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년, 정치는 어디에 [김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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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년, 정치는 어디에

2015.08.07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 하리. 이 날이 사십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 어릴 때부터 불렀던 광복절 노래의 노랫말은 세월이 흐르면서 더욱 가슴에 와 닿습니다.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인 정인보의 작사에 윤용하가 곡을 만든 이 노래를 들으면 희망이 샘솟던 70년 전 광복의 시심(詩心)과 역동이 느껴집니다. 

“돌아오네 돌아오네 고국 산천 찾아서/ 얼마나 그렸던가 무궁화 꽃을/ 얼마나 외쳤던가 태극 깃발을/ 갈매기야 웃어라 파도야 춤춰라…” 이인권이 부른 ‘귀국선’ 역시 나라를 찾은 감격과 환희를 되새겨줍니다. 

일제 강점 35년은 너무나 심대한 상흔을 남겼습니다. 총독부였던 중앙청 건물을 해체한 것도 그것을 지우고 싶었던 염원이었죠. 악독한 나라를 이웃에 둔 죄로 임진왜란 때는 수십만 명의 조선인이 도륙돼 코와 귀가 전리품으로 잘렸습니다. 이는 소금에 절여져 일본에 보내졌고 코 무덤, 귀 무덤이 되었습니다. 120년 전 명성황후는 궁궐에서 왜군의 칼날에 난자되고 시신이 석유에 불태워졌습니다. 선조들은 이런 악마에 맞서 나라를 지키다 순국했습니다.

그럼 오늘은 어떤가요. 시위대가 태극기를 불태워도 대수롭지 않게 보는 세상입니다. 자칭 국민의 방송이라는 KBS는 항일 독립운동가 중의 독립운동가인 건국 대통령 이승만이 6· 25전쟁 발발 이틀 뒤에 한반도 침략 인맥의 총본산인 일본 야마구치현에 망명정부 수립을 요청했다는 날조 보도를 했다가 격렬한  비판을 받는 소동도 벌였습니다. 일본군이 참전하면 그들을 먼저 쏘겠다고 선언했고 전쟁 중에도 독도를 지켰으며 대마도도 한국 영토라고 천명한 애국자가 이승만입니다. 

최근 롯데 그룹의 경영권 분쟁을 둘러싸고 자본의 국적이 큰 화제입니다. 신격호(일본명 시게미쓰 다케오· 重光武雄) 총괄회장의 두 번째 부인인 일본인 시게미쓰 하츠코(重光初子)씨가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한 쪽 다리를 잃은 일 외교관 시게미쓰 마모루(重光葵)의 조카라는 루머로 그룹의 정체성을 비판하는 격한 반응이 일었습니다. 롯데는 최근에 사실이 아니라고 공표했습니다. 롯데가 연간 매출 83조 원 규모로 자란 배경에는 국립도서관보다 호텔이, 산업은행보다 백화점이 더 급하다고 땅을 팔며 밀어준 정부가 있었죠. 소공동 국립도서관 자리는 주차장에 기념석으로만 남았습니다. 도서관이 최요지에 있으면 안 된다는 정신 상태입니다. 하기야 1조원이 없다고 국책은행인 외환은행까지 해외의 투기자본에 팔아넘겨 수조 원의 차익을 안겨준 정부죠. 

기약 없는 광복이 목전에 온 것도 모르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체 실험으로 희생된 28세의 윤동주 시인처럼 독립에 목숨을 건 선열들을 보면 우리들 후손의 행위는 외자가 절실했다는 상황논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통탄할 부분이 있습니다.

왜 나라를 일본에 빼앗겼는지를 밝혀 훗날에 경계를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거리엔 “일본의 혐한 따위 알 게 뭐야”라는 듯 일제차가 수없이 지나갑니다. 뒷 유리창에 ‘리멤버’라는 세월호 노란 리본 스티커를 붙인 일제차도 보았습니다. 세월호도, 일제 강점도 모두 잊지 말아야 할 일이죠.  

치욕스런 과거를 씻자면 민족이 깨어나서 더 자유롭게 잘 살아야 하건만 일부 세력들은 독재에 억눌린 북녘 동포에게 감옥의 빗장이 저절로 열린다고 믿는 꼴입니다. 그러니 세계적 인권운동가들이 지지하는 대북 전단 살포에도 광적으로 흥분하는 것이죠. 

남북대화에 가장 어려운 구조물을 세운 것은 조선조에 만든 태극기를 인공기로 바꾸려던 북한의 남침 전쟁이죠. 그간 아무리 남북이 얼싸안고 사진을 찍었어도 전시성 행사로 끝나 본질을 바꾸지 못해 북한은 지금 핵과 사이버 침투로 자유 대한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국정원의 해킹 프로그램 수입에 논란을 벌일 한가한 상황은 아니란 거죠. 최근 김진태 국회의원이 남한 내 간첩이 최소한 2만 명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정치와 경제는 교만에 빠져 질척댑니다. 법에 명시된 국회의원 정수는 200~299인입니다. 무능 저질 종북 논란 때문에 300명도 많다는 여론을 외면하는 것은 해방 당시 들었던 민주주의의 피켓을 비민주적 운영체제를 가진 정당이 짓밟는 처사입니다. 견강부회 이론을 제공하는 어용 정치학자들은 세습 고용까지 얻어내 부러울 게 없으면서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악어의 눈물처럼 최저임금을 올리라고 외치는 고임금 철밥통 근로자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입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광복 70주년이 경축 행사로만 끝나서는 안 될 까닭입니다. 미래의 비전을 세우는 일로 못난 역사의 빚을 갚아야죠. 미래 전망과 실천이 절실한데 지금의 질 낮은 정치권은 국가 백년대계는커녕 부나비처럼 권력의 단 꿀에 취해 비몽사몽입니다.

정치인이 안 하면 시민이 합니다. 국가 대약진을 설계할 애국심이 가득한 사람으로 세대교체를 해야 합니다. 지역에 터를 박고 국가를 외면하는 자를 퇴출시켜야 합니다. 자정력을 상실한 국가 무시 세력을 대대적으로 물갈이해야 합니다.

“꿈엔들 잊을 건가 지난 일을 잊을 건가 
다 같이 복을 심어 잘 가꿔 길러 하늘 닿게 
세계의 보람될 거룩한 빛 예서 나리니 
힘써 힘써 나가세 힘써 힘써 나가세“

광복절 노래 2절처럼 광복 이후 앞선 세대들이 이룩한 과실만 따 먹고 후손들에겐 빈 지갑만 주려고 혈안이 될 게 아닙니다. 원대한 뭔가를 이룩할 의지가 없다면 나서지 말라는 것이죠. 광복 70돌을 앞두고 ‘국제시장’ ‘연평해전’ ‘암살’ 이런 영화들이 성공한 것은 국민들이 나라를 올바르게 이끌 수 있는 좋은 징조라고 봅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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