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노벨화학상, “한때 연구보조원” 터키 의사의 인생역전기
2015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
터키 출신 미국인 아지즈 상카(Aziz Sancar)
부모는 문맹이었지만...
아버지 조언 듣고 DNA에 관심 가져
2015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 중 한명인 터키 출신 미국인 아지즈 상카(Aziz Sancar)
[관련기사]
Nobel prize for chemistry: Lindahl, Modrich and Sancar win for DNA research 노벨화학상, 토마스 린달 등 3인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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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원주의 없이 복잡성을 사랑하면 예술을 만들어내고, 환원주의자가 복잡성을 사랑하면 과학을 만들어낸다. - E. O. 윌슨
매사를 분석적, 환원적으로 보는 태도가 현대과학문명의 병폐라는 말들을 하지만, 환원주의가 과학발전의 필요조건임은 부정하기 어려운 것 같다. 물론 만물을 환원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즉 환원주의가 필요충분조건이라고 주장하는 건 다른 얘기다.
예를 들어 암처럼 세포분열이 왕성한 조직을 공격하는 항암제(화학요법)도 결국 DNA복제를 방해하는 약물이다. 즉 항암제 분자와 DNA 분자가 서로 만나 화학반응을 일으킨 결과가 게놈 복제 실패로 이어지고 그 결과 암세포가 죽고 최종적으로는 암조직(덩어리)이 사라지는 것이다(약이 먹혔을 경우).
현미경으로 세포를 볼 수 있어서 그냥 넘어가는 것이지, 우리 몸이 대략 37조개의 세포로 이뤄져 있다는 설명은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또 적혈구처럼 핵이 없는 예외를 빼면 세포 하나하나에 DNA 30억 염기쌍으로 이뤄진 게놈이 쌍으로 존재한다는 것도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이 모든 게 ‘상상력과 감수성이 부족한’ 환원주의자들이 발견한 진실이다.
생명과학을 환원하면 화학으로 넘어간다. 화학 역시 더 내려가면 물리학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화학이 생명과학의 전부를 설명하지 못하고 물리학이 화학의 전부를 설명하지 못하지만, 과학의 역사를 뒤돌아볼 때 화학은 생명과학의, 물리학은 화학(그리고 생명과학)의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15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DNA 복구’ 분야는 화학이 생명과학의 발전에 어떻게 기여해왔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손상된 DNA를 복구하는 여러 메커니즘 가운데 대표적인 네 가지를 연구한 생화학자 세 사람이 상을 받았다. 노벨재단의 해설을 바탕으로 수상한 과학자들의 삶과 업적을 되돌아본다. 부모는 문맹이었지만... “아지즈, 당신은 실험연구에 소질이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당신은 좋은 의사예요. 임상의로 돌아가는 게 낫지 않겠어요?”
1946년 터키 남동부의 작은 마을 사부르에서 여덟 남매의 일곱째로 태어난 아지즈 산자르는 비록 문맹이었지만 교육열을 높았던 부모 덕분에 학교에 갈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 과학에 뛰어났던 산자르는 화학과 의학을 두고 고민하다 1963년 이스탄불의대에 들어갔다. 2학년 때 들은 생화학 강의에 매료된 산자르는 생화학으로 진로를 바꾸려고 했지만 지도교수의 만류로 의대에 남았다. 즉 기초과학을 공부할 거라도 일단 의대를 졸업하고 2년은 현장에서 뛴 뒤 시작해도 된다는 얘기였다. 산자르는 교수의 조언대로 의대를 마치고 고향 근처 병원에서 2년을 보냈다.
1971년 모든 과정을 마친 25세의 산자르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 생화학 연구를 하기로 결심했다. 2005년 아지즈는 들어가기 어렵다는 미국국립과학아카데미 회원이 됐는데, 그해 11월 8일자 ‘미국립과학원회보’에 실린, 과학저술가 닉 자고르스키가 산자르를 소개하는 글을 보면 이런 결심을 하게 된 계기가 꽤 재미있다.
“(비틀즈의) 존 레논이 '왜 그렇게 미국에 가고 싶어 하느냐(마리화나를 피워서 입국이 금지됐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죠. 로마제국시대 때 살았다면 로마를 가려고 했을 거라고요. 로마는 중요한 일이 일어나는 곳이니까요. 그리고 이 시대에는 미국에서 중요한 일이 일어난다고 했죠.”
산자르는 ‘광재활성화(photoreactivation)’라는 DNA복구 메커니즘에 관심이 많아서 이 연구를 하고 있는 미국 텍사스대 클로드 루퍼트(Claud Rupert) 교수 연구실의 문들 두드렸다. 광재활성화란 자외선(UV)으로 손상된 DNA에 이보다 파장이 긴 파란빛을 쪼여주면 손상이 복구되는 과정이다. 루퍼트 교수는 파란빛을 흡수해 광재활성화에 관여하는 광분해효소(photolyase)를 발견한바 있다. 1973년 마침내 미국에 도착한 산자르는 루퍼트 교수의 실험실에서 초반 고전한다. 간단한 실험조차 번번이 실패하자 이를 딱하게 여긴 동료가 차라리 의사로 돌아가라는 게 어떻겠냐고 말을 할 정도였다. DNA복구 과정의 하나인 광재활성화가 일어나는 메커니즘. 티민 사이에 결합이 일어나면 광분해효소가 이를 인식해 다가오고 빛의 도움으로 발색단(FADH-)의 전자를 제공한다(왼쪽). 전자 하나를 받은 티민 쌍의 전자구름이 재배치되면서(가운데) 결합이 끊어져 다시 정상적인 티민 두 개로 나뉘고 전자는 다시 효소의 발색단으로 넘어간다(오른쪽) - 노벨재단 제공 하지만 산자르는 광분해효소에서 파란빛을 흡수하는 부분인 발색단(chromophore)의 실체를 자신이 꼭 밝혀내겠다고 대답했다. 다행히 지도교수 루퍼트는 늦깎이 외국인 학생을 따뜻하게 대해줬고, 산자르는 점차 실험실 생활에 적응하면서 놀라운 성과를 내놓았다. 즉 1973년 광분해효소의 유전자를 찾았는데(이를 클로닝(cloning)이라고 부른다), 분자유전학 초창기인 당시로는 획기적인 성과였다. 산자르는 이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연구를 하려고 했지만 루퍼트 교수는 박사논문을 쓰기에 충분하다며 1977년 서둘러 졸업시켰다.
산자르는 박사후연구원으로 DNA 복구 연구를 계속 할 수 있는 실험실 세 곳의 문을 두드렸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그런데 연인이었던 동료 대학원생 그웬돌린 볼스(Gwendolyn Boles)가 뉴욕에 자리를 잡자 자신도 뉴욕에 있는 대학들을 알아봤고 예일대 딘 루프 교수가 복구 유전자 클로닝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나 박사후연구원 자리가 다 차 산자르는 연구보조원 티오로 루프 교수의 실험실에 들어간다.
이곳에서 산자르는 이번 노벨상으로 이어진 업적인 ‘뉴클레오티드 절단복구(nucleotide excision repair, NER)’라는 DNA복구 메커니즘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을 무더기로 찾아냈고 그 메커니즘을 제안했다. 예를 들어 DNA사슬에서 서로 나란히 있는 티민(T)이 자외선을 받으면 둘 사이에 화학결합이 일어나 이중나선 구조에 변형이 일어나다. 산자르는 이런 오류를 복구하는 과정에 관여하는 효소들을 찾고 그 메커니즘을 규명했다.
1982년 노스캐롤라이나대 생화학과 교수로 부임한 산자르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던, 박사과정 때 연구주제로 돌아가 광분해효소의 발색단을 찾는 연구를 재개했다. 아내가 된 그웬돌린과 함께 연구에 매진한 끝에 FADH-라는 분자와 프테린(pterin)이라는 분자가 발색단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산자르는 DNA사슬에서 서로 나란히 있는 티민(T) 사이에 화학결합이 일어난 경우 광분해효소의 발색단이 관여해 복구하는 메커니즘을 명쾌하게 설명했다.
뉴클레오티드 절단복구는 대장균이나 사람 모두에서 일어나는 반면 광재활성화는 대장균에는 있는 반면 사람에서는 없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사람의 게놈에서 광분해효소와 염기서열이 비슷한 유전자가 두 개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이 유전자들은 무슨 역할을 할까. 궁금해진 산자르는 연구에 뛰어들었고, 이 유전자들이 생체시계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이 유전자 각각에 크립토크롬1(cryptochrome 1)과 크롭토크롬2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크립토크롬 단백질은 파란빛을 흡수하는 광수용체로, 유전자 둘 가운데 하나 고장나면 생체시계가 교란되고 둘 다 고장나면 완전히 망가진다. 산자르 교수는 크립토크롬의 발견과 역할 규명이 자신의 발견 가운데 가장 인상 깊다고 말하기도 했다.
RNA는 우라실, DNA는 티민인 이유 영국 프랜시스크릭연구소의 토마스 린달 교수는 DNA분자 자체의 화학에 관심을 가졌다. 즉 자외선이나 화학물질 같은 외부 요인이 없는 생리적인 조건 아래에서도 DNA는 변형되는 불안정성을 지니는 분자라는 말이다. 그는 ‘DNA 붕괴(DNA decay)’라는 용어를 만들기도 했다.
린달 교수는 ‘염기 절단복구(base excision repair, BER)’라고 불리게 될 과정에 관여하는 효소들을 발견했고 메커니즘을 규명했다. 앞의 뉴클레오티드 절단복구와 BER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는 DNA가닥(뼈대)을 얼마나 건드리느냐 여부다. 즉 NER은 문제가 생긴 염기가 연결된 지점 주위로 12개 정도의 DNA단일가닥(올리고머)를 통째로 갈아치우는 반면, BER은 잘못된 부분만 잘라 교체한다. 약간 무리해서 치과치료로 비유하자면 심하게 썩은 이가 있을 때 주변의 이까지 뽑아 틀니를 하는 게 NER이고 썩은 이만 빼고 임플란트를 하는 게 BER이다.
BER이 ‘즐겨’ 쓰이는 곳이 시토신(C)에서 탈아미노화반응이 일어나 우라실(U)이 된 경우다. 우라실은 RNA에서 티민의 역할을 하는 분자다. 따라서 이 부분을 복구하지 않으면 나중에 게놈 복제가 일어날 때 한 가닥은 구아닌(G) 대신 아데닌(A)이 들어가게 된다. 즉 돌연변이가 일어나다는 뜻이다.
DNA가닥에서 시토신이 우라실로 바뀌는 탈아미노화반응이 자주 일어난다. 이를 방치하면 구아닌 대신 아데닌이 결합하는 변이가 일어난 가닥이 생긴다. 린달 교수는 시토신 유래 우라실을 다시 시토신으로 복구하는 메커니즘을 규명했다. DNA에서는 RNA와는 달리 우라실 대신 티민이 쓰이는 것도 이 복구 메커니즘의 혼란을 없애기 위한 결과다. - 강석기 제공 린달 교수는 우라실DNA글리코실화 효소가 우라실(염기)을 잘라내고, 다른 효소들이 염기가 없는 빈 뼈대가 자른 뒤 새로운 시토신을 채워 넣는 과정을 명쾌하게 설명했다. 한편 이 과정에서 우리는 DNA에 왜 우리실 대신 티민이 쓰이는지에 대한 통찰을 얻었다. 즉 DNA에서도 RNA처럼 우라실이 아데닌과 짝을 이룰 경우, 원래부터 우라실이었는지 시토신에서 탈아미노화반응이 일어나 생긴 우라실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티민은 우리실에서 메틸기가 하나 붙은 분자로, 이 메틸기는 아데닌과의 수소결합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즉 티민의 메틸기는 티민을 탈아미노화된 시토신, 즉 구아닌과 구별해주는 꼬리표인 셈이다.
아버지 조언 듣고 DNA에 관심 가져 1946년 미국 뉴멕시코 북부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폴 모드리치는 아버지가 고등학교 생물교사였다. 어느 날 아버지는 아들을 불러놓고 “넌 DNA라는 물질에 대해 배워야만 한다”라고 조언했다. 이때부터 모드리치는 DNA를 연구하기로 결심했다.
모드리치는 1973년 스탠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주제는 DNA연결효소(ligase)였다. 연결효소는 말 그대로 DNA 가닥을 붙여주는 효소로, DNA복구에서 마지막 과정이다. 그 뒤 본격적인 DNA복구 연구에 뛰어든 모드리치는 미스매치(잘못 짝지음) 복구(mismatch repair, MMR)라는 복구 메커니즘을 규명했다.
DNA복제는 매우 정교한 과정이지만 오류는 생겨나기 마련이고 그 확률은 10만 분의 5 정도다. 게놈이 작은 바이러스가 아닌 다음에야 너무 큰 수치다. 그래서 잘못 끼워진 염기를 고쳐주는 미스매치 복구 메커니즘이 진화했고 그 결과 오류를 1억 분의 1 수준으로 떨어뜨릴 수 있게 됐다. 사람으로 치면 한 세대가 지날 때 게놈에서 오류가 30개 정도 생기는 셈이다. 이런 변이는 상황에 따라 긍정적 또는 부정적으로 작용하며 ‘진화’를 일으키게 된다.
미스매치 복구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이중나선 가운데 어느 가닥이 오류인지를 어떻게 구분해서 고치는가 하는 문제다. 예를 들어 DNA복제 과정에서 새로운 가닥이 만들어질 때 주형 가닥의 G에 대응하는 C 대신 T가 들어설 경우, 어느 가닥이 주형이고 어느 가닥이 새로 만들어진 건지 구분하지 못할 경우 뭘 고쳐야할지 모르게 된다.
모드리치 교수는 미스매치 복구에 관여하는 효소 가운데 하나(MutH)가 메틸화된 염기를 인식해 그 염기가 속한 가닥이 주형이라고 판단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메틸화는 DNA복제 이후에 일어나므로 기존 DNA가닥이 새로 만들어지는 DNA가닥보다 메틸화가 된 염기가 많다.
DNA는 너무 불안정해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너무 안정돼도 문제다. DNA복제와 복구가 완벽하게 진행되면 진화가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생명체가 다양한 DNA복구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100% 완벽함은 어차피 이론으로만 존재하는 상태임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sukkikang@gmail.com 동아사이언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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