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방이나 쿡방이나 방송은 단지 방송일 뿐 [박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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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이나 쿡방이나 방송은 단지 방송일 뿐

2015.08.11


바야흐로 ‘먹방’의 시대입니다. 국어사전에 먹방을 찾으면 ‘먹물을 뿌린 듯이 캄캄한 방이라는 뜻으로, 불을 켜지 않아 몹시 어두운 방을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 트렌드 사전에서 찾아보면 ‘먹는 방송’이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먹방이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전부터입니다. 방송사에서 근무하는 필자도 처음에는 먹방이라는 말에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아무렇게나 신조어를 만들어내는 것이 못마땅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나 흔히 쓰는 말이 되어서 이 말을 거북하게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불편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방송에서 음식점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SBS에서 방영된 <리얼 코리아>였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KBS에서 <VJ특공대>가 방영되면서 ‘맛집’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 백파 홍성유 선생께서 <한국의 맛있는 집>을 펴내시면서 전국의 맛집을 소개한 바가 있지만, 보글보글 찌개가 끓고 지글지글 고기가 익어가는 소리와 함께 음식을 맛나게 드시는 손님들의 모습과 살아있는 인터뷰를 전달하는 방송의 파괴력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방송에 맛집으로 한 번 소개되면 한 달 만에 일 년치 매출을 올릴 수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들리던 시기도 이때부터였습니다. 초창기 맛집 방송은 용금옥이나 이문 설렁탕 같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음식점에 대한 소개가 주류를 이뤘습니다. 하지만 방송은 늘 새로운 소재와 형식을 추구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초기에 단순하게 맛집을 소개하던 방송은 점차 쇠락하였고 자연스럽게 맛집 방송 2라운드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때부터는 맛보다는 이야기가 있는 음식점, 자극적인 재료가 들어가는 음식점으로 방송의 패턴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면, 낙지와 소갈비 그리고 영계를 한 솥에 넣고 끓인 이른바 육·해·공 합작 여름 보양식이 소개되는가 하면 메추리를 품은 닭, 그 닭을 품은 거위 백숙이 소개되는 식이었습니다. 맛집 2라운드는 일단 특이하거나 특별한 사연이 있는 음식이 소개되는 시기였습니다. 따라서 음식의 맛보다는 음식을 통한 새로운 경험이 중요한 방송 포인트였습니다. 

하지만 맛집 방송 2라운드도 세월이 흐르면서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을 정도로 포화 상태가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맛집 치고 한 번만 방송에 소개된 집은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모닝와이드에서 소개가 되면 몇 달, 몇 년 후에는 생방송 투데이에 소개되고 그리고 몇 달 후에는 VJ 특공대에 소개됩니다. 이러니 그 밥에 그 나물처럼 맛집 방송 2라운드 역시 그 인기가 예전만 못하게 됐습니다. 그러자 이른바 ‘쿡방’이 먹방에 이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쿡방은 먹방보다 한 단계 더 진화한 형태입니다. 인터넷으로 쿡방을 검색하면 ‘쿡방이란 요리하다는 뜻의 ‘쿡(Cook)’과 ‘방송’의 합성어로, 단순히 맛있게 먹기만 했던 것에서 벗어나 출연자들이 직접 요리하고 레시피를 공개하는 방송’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쿡방은 새로운 스타들을 양성해 내었습니다. 해외파 요리사인 젊은 쉐프부터 시작해 그냥 잘생긴 젊은 쉐프, 요즘 핫하다는 음식점을 소유한 연예인 등등. TV를 켜면 수많은 채널 중 최소한 한두 곳은 이들이 음식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쿡방의 열기에 따라 방송사들은 쉐프를 발굴해야 하는데 가수요가 붙으면서 검증된 쉐프의 몸값은 치솟게 됩니다. 결국 새로운 쉐프들을 찾아 나서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고려되는 사항은 ‘방송에 얼마나 적합한 인물인가’하는 점입니다. 앞서 검증된 쉐프라는 표현을 썼는데 여기서 검증이라는 말의 뜻은 실력 있는 요리사이면서 말도 잘하고 인물도 좋아서 방송에 출연하기에 딱 좋은 사람을 뜻합니다. 만약에 외모 언변은 무척 좋은데 요리 실력은 다소 뒤처지는 쉐프와 요리 실력은 매우 좋으나 언변과 외모가 호감이 가지 않는 쉐프, 이 둘을 놓고 방송 출연을 고민하는 경우 열에 아홉은 전자를 뽑는 것이 방송의 생리입니다. 따라서 방송에서 말하는 검증된 쉐프의 뜻은 요리 실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뜻이 아닙니다. 쿡방의 열기는 쉐프의 발굴로 이어지고 급작스럽게 수요가 증가하면서 이제 갓 컬리너리 스쿨(Culinary school: 요리학원)을 졸업한 젊은 친구들이 마치 이름 있는 쉐프처럼 등장하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는 유난히 쏠림이 큽니다. 무엇인가가 TV에서 유행하기 시작하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동시에 광고 시장이 출렁입니다. 그러고 나면, 관공서의 홍보 영상 더 나아가서는 선거에까지 그 유행에 편승해서 이익을 취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아마도 내년 총선에는 정치인들 옆에서 지원 유세를 하는 엔터테이너 쉐프의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후보들은 “서민들의 허기를 달래주는 만능간장이 되겠습니다.”, “집밥처럼 든든한 여러분의 주부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등등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며 표를 호소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먹방에서 쿡방까지 20년이 넘게 방송 일선에서 그 변화를 지켜보면서 체득한 필자의 생각은 ‘방송은 방송일 뿐이다’라는 것입니다. 무심코 들어간 음식점에서 형편없는 음식과 서비스에 마음이 불편했을 때, 벽에 걸린 필자의 사진을 보고 당황했던 적이 있습니다. 여러 해 전에 필자가 방송을 했던 프로그램에 소개된 맛집이었던 것입니다.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벽에 걸린 사진을 떼어달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꾹꾹 눌러서 참았습니다. 사람들이 그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이게 무슨 맛집이야? 저기 사진에 걸려 있는 저 사람이 거짓말 한 거였네.”하면서 저를 비난할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지만 공연히 유난을 떠는 것 같아서 모른척하고 나왔습니다. 방송은 시청자의 결정에 책임지지 않습니다. 맛집인 줄 알고 찾아갔더니 맛없는 집이었다고 시청자에게 차비와 시간과 음식값을 보상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보상을 해야 한다면 저는 앞서 얘기한 집에서 사진을 떼어가지고 나왔을 겁니다. 

음식 광고 촬영을 할 때 곧이곧대로 촬영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거품이 풍부한 음료를 촬영할 때 세제 거품을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거품이 더 풍성하게 나오고 쉽게 사그라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채소나 과일의 경우는 실사를 카메라에 담는 것이 아니라 정교하게 그린 그림을 찍는 경우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림이 훨씬 더 채도가 높고 사실적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방송에서 쉐프가 만든 음식 중에는 색깔만 그럴듯하게 보이고 실제로 맛은 보장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은 리액션의 달인들이기 때문에 속된 말로 짜고 치는 고스톱이 가능합니다. 

대중들은 쿡방에 출연하는 엔터테이너 쉐프들의 음식을 궁금해하며 그들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을 순례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의 블로그에는 자신이 다녀온 맛집에 대한 사진과 후기들로 넘쳐납니다. 필자 역시 맛있다고 소문난 집을 많이 찾아다니는 편입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방송에 소개된 집부터 블로그에 맛집이라고 소개된 집들이 직접 가서 먹어보니 필자의 기준에 맛집이라고 하기에는 함량미달이 많았던 것입니다. 

미셀 푸코(Michel Foucault)는 “언어를 독점하는 사람이 권력을 독점한다.”고 말했습니다. 중세에는 성서가 어려운 라틴어로 쓰여서 성서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성직자와 지배계층밖에 없었습니다. 피지배계층은 라틴어를 배울 기회도 없었고 감히 배우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마틴 루터(Martin Luther)가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한 이유는 교회가 부패할 수 있었던 근본 원인을 간파했기 때문입니다. 

‘언어를 독점하면 권력을 독점할 수 있다’는 말은 ‘정보를 독점하면 권력을 독점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방송에 등장하는 수많은 음식점과 엔터테이너 쉐프들에 대한 정보는 사실상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하면 그 진가를 알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대중들은 거기에 열광하고 방송에 소개되는 대로 대부분 믿고 있습니다. 달인이 요리하는 음식점, 스타 쉐프가 경영하는 음식점 등등 세상은 넓고 찾아가봐야 할 것 같은 레스토랑은 많아 보입니다. 하지만 플라톤 동굴의 비유에 나오는 죄수들처럼 미디어가 보여주는 그림자를 보며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방송은 단지 방송일 뿐입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박상도

SBS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TV 토요일 아침 '모닝와이드'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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