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경부고속도로 반드시 건설해야" - 이인구 계룡건설 명예회장


경부고속도로. 출처 한국도로공사


제2경부고속도로 노선안


* 경부고속도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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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부산 고속도로는 45년 전에 완성된 단군 이래 최대의 토목공사였다. 그 규모는 물론 기획과 건설기간이 마치 세계기록을 갈아 치우듯 완성된 것이 특징이었다.


이 뿐만 아니라 건설비용도 1970년대 당시 Km당 약 1억원(왕복 4차선)이라는 초저가를 투입하였다. 오늘날 이 정도 규모의 고속도로를 건설하려면 Km당 50억은 필요할 것이다.


이인구 명예회장

13·15대 국회의원


필자는 박정희 대통령이 이 국가 기간망인 고속도로 건설사업을 제창하기 이전에 우리나라에서 고속도로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당시 한국에는 노폭 7m 이상의 도로가 서울~부산 간 국도 하나 밖에 없었다. 물론 비포장 도로에다가 꼬불꼬불한 노선이었다. 이 도로를 통하여 6·25전쟁을 치른 것이다. 요즘 생각으로는 엄두도 나지 않는 것이다. 


국토가 온통 번듯한 고속도로로 사통팔달 되어 있는 미국의 군인들이 이 외나무다리 같은 소로길을 타고 3년간 연인원 100만명이 싸워 주었으니 가상한 일이다. 필자는 공병 장교로서 6·25전쟁 정전협정이 발표되던 때에 미국 육군공병학교 고등 군사반 교육을 받은 일이 있었다.


약 1년간의 교육기간 중 나는 교육보다 견문을 넓히기 위하여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즉 미국의 고속도로를 많이 오가며 지식을 넓힌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고속도로를 꼭 건설해야 하는데, 그 비용과 장비들을 어찌 감당해야 할지 상상만 하고 있었던 터였다.


그런데 어찌된 것인가. 박정희 대통령이 필자를 불러 “자네는 미국 고속도로를 보았지?, 또 많이 달려보았지?, 이제 그보다 더 멋진 고속도로를 한반도에 건설해야 하지 않겠나?, 나를 도와 함께 일해보세!”라고 하셨다.


필자는 “예, 죽기를 각오하고 힘껏 뛰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날부터 시작해 3년 후에 서울~부산 고속도로는 준공을 하고 성대한 개통식을 가졌다. 100여명의 안전사고 희생자를 내면서까지 개통되었지만 건설 전에는 이 고속도로가 정치권과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었다.


“시속 50Km의 차량 밖에 없는 나라에서 왜 시속 100Km의 고속도로가 생겨야 하나.”


고작 100만대의 차량 밖에 없는 나라에 왜 일일교통량 200만대의 통과능력을 갖춘 고속도로가 필요한가. 휴전이 되어 평화를 만끽해야 할 때가 왔는데, 왜 전쟁놀이를 방불케하는 토목공사에 국력을 쏟아야 하나.


당시 한국은행 총재를 마치고 집권 공화당 대표 최고위원으로 있던 충청도 양반의 대표 인태식 선생이 나를 불러놓고 쏟아 부은 불만이다.


필자는 “최고 위원님!, 왜 저 같은 하급자에게 화를 쏟아 붓습니까. 당당히 대통령님께 화풀이를 해야지요”라고 항변했던 기억이 난다.


여하튼 그 인태식 선생도 장관직을 그만두고 나와서 필자가 만든 동아중건설 주식회사 대표이사로 추대받고 이 사업을 추진하는 대열에서 함께 일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4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2014년 말 차량등록대수 2000만대를 상회했다는 통계도 나왔다. 일일 유동인구도 어마어마하게 증가한데다 전국이 일일생활권에 들어와 있다. 하물며 수출입국인 우리나라는 전국토가 산업생산기지화 되어 있으며 그 물동량도 어마어마하다.


이제는 다시 제2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해야 한다는 명제를 가지고 나팔수 역할을 하게 되었다. 경부고속도로라고 하지만 서울~세종시까지의 새로운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과제인 것이다.


혹자는 현재의 경부고속도로 전 노선을 확장하여 건설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남~수원~천안~세종시를 연결하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것이다. 이 거대한 고속도로공사 역시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3년을 넘겨서는 안 된다. 그래야 수지를 맞추는 결과를 보장하게 되어 있다.


이 도로는 국가(국토교통부)가 책임지고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건설회사 집단이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그 비용을 융자해서 완성하는 개념으로 진행될 것이다. 


어떤 건설업체는 국가 기간 고속도로를 건설하는데 당연히 그 경비는 국비 예산으로 충당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민자 도로는 준공한지 20년이 지나면 비록 업체들이 투자를 해서 준공되었지만 어김없이 국가에 기부채납하게 되어 있다.


꿩 먹고 알 먹는 것은 국가가 아니라 국민이 되는 것이다. 참여한 건설회사도 건설에 쏟아 부은 비용 전액을 보전받게 되어있다.


이 거대한 토목공사는 45년 전에 박정희 대통령의 의지로 건설한 경부고속도로에 이어 그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의 또 하나의 새로운 역사가 될 것이다. 


필자와 필자의 계룡건설도 일정부분을 담당하게 되기를 희망한다.

디트뉴스24 최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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