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아라뱃길 [김영환]

www.freecolumn.co.kr

꿈꾸는 아라뱃길

2015.11.25


젊은이들에게 열정의 주말이라는 ‘불금(불타는 금요일)’이 우리 부부에겐 손녀를 맡는 날입니다. 손자는커녕 마흔 넘도록 결혼을 안 해 자식 걱정하는 친구들이 수두룩한데 며느리는 예쁜 손녀를 두 명 안겨주었으니 손녀 돌보는 것이 의무라고 여깁니다. 

초가을의 어느 금요일, 손녀들에게 바람을 쏘여주자는 아내의 말에 차를 아라뱃길로 돌렸습니다. 한참 응석 부릴 세 살 배기를 좀 컸다고 엄마가 요즘 다시 일을 시작해 아침에 아파트 어린이집에 맡기면 오후 너덧 시 할머니가 데리러 갈 때까지 매여 있는 일상이죠. 어린이집에 안 간다고 떼도 쓰는데 때로 해방감을 줘서 이런 생활에 길이 들게 해야 한다고 아내는 말합니다. 

아라뱃길(경인운하) 공원에 닿자마자 손녀들은 용수철처럼 튀어나갔습니다. 풀 섶에 앉은 잠자리도 맨손으로 잡으려 안간힘 쓰고 나무 계단도 위태롭게 뛰어내려 물가의 목책을 넘어가려 들었죠. 공원에는 딱히 장난감이라고 할 게 없었지만 그들의 눈에는 모든 것이 놀이도구였습니다.

김포에서 인천 정서진(正西津)까지 약 18킬로미터의 아라뱃길 옆으로 펼쳐지는 찻길은 돌로 만든 과속 방지턱이 워낙 많은 탓인지 평일엔 꽤 한적합니다. 그래서 나는 강화도로 이어지는 조용한 이 길을 자주 오가는데 운하 개통하고 3년이 지나도록 손녀들을 유람선에 태워 보여준다는 계획만 갖고 있다가 유람선이 어느새 사라져 버려 나 역시 늘 지나가기만 했던 아라뱃길을 손녀들과 함께 보겠다고 온 것입니다. 

아라뱃길은 13세기 고려 고종 때의 실력자 최우가 처음 구상했답니다. 그는 변변한 도로도 운송수단도 없던 항몽전쟁의 무력한 시대에 물길에서 돛을 올리면 사람과 물자를 쉽게 빨리 나를 수 있음을 잘 알았을 것입니다. 최우는 삼남의 세곡을 천 섬이나 싣는 조운선들이 물살이 거센 강화도와 김포 사이의 염하(鹽河)로 한참 올라가지 않고 인천에서 곧장 물길을 파는 게 경창(京倉)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보았다고 운하를 건설한 케이워터는 소개합니다. 당시 발달했던 고려의 조운선은 여러 지자체에서 복원해 놓았다고 하니 가봐야겠습니다. 

부평 원통이 고개 돌산에서 접었던 최우의 꿈이 나와 손녀들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세 살 터울의 큰손녀에게 말했습니다. “이 물은 배가 빨리 다니도록 일부러 땅을 파서 한강물이 바다로 흐르게 한 거야. 수백 년 전 고려라는 우리 옛 나라가 있었는데 최우라는 사람이 생각했던 걸 지금 만든 거야. 이런 걸 운하라고 해.” “강물은 전부 바다로 흘러가지요?”라고 물었던 손녀니 운하의 개념은 잘 알았겠죠.

김포공항으로 착륙하는 거대한 여객기가 쉴 새 없이 아라뱃길 위로 우람한 동체를 드러내며 고도를 낮추고 있었습니다. 작은손녀는 눈이 부신 줄도 모르고 “비행기, 비행기” 하면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어린 시절 눈에 움직이는 신기한 것들은 모두 로망으로 자리 잡나봅니다. 나 역시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 미군 헬리콥터를 보려고 몇 킬로미터를 가슴이 터지도록 뛰어 공원으로 올라가서 보고야 말았습니다.

“할아버지, 저 배 뭐야?” 배는 없고 비행기와 자전거만 자주 지나가는데 물길에서 배를 처음 본 작은손녀가 손으로 가리켰습니다. ‘강물이 졸려 하니까 눈 비벼 주는 거야’라고 하려다가 환경탐사선 같아서 “강물이 더러운가 알아보는 거야”라고 대답해주었죠. 손녀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운하를 만드는 데 조 단위로 들인 돈과 ‘위대한 항해의 출발’ 혹은 좀 부풀려진 ‘천년의 숙원’이라는 구호는 때를 잘못 만났는지 아라뱃길은 우리들의 전용처럼 한가로워 안쓰러웠습니다. 논란을 딛고 1천년 조상의 꿈을 이룬 것이라면 마땅히 잘 활용해야 하건만 물길은 놀고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만드는 사람과 이용하는 사람의 목적이 꼭 일치하는 것이 아닙니다. 최우가 이 쓸쓸한 물길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씁쓸했습니다. 관광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아라뱃길을 따라 ‘커낼워크’를 잘 조성하고 수상 혹은 수변시장이라도 열면 창조적인 풍광으로 자라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요즘 시대에 무슨 느림보 배 타령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사람들이 속도만 중시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여러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만든 올레길이니 둘레길을 찾아 걷는 사람이 많다는 데서 드러납니다. 우리라도 아라뱃길 곁에 더 자주 오자고 공원 매점에서 고객 쿠폰을 만들고 도장도 받았습니다. 

아라뱃길 꿈은 길고 긴 호흡의 대물림이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조인(鳥人) 꿈은 사백 년 뒤의 라이트 형제를 기다렸습니다. 어린 손녀들은 뭐가 될지, 그들의 꿈은 내가 아무리 궁금해 한들 안갯속이죠. 그러나 ‘꿈은 크게 꾸어야 해. 아라뱃길도 봤으니까!’ 나는 운하로 자극을 조금이라도 받았을까 궁금해하면서 가까이 서 있는 작은손녀를 번쩍 안고 통통하고 뽀얀 두 볼에 기습적인 뽀뽀를 가했습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

박대문의 야생초사랑

차나무 (차나무과) Camellia sinensis

11월도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을미년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이른 봄부터 싹을 틔워 꽃 피웠던 초목도 여름 가고 가을을 맞아 씨앗만을 남긴 채 형형색색 단풍 빛으로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나서 한 잎 두 잎 낙엽 되어 한살이를 마무리합니다. 가을 산천에 들꽃 향기 가득 채웠던 산국, 감국, 구절초 등 가을꽃도 저물어가고 잎 떨어진 앙상한 가지 사이로 휑하니 드러난 숲 속 가을 하늘이 높아져만 가는데...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Copyright ⓒ 2006 자유칼럼그룹.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reecolumn.co.kr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