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오행과 오장육부 이야기 [방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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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오행과 오장육부 이야기

2015.04.30


서양의학에서 건강의 척도는 환경의 변화에 대한 몸의 항상성(恒常性, homeostasis) 유지 정도를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동양의학에서는 음양오행(陰陽五行)을 기반으로 오장육부(五臟六腑)의 균형과 조화에 의해 나타나는 기(氣)와 혈(血)의 흐름을 척도로 삼고 있습니다. 

동양 삼국(한국, 중국, 일본)의 중심 사상으로 우리 생활에 다양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음양오행에서 음양(陰陽)은 우주나 인간에서 나타나는 모든 현상들이 음(陰)과 양(陽)의 확장과 소멸에 의해 나타난다는 이론입니다. 음양은 대립하고 순환하는 우주의 사물을 이원적으로 구분하는 원리입니다. 디지털 시대의 대명사인 컴퓨터에서 2진법으로 활용되고 있는 비트(bit, 1과 0)도 음양에 연계된 것이 아닐까요. 

오행(五行)은 음양의 원리에 따라 인간을 포함한 우주 만물이 생성하고 소멸한다는 이론으로 인체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의 다섯 가지 기(氣)로 구분되는 오행은 4계절, 감정, 맛, 색깔, 그리고 우리 몸의 기관 등과 연계하여 나타냅니다. 

음의 장기인 오장(간장, 심장, 비장, 폐장, 신장)과 양의 장기인 육부에서 삼초를 제외한 오부(위, 담, 소장, 대장, 방광)를 합쳐 오장오부(五臟五腑)라고도 부릅니다. 오장오부에서 간장은 담과, 심장은 소장과, 비장은 위와, 폐장은 대장과, 그리고 신장은 방광과 음양의 조화를 이루며 상호 작용을 합니다. 

우리 몸에서 심리적인 자극에 가장 예민한 장부는 간장(肝臟)과 담(膽)으로 오행 중 목기(木氣)가 관장합니다. 봄철에 땅을 뚫고 나오는 새싹처럼 강하게 뻗는 생리적 특성을 지닌 목기는 계절은 봄, 성질은 화(anger), 맛은 신맛, 색깔은 녹색, 신체 기관으로는 시각을 담당하는 눈과 근육이 연계되어 있습니다. 

목기가 약해지면 평소에 피로감이나 권태감을 많이 느끼고 화를 잘 내게 됩니다. 간장이 약해지면 시각을 담당하는 눈과 힘줄이 그 영향을 받기 때문에 시력이 약해지며 눈이 충혈되고, 근육이 뭉쳐 통증을 느끼게 됩니다. 

쓸개라고 부르는 담은 한의학에서 용기와 관련된 장기로 지칭되고 있습니다. 담이 약해지면 황달이 나타나고, 입맛이 쓰고 옆구리가 저리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겁이 많아져 외부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담이 크다는 ‘대담(大膽)하다’는 말은 담력이 크고 용감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쓸개가 빠졌다'라는 말은 비겁하고 줏대가 없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간도 쓸개도 다 준다.'라고 할 때 쓸개는 바로 자신의 속마음이나 마지막 자존심까지 모두 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무서운 장면이나 공포영화를 볼 때 ‘간담이 서늘하다.’고 표현하는 것은 바로 목기에 서늘한 기운이 느껴질 때 나타나는 증상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심장(心臟)과 소장(小腸)은 잎이 무성하고 꽃이 활짝 핀 형상으로 양의 기운이 극에 달하는 화기(火氣)와 연관된 장기입니다. 화기의 특성은 계절로는 여름, 맛은 쓴맛, 색깔은 빨간색, 그리고 신체 기관으로는 혀와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심장이 약해지면 기쁨이나 쇼크에 감응하는 화기의 특성에 따라 가슴이 답답해지고, 정신질환이나 건망증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머리가 아프고 초조해지기도 하며 얼굴색이 붉어지기도 합니다. 심장병이 심해지면 발가락부터 썩기 시작하는 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소장이 약해지면 지속적인 소화 장애로 설사와 변비가 이어지고, 그 후유증으로 가려움 증세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비장(脾臟)과 위(胃)는 후덕하고 묵직한 흙의 형상인 토기(土氣)로 표현이 됩니다. 토기는 계절로는 한여름, 맛은 단맛, 색깔은 노란색, 신체 기관은 입술과 연계되어 있습니다. 냄새가 역해서 토할 것 같거나 어떤 일이 마음에 거슬려 속이 상할 때 ‘비위가 상한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토기의 특성인 단맛의 느낌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비장이 약해지면 입술의 탄력이 약해지며 핏기가 사라집니다. 식욕 감퇴로 무기력해지며, 헛배가 나오고 간헐적으로 복통이 나타납니다. 몸이 붓고 살이 찌기도 하며 눕기를 좋아하게 됩니다. 위가 약해지면 위산과다로 위염이 발생하고, 입에서 냄새가 나게 됩니다. 그리고 소화불량으로 식곤증과 함께 갈증과 공복감이 느껴집니다. 

단단하고 차가운 쇠의 형질인 금기(金氣)로 표현되는 폐장(肺臟)과 대장(大腸)은 계절로는 가을, 맛은 매운맛, 색깔은 흰색, 신체 기관으로는 코와 연계되어 있습니다. 

폐장이 약해지면 기침과 천식 현상이 나타나고 가래도 생깁니다. 심할 때는 호흡곤란이나 어깨 결림 현상이 나타날 수 있고, 코피가 나기도 합니다. 머리카락이 잘 빠지고, 피부병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대장이 약해지면 변이 검어지고, 배에 가스가 차면서 복통과 변비 증상이 나타납니다. 

차갑고 얼어붙은 물의 형상을 지닌 수기(水氣)로 표현되는 신장(腎臟)과 방광(膀胱)은 계절로는 겨울, 맛은 짠맛, 색깔은 검은색, 신체 기관으로는 귀와 연계가 되어 있습니다. 부끄럼을 많이 탈 때 ‘숫기가 없다.’고 하는 말은 수기가 부족해 나타나는 성격에 빗대어 하는 말입니다. 

신장이 약해지면 건성 무릎관절이나 신장염, 신부전증 등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수기는 귀와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귀에 이상이 나타납니다. 방광에 이상이 생기면 소변이 자주 마려우나 배출량은 적고, 정력이 감퇴되기도 합니다. 심한 경우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오거나 요실금 현상이 나타나며, 그 후유증으로 허리 통증이 오거나 몸이 붓기도 합니다. 

자기 몸의 구조에 관해 관심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영혼에 대한 지식을 가질 수 없다고 합니다. 이는 우리 몸의 중심 기관인 오장육부와 우주 만물의 원천과 생명의 근본을 담고 있는 음양오행의 기(氣)에 대한 관심이 바로 건강하고 행복한 삶과 직결되어 있다는 말로 받아들여집니다.

필자소개

방재욱

양정고. 서울대 생물교육과 졸. 한국생물과학협회, 한국유전학회, 한국약용작물학회 회장 역임. 현재 충남대학교 명예교수, 한국과총 대전지역연합회 부회장. 대표 저서 : 수필집 ‘나와 그 사람 이야기’, ‘생명너머 삶의 이야기’, ‘생명의 이해’ 등. bangjw@cnu.ac.kr

게스트칼럼 / 안건훈

동망봉과 치마바위


조선의 왕릉들 가운데 단릉(單陵)은 태조의 건원릉(健元陵), 단종의 장릉(莊陵), 중종의 정릉(靖陵) 이렇게 셋뿐입니다. 이 가운데 단종의 비인 정순왕후(定順王后, 1440~1521)와 중종의 비인 단경왕후(端敬王后, 1487~1557)는 아주 젊은 시절에 홀로된 경우들로 그 사연이 매우 애처롭습니다. 

정순왕후는 여량부원군(礪良府院君) 송현수(宋玹壽)의 딸로 13세인 1453(단종 3)년에 왕비가 되었습니다. 그 시절은 수양대군이 계유정난 후 실권을 장악했을 때여서 단종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곧 물려준 뒤 상왕이 되었고, 새댁인 정순왕후는 의덕왕대비(懿德王大妃)로 진봉(進封)되었죠.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단종은 다시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降封)되어 영월로 유배 길에 오르고, 대비는 노산군부인이 되어 출궁되었으니 17세 때의 일입니다. 유배지로 떠나던 날 단종은 폐비와 청계천 영도교(永渡橋)에서 생이별을 했습니다. 그 후 이 다리는 ‘영 이별 다리’라 일컬어졌습니다. ‘영도교’란 명칭은 성종 때 다리를 보수하면서 ‘영원히[永] 건너가신[渡] 다리[橋]’라는 의미로 부르면서 정착되었습니다. 

폐비 정순왕후는 동대문 밖 동묘 부근 작은 산 아래에 있는 연미정동(燕尾亭洞)에 초가를 짓고 살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영월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폐비는 가엾이 죽은 남편을 위해 날마다 청룡사 근처에 있는 거북바위에 올라 영월 쪽을 바라보며 애도했습니다. 그 후 이곳은 동망봉(東望峰)이라 일컬어지게 되었습니다. 모진 시련 속에 생활하는 젊은 폐비를 가엽게 여긴 백성들은 음식을 몰래 폐비에게 전했고, 폐비의 편의를 위해 초막 부근에 야채시장도 마련했습니다. 폐비를 돕는다는 사실이 궁궐에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이 야채시장은 여성들만을 위한 금남지역이었습니다. 동묘 근처의 여성 전용 시장은 이렇게 유래되었죠. 폐비는 근처 골짜기에서 자줏물을 들이는 염색업으로 생계를 꾸려 나갔는데, 이것이 훗날 자줏골의 기원이 됩니다.  

단경왕후 신씨(愼氏)는 연산군의 처남이자 좌의정을 지낸 익창부원군(益昌府院君) 신수근(愼守勤)의 딸로, 1499년(연산군 5)에 12세로 진성대군(晋城大君)과 가례를 올렸습니다. 왕비는 총명한 분이었으며 금실도 좋았습니다. 1506년 중종반정 때, 반정 군사들이 진성대군의 집을 에워싸자 놀란 진성대군은 자결하려 했습니다. 이 때 신씨는 남편에게 “군사의 말 머리가 이 집을 향하고 있으면 우리는 죽을 운명이겠지만, 말 꼬리가 이 집을 향하고 있다면 이는 우리를 호위하려는 뜻일 것이니, 확인하고 죽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침착하게 말하면서 말렸습니다. 진성대군이 밖을 보니 과연 반정군의 말꼬리가 집을 향하고 있었죠. 그렇게 대군을 호위한 반정군사들은 사기가 치솟아 반정을 승리로 이끌었고, 대군은 임금(중종)으로, 신씨는 왕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정치는 무상한 것이죠. 반정 세력들은 반정의 은인일 수도 있는 그런 왕후를 신수근의 딸이란 이유로, 신수근의 처형 7일 만에 폐출해 버렸습니다. 왕후 나이 19세 때의 일이죠. 폐비가 된 단경왕후는 인왕산 아래서 살았습니다. 금실 좋게 살던 부부가 이렇게 갑자기 헤어지게 되니 중종도 폐비도 그리움에 나날을 보냈습니다. 중종은 궁궐 안에서 높은 자리인 경회루에 가끔 올라 인왕산 쪽을 바라보며 눈물지었고, 이런 소식을 전해들은 폐비는 평소에 즐겨 입던 분홍색 치마를 인왕산 바위에 펼쳐 놓으면서 그런 남편에 답했다고 했으니 이것이 유명한 ‘치마바위 전설’입니다.   

정순왕후의 ‘동망봉 전설’과 더불어 ‘치마바위 전설은 조선시대 젊은 왕비들의 슬픈 역사입니다. 자식도 없는 두 분 폐비는 외롭게 살다가 한 분(정순왕후)은 81세에, 다른 한 분은 70세에 삶을 마감했습니다. 폐비 송씨는 세상을 떠난 지 177년 뒤인 1698년(숙종 26)에 노산군과 함께 복위되었는데 한 평생 그리움 속에 살았다 하여 왕비의 무덤은 사능(思陵)이라 이름 붙여졌습니다. 폐비 신씨는 세상을 떠난 뒤 신씨 묘역에 묻혔다가 1739년(영조 15)에 복위되어 묘호는 단경, 능호는 온릉(溫陵)이 되었습니다. 단종은 세상을 일찍 떠나 어쩔 수 없었지만, 중종은 조강지처이며 은인인 단경왕후를 훗날 복위시키거나 보살펴 줄 수 있는 처지였는데도 그렇게 하진 않아 아쉽습니다.    

두 능(1)은  모두 크진 않으나 왕비들의 성품을 아는지 단아합니다. 소나무 숲이 주변을 아늑하게 감싼 그런 형세입니다. 게다가 모두 남향이어서 멀리 외로이 있는 남편들의 능인 장릉과 정릉을 각각 그리워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 왕비들의 원혼을 의리로서 답하려는 듯 왕들의 능도 지금껏 단릉으로 있습니다. 왕비들이 겪은 힘든 삶에 안쓰러움을 느끼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은 학처럼 살다간 왕비들의 삶이 여운을 남깁니다.   

(1)사릉은 남양주시 진건읍 사릉로에, 온릉은 양주군 장흥면 호국로(일영리)에 있으며, 각각 사적 제 209호, 210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사릉은 경춘선 사릉역이나 금곡역을 이용해 갈 수 있으나 온릉은 현재 비공개 능입니다.

필자소개

안건훈

현 강원대 명예교수통일협회 공동대표. 고려대 철학과를 나와 서울대(교육철학)와 미시간주립대(논리학, 과학철학)에서 석사, 고려대와 미주리대에서 각각 박사학위를 취득. 한국철학회 부회장, 한국환경철학회 회장, 한국역사철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논리와 탐구』, 『기호논리학1』, 『기호논리학과 그 응용』, 『이분법적 사고방식』, 『확실성탐구』, 『인과성분석』, 『자유의지와 결정론』, 『환경문화와 생태민주주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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