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교과서 논란을 끝내자 [박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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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교과서 논란을 끝내자

2015.11.27


필자는 미국에서 2년 반 정도 대학원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한국과 미국의 사회와 문화를 비교할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 미국은 선망의 나라였고 미제는 다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접한 미국은 생각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상점에는 값싼 중국산 제품이 넘쳐났고 대도시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부부가 맞벌이를 해야 간신히 중산층 생활이 유지되었습니다. 의료비가 너무 비싸서 동네마다 walgreens, CVS 같은 대규모 프랜차이즈 약국이 성업 중이었고, 의료보험은 그 종류가 너무 많고 보장받는 혜택도 천차만별이어서 말 그대로 빈익빈부익부가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미국 사람들의 생활을 가까이 들여다보면서 ‘아, 우리나라가 참 좋은 나라구나’하고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다만, 한 가지 부러웠던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초·중학교의 교과서였습니다.

어느 날, 아들이 학교에서 교과서를 들고 집에 온 적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교과서는 매우 크고 무거워서 학생들은 교과서를 학교에 두고 공부합니다. 그런데 그날은 교과서를 보면서 해야 할 숙제가 있어서 선생님의 허락을 받고 교과서를 집에 가져왔다고 합니다. 하드커버에 컬러로 인쇄가 되어있어서 얼핏 보기에는 백과사전 같아 보였습니다. 호기심이 생긴 필자는 “이게 미국 교과서니?”하고 물어보면서 책장을 넘겨봤습니다. 모든 페이지가 유광으로 처리된 종이에 컬러로 프린트가 되어있었습니다. 국내 월간 여성잡지보다 더 좋은 종이를 이용해서 교과서를 만든 것입니다. 미국에서 출판되는 대부분의 책들은 재생용지를 사용해서 종이의 질이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 교과서에는 돈을 아끼지 않은 것입니다. 교과서는 학교에서 무상으로 나눠주지만, 분실했을 때 따로 구입하려면 최소 백 달러 이상 줘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필자가 본 교과서는 역사책이었는데 역사가 무엇인지, 서양 역사의 출발은 어디서부터인지 왜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필요한지 등등 석학들만이 대답할 수 있는 깊이 있고 간결한 정리를 싣고 나서 각각의 내용을 폭넓고 깊게 써 내려갔습니다. 말 그대로 교과서만 공부해도 충분할 정도로 제대로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교과서 덕에 미국의 서점에서는 참고서를 따로 팔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서점의 한 귀퉁이에 GRE와 SAT관련 서적 몇 종류만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필자가 공부를 하던 시절엔 몇 종류 되지 않던 참고서가 지금은 몇 배가 불어났습니다. 과목별로 교과서도 여러 종류, 참고서도 여러 종류입니다. 중·고등학생  자녀가 있는 가정은 새 학기가 시작되면 참고서 값 대기도 버거울 정도입니다. 대한민국 참고서의 시장규모가 어떤지, 사교육과 넘쳐나는 참고서와의 상관관계는 어떤지, 그 많은 참고서의 저자들은 어떻게 선정되고 그분들은 공교육에 종사하는지 아니면 사교육에 종사하는지 등등을 어디서 속 시원하게 통계를 내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있고 암묵적으로 그들을 챙겨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사교육의 폐해를 줄이려고 해도 줄이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요?

자식을 대학에 보내면서 허리 휘지 않은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있으면 있는 대로 사교육에 더 매달리고, 없으면 없는 대로 허리띠를 졸라매며 사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이 요즘 부모들의 현실입니다. 이런 학부모들에게는 검인정이니 국정이니 하는 얘기는 그저 배부른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국정화보다 시급한 것이 공교육의 정상화이기 때문입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 잘 잡는 고양이가 최고이듯이 국정이든 검인정이든 내 새끼 고생 안 하고 돈 덜 들이고 공부시킬 수 있다면 그게 진리인 것이 솔직한 부모의 심정입니다.

필자는 10월유신은 구국의 결단이고 ‘나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을 외웠으며, 이승복 어린이를 무참히 살해한 공산주의자들은 모두 흉측한 괴물처럼 생겼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필자를 비롯한 모든 386세대가 동일한 역사교육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1987년 민주화의 봄을 이끈 자랑스런 젊은 날을 간직하며 살고 있습니다. 국민은 스스로 거짓을 구별해 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 서슬 퍼렇던 시절에도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읽으며 그동안 배워왔던 것들의 오류를 깨우쳤는데,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필자 역시 1987년 민주항쟁에서 학교 앞 도로에서 전경들과 대치하며 머리 위로 날아오는 최루탄을 눈물을 삼키며 바라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시위를 이끌었던 분들은 지금 다들 한자리씩 하면서 이미 기득권에 편입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자녀는 금수저 은수저를 물고 있겠지만 그 당시 시위에 참여했던 많은 학생들은 이제 50대가 되어 지금은 명퇴와 은퇴 속에 앞으로 살 길을 걱정하고 있고, 그 사람들의 자식들은 취업난 속에 흙수저의 한계를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4·19의 빚을 진 기성 정치인들과 1987년 6월 항쟁의 빚은 진 386세대를 이끈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역사를 빌미로 국민을 이간시키고 분열을 획책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할 겁니다. 국민은 지치고 힘듭니다. 돈 없고 빽 없어서 서럽고, 있는 사람들의 횡포 앞에서는 굽실거리고 돌아서서는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지나간 역사가 어떻게 쓰이나 보다 앞으로 써 나갈 역사를 생각하면 막막하기만 합니다.

여당과 야당이 거리에 붙여 놓은 현수막을 보면 ‘차라리 저 돈으로 연탄이라도 사서 냉방에서 고생하는 소외된 분들의 아랫목이나 데워드리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대학 시절 정치학 개론 시간에 배운 정치의 알파와 오메가라고 일컫는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정치란 국민들 등 따숩고 배 부르게만 하면 끝납니다.”

그러고 보니 비슷한 대사가 영화 동막골에도 등장했습니다. 동막골 이장 어른에게 위대한 영도력의 비결을 묻자,

“뭘 많이 멕여야 해!”라고 답하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지금은 뭘 많이 먹여서 다 같이 잘 살 궁리를 할 때지, 조선시대 대표적인 당파싸움의 빌미가 된 조대비(趙大妃)의 탈상 문제를 논할 때가 아닙니다. 즉, 국정이든 아니든 제대로 집필해서 지긋지긋한 참고서들의 난립을 없애고 더 나아가서 교과서 하나로만 공부해도 시험에서 만점이 나올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것이 솔직한 바람입니다. 그리고 어차피 해결이 될 것 같지 않은 일에 매달리지 말고 더 시급한 일을 빨리 찾아내서 이슈를 선점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국민은 이 문제의 승자가 누구인지 잘 기억하고 있다가, 나중에 표로 대답할 것입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박상도

SBS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TV 토요일 아침 '모닝와이드'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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