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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2015.10.20
어느 날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던 길이었습니다. 한적한 골목을 지나는데 언뜻 낡은 철 대문 안쪽에 화사하게 피어난 꽃들이 보였습니다. 빼꼼히 열린 대문 사이로 머리를 들이밀어 보았습니다. 난쟁이 꽃 채송화가 마당을 가로질러 현관에 이르는 보도 양편으로 그야말로 꽃 대궐을 이루었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우리 꽃이었습니다. 빨강 분홍 주홍 하양, 그리고 홑잎과 겹잎, 채송화가 그렇게 다양한 꽃을 피우는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어릴 적 우리 집에서도 이웃집에서도 저렇게 정겹게 피어나는 꽃들을 보며 자라던 기억이 새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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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란 직후 우리 가족은 아버지 행방도 모른 채 거제도로 피란 내려왔습니다. 시골학교 교실에도 머물고 마음씨 착한 원주민들 곁방에서도 살다가 부산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서대신동 산마루 난민촌이었습니다. 거기서 널판자로 지은 작은 예배당 학교에 다녔습니다. ‘서성성경구락부’, 학교라고 하기엔 좀 뭣한 이름이었지요. 그 후 보수동으로 이사했지만 여전히 피란민들이 모여 살던 산동네 판자촌이었습니다. 뒤늦게 학력 테스트를 거쳐 정규 초등학교로 편입하고 새 친구들과 사귀었습니다. 함께 공부하라는 어른들 권유로 그들 집에서 며칠씩 기숙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집엔 아무도 데려오지 않았습니다. 중학교 때 꼭 한 명, 매일처럼 함께 등하교하던 친구에게만 알려주었을 뿐입니다. 그것도 담임 선생님의 가정방문 때문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멀찍이 섰다가 마중 나온 가형의 인사만 받고선 이내 돌아섰지요. 어린 마음에도 우리 집이 무척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나 정말 자랑스러운 것도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한 뼘 넓이의 마당에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들이었습니다. 유난히 꽃을 좋아하시던 어머니가 손바닥만 한 땅도 그냥 버려두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침마다 화려한 빛깔로 피어나는 나팔꽃은 장관이었습니다. 매어둔 줄을 따라 처마까지 올라가던 하얀 테두리에 큼지막한 송이의 자줏빛 나팔꽃은 그때 이후 어디서도 본 적이 없습니다. 마침 동네에서 유일한 우물 바로 위 언덕이었습니다. 물을 긷거나 빨래하던 아낙들은 물론 지나가던 사람들이 한참씩 올려다보며 감탄하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예전 우리네 마당에는 으레 아기자기한 난쟁이 꽃 채송화, 한 번 피면 백일을 간다는 백일홍, 한가한 저녁나절 어머니가 나팔을 만들어 불곤 하시던 분꽃, 로마 병정의 투구 깃처럼 돋아나던 맨드라미, 서양 색시처럼 화사하던 달리아, 그런 꽃들이 피어 있었습니다. 빨간 꽃잎을 짓찧어 손톱에 올리던 봉숭아 물들이기는 시집간 누이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었지요. 물론 이 꽃들의 원산지가 모두 우리나라는 아닙니다. 채송화와 백일홍, 분꽃은 중남미, 봉숭아는 중국과 인도, 나팔꽃과 맨드라미는 열대 아시아라는군요. 그러나 오래전부터 우리 집 안팎에서 피어나 한 식구처럼 친숙해진 꽃들입니다. 아쉽게도 언제부턴가 우리 눈에 익은 이런 꽃들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아파트 단지는 물론 일반 주택에서도 찾아보기 어렵게 됐습니다. 대신 외국에서 들여온 새로운 품종의 생소한 꽃들이 우리 마당과 집안을 차지해 버렸습니다. 며칠 전 친구와 약속한 송파구청 앞으로 나갔습니다. 마당 가득 단정하게 꽃밭이 가꾸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는 꽃 이름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쿠페아, 펜타스, 안젤로니아, 코리우스… 도무지 꽃 이름 같지도 않은 이름의 팻말들이 총총히 서 있었습니다. 종일 주민들의 발걸음으로 붐비는 그곳이 타지에서 온 낯선 얼굴들에 점령당한 느낌이었습니다.
낡은 철 대문 집 안뜰의 채송화처럼 어릴 적에 보며 자라던 옛 꽃들을 만나면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떠오릅니다. 시인의 노래처럼 오래 잊고 지내던 누이를 만난 듯 반가움이 앞섭니다. 그런 정겨운 꽃들을 더 이상 가까이서 볼 수 없다는 게 아쉽고 섭섭합니다. 무심히 지나치던 우물가에 누군가 와서 앉아 있었다 솜털 송송한 귀볼을 붉히며 녹두색 치마깃 여며 돌아보다 연분홍 저고리 고름으로도 새카맣게 타버린 가슴 감추지 못한 채야윈 목덜미 가누며 웃을 듯 말 듯 꽃으로 피어 - 김형술의 ‘분꽃’ 중에서 낯선 이름으로 들어와 우리 마당을 차지해버린 새 꽃들을 남의 꽃이라 타박할 이유야 없겠지요. 그러나 이런 꽃들을 보며 자란 아이들도 예전 우리가 꽃에서 느끼던 것과 같은 정서를 느낄 수 있을지, 꽃을 매개로 나누던 정겨운 사연들을 상상이라도 할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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