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글도 행동도 거칠어지고 있다 [김홍묵]

 

www.freecolumn.co.kr

말도 글도 행동도 거칠어지고 있다

2015.10.08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이 좋은 계절에 우리 주변에는 거친 말, 비수 같은 글, 금수에 버금가는 행위들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기득권 지키기와 농단(壟斷)을 차지하려는 정치권, 시청자와 독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상업주의 언론매체 등이 앞장서고 있습니다.

# 정치권이 앞장서는 막장 표현
이재명 성남 시장이 지난달 29일 ‘박근혜 대통령은 빨갱이 할매’라고 매도했습니다. 이 시장은 그동안 추진해온 ‘청년배당’(19~24세 무직 청년들에게 연간 100만 원 지원)정책 입법 예고에 대해 트위터들이 ‘빨갱이 공산주의 정책’이라고 비난하자 이같이 응대했습니다. “청년배당을 하려는 시장이 빨갱이라면, 65세 이상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주는 박근혜 대통령은 빨갱이 할매겠군”이라고.

변호사 출신인 이 시장은 지난 3일에도 ‘1948년이 대한민국 건국 원년’이라는 주장을 펴는 이들을 겨냥해 페이스북에 <개천절, 광복절 그리고 건국절 매국반역자들>이라는 제목으로 “하늘이 처음 열린 날을 기념하는 오늘 개천절에 한울님이 이들에게 불벼락이나 한번 내려줬으면 좋겠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이념과 생각이 다를 수는 있지만 나와 다르다고 빨갱이, 반역자, 매국으로 질타하는 것은 율사답지 못합니다.

이용득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은 한 달 전 박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향해 “독립운동가들이 나온다면 쇠파이프를 휘두를 대상은 그대들”이라고 일갈했습니다.

이 위원은 “강성 노조가 불법 파업을 일삼고, 공권력을 쇠파이프로 두드려 패는 일이 없었다면 (국민소득) 3만 불이 넘어갔다“고 한 김 대표의 기자간담회 발언에 대해 이같이 퍼부었습니다.

그는 “경제성장에 티끌만큼도 기여 안 한 사람들이 경제성장 주역인 노동자들을 탓한다. 광복절도 지났는데 두 분 선조들께서는 뭐하셨나”며 조상까지 끌어들였습니다.

또 “박 대통령은 연일 ‘아버지를 잘라 아들 딸 고용하겠다’는 말도 안 되는 것을 노동 개혁이라고 하고 있다”, “김 대표는 노·노(勞·勞) 간 싸움을 붙인다. 어떻게 쇠파이프 때문에 3만 불이 되지 않았느냐”고 반박했습니다.

# 여과 없이 쏟아내는 언론 용어
올 들어 종합편성 채널들의 프로그램 타이틀이 상당히 공격적인 용어로 탈바꿈했습니다. 
‘뉴스 파이터’(MBN)
‘뉴스를 쏘다’(TV조선)
‘강적들’(TV조선)
‘썰戰-독한 혀들의 전쟁’(jtbc)
바로 격투기나 전쟁을 연상시키는 어휘들입니다. 

가장 정제된 언어를 써야 할 방송이 싸움닭 흉내를 내면 시청자들은 어떻게 될까요? 특히 어린이들은 뉴스란 총이나 활 쏘듯 쏟아 내거나 강펀치를 먹이듯 내뱉는 것으로 착각하지나 않을지. 침대를 가구가 아닌 과학으로 받아들이듯이 말입니다. 또한 독한 혀를 가지고 적들을 격파하지 않으면 방송 출연 자격도 없는 것으로 인식하지나 않을지도 염려스럽습니다.

신문도 뒤지지 않습니다. 
‘의회 독재’,‘예산안 암시장’,‘수퍼 갑질’
‘사법 살인’
‘경제 질식사’
잘못된 현상을 지적하려는 의도는 수긍하지만 꼭 독재, 살인, 질식사, 암시장 같은 극단적인 표현을 써야 하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오피니언 리더 역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 점점 섬뜩해지는 범죄
“이것들 다 죽여야 하는데….”
체포된 자동차 트렁크 살해범 김일곤(48)이 경찰 수사 과정에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28명의 이름이 적힌 ‘살생부’의 경위를 따지자 혼자 중얼거린 말입니다.
18년 감방살이 동안 단 한 명도 면회를 오지 않았다는 전과 22범의 김은 자신을 체포한 형사, 징역을 선고한 판사, 입원 때 불친절했던 의사 간호사 등을 모두 살해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살인까지는 아니더라도 “취직해라”고 채근하는 아버지를 흉기로 찔러 중태에 빠뜨린 30대 아들, PC방 비용을 마련하려고 70대 노인을 마구 때리고 길바닥에 무릎 꿇려 큰절까지 시킨 10대 등 막장 패륜에는 할 말을 잊어버렸습니다. 

“선동가에게 필요한 특성은 더러운 입, 비천한 출신, 비겁한 무리가 되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파네스가 한 말입니다.
맑은 하늘, 밝은 달은 이런 인간의 천박함을 치료할 수 없을까요?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김홍묵

경북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종사.  ㈜청구상무,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화진 전무 역임.

Copyright ⓒ 2006 자유칼럼그룹.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reecolumn.co.kr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