.

조선일보 당진·평택=전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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