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미소 지을 일은 있다 [정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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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미소 지을 일은 있다

2015.04.28


앞이 보일 듯 말 듯, 혼돈의 와중. 이것이 우리 사회의 현주소입니다. 광화문 광장의 시위대와 맞선 ‘차 벽’, 연금개혁에 대한 극렬한 반대, 시위 제한에 대한 헌법소원(헌법소원 만능 시대), 희대의 성완종 부패 게이트, 노사정 협의의 예고된 결렬, ‘삼포세대(연애, 결혼, 아기 포기)’의 좌절감, OECD 1위 자살공화국, 4분기 연속 0% 대 성장, 끝 모르는 자영업의 몰락, 내몰린 중산층의 불안감,  CEO들의 초고소득 행렬, 연이은 방산 비리, 곳곳에 도사린 복지 사각지대 . . .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모습입니다. 이런 것만 생각하면 정말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부정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과학, 기술, 의료, 예술, 대중문화, 디자인, 패션, 스포츠 등등의 분야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좋은 소식을 접하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전반적으로 볼 때 우리 사회는 밝음보다는 어두움이, 즐거움보다는 우울함이 일상을 지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과거에 여러 번 그랬던 것처럼 이런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우리 국민의 지혜와 능력에 기대를 걸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처한 혼돈의 와중에도 우리를 미소 짓게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이런 이야기들을 풀어보려고 합니다. 사회가 어둠에 싸여 있을수록, 시대가 우울할수록 우리는 가느다랄지라도 밝은 빛줄기를 보며 앞날에 대한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희망이 꺼지는 순간 우리의 미래도 꺼지기 때문입니다.

우선 제주 이야기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오래 가보지 못하던 서귀포 대평리(올레 9코스 출발지점)에 펜션처럼 보이는 하얀 집들이 어느새 하나의 단지를 이루며 커다랗게 들어섰습니다. 바닷가를 내려다보는 그 단지의  레스토랑이란 곳에서는 피자만, 그것도 단 한 가지의 피자만 판다고 합니다. 괜한 호기심이 일어 찾아가보았더니 모든 게 제 눈에 딱 들지는 않았습니다. 주인과 같은 교회에 다니는 지인으로부터 나중에 듣고보니 이 집들은 일반인을 위한 펜션으로보다는 집주인의 회사 종업원들을 위한 휴식의 집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물론 제주에 부동산을 가지고 있으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값이 오르니 주인으로서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주인도 돈을 벌고 종업원들도 경관 좋은 곳에서 쉽게 휴식을 취할 수 있으니 어떤 면에서 상생의 한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또, 한 견실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분은 제가 사는 집 가까운 산기슭 넓은 터에 큰 건물을 지었는데, 면식이 있는 분이라서 이분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당신은 가족도 둘뿐으로 단출한데 이렇게 큰 집을 지어서 무엇하려고 하느냐”고요. 그분은 “아, 여기저기에 있는 우리 회사 직원들이 와서 같이 회의도 하고 휴식도 하도록 하기 위해 지었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분도 전자의 기업인과 생각이 비슷한 모양입니다. 적어도 자기 회사 종업원들의 휴식과 복지를 마음에 두고 이런 일을 벌였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이 두 중소기업은 모르긴 해도 매우 건강하고 돈도 잘 버는 기업들로 보입니다. 종업원의 마음을 얻어 가면서  움직이는 기업이 어찌 잘 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제주에는 유난히 박물관이 많지만 그중에 '세계자동차박물관'이 있다는 것을 아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개인이 운영하는 유일한 자동차박물관입니다. 역시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분이 10여 년 전에 기업을 마감하고 그동안 번 돈으로 어떻게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가를 고심하다가 세계 각지를 돌면서 궁리한 끝에 세우기로 한 것이 이 박물관이라고 합니다. 자동차 강국이기도 한 우리나라 어린이들에게 더 큰 꿈을 심어주기 위해 꽤 큰돈을 투자하여 지었다 하며, 특기할 만한 것은 어릴 때부터 교통문화를 익힐 수 있도록 어린이교통체험관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교통체험관이 가장 인기를 끈다고 하니 세계자동차박물관이 어린들의 꿈을 키워주면서 미래의 교통문화 향상에도 얼마나 기여하고 있을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미소 지을 일들이 어찌 제주에만 있겠습니까. 두어 달 전 한 방송 기사를 보고 저는 ‘아, 우리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습니다. 그 기사는 제목이 ‘KSS 해운, 국내 첫 임직원 이익공유제 도입’으로, 특수화물 운송 해운회사인 KSS 해운의 주주총회 장면을 보도하는 것이었습니다. “KSS 해운은 주주총회를 열고 국내 기업 처음으로 회사 순이익 일부를 임직원들에게 나눠주는 이익공유제 안건을 통과시켰습니다 . . .  이에 따라 이번에 임직원에게 나눠준 돈은 지난해 순이익 270여 억 원의 일부인 25억 원 정도라 합니다 . . . 이 안건을 주주총회에서 제안한 사람은 창업주이자 대주주인 박 종규 고문(전 사회규제개혁위원회 공동위원장)입니다. 박 고문은 이익이 나거나 손실이 발생할 때 직원들과 공유해야 기업이 장수할 수 있다고 보고, 이 제도를 제안했다고 강조합니다.” 

박 종규 고문은 10여 년 전에 건강 문제로 회장직을 그만두고 마침 제주에 내려와서 살고 있는 분으로서 저의 대학 대선배이기도 하여 저는 이분을 찾아가서 보다 자세히 물어보았습니다. 박 고문은 기업이 선진국들처럼 한 300년은 존속해야 기업도 좋고 나라에도 좋은 것이 아니냐고 하면서 장수하는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이 길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종업원들은 회사의 이익이 커져야 본인들에게 돌아오는 수입도 커질 것이므로 기업 규범에 맞추어 회사 일을 열심히 하게 되고 손실 가능성에 대한 상호 감시도 하게 되므로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기업에 만연한 부정의 여지도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의 부정과 부패를 막기 위해서는 김영란 법과 같이 부패의 수요 측면을 억제함과 동시에 공급 측면도 함께 억제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참으로 가슴을 탁 트이게 하는 노 기업인의 말씀이었습니다.  중견기업인 이 회사는 참으로 탄탄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경영세습은 아예 없고 사장도 별도의 추천위원회에서 뽑도록 돼 있습니다. 이 회사의 경영 철학 자체가 상생에 기반을 둔 지속경영(corporate sustainability)인 만큼 우리 기업들이 본받을 데가 많은 것으로 보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많은 문제들은 각 분야에서 상생의 문화가 자리 잡지 못한 때문에 생긴다고 하겠습니다. 이른바 '갑과 을'의 사이가 너무나 벌어져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저는 이번 KSS해운이 시작한 이익공유제가 더 많은 기업, 특히 우리의 먹고사는 문제를 좌지우지한다는 대기업들로 퍼져나가기를 기대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매일같이 잘났다고 하는 사람들이 다투어 나서서 이것이 옳다, 저것이 옳다 하면서 많을 말들을 쏟아내고 있음을 봅니다. 이른바 나라를 위한 거대담론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말이 우리 사회를 개선하는 데 얼마나 기여하겠습니까. 잘났다는 사람들이 뱉어내는 많은 말보다도 먼저 깨달은 보통사람들이 하는 실천이 더 큰 울림을 줍니다. 주변을 살펴보면 작지만 큰 울림을 주는 사례가 많을 것입니다. 이런 실천형 사람들이 더욱 많아져서 상생과 희망의 바이러스가 널리 뿌려질 것을 기대합니다. 그럼으로써 우리 사회가 갈등의 골과 불신의 늪에서 하루빨리 벗어날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비단 기업뿐 아니라 우리가 속한 모든 분야에서 이처럼 우리를 미소 짓게 하는 일들을 더 많이 만들어가야 하겠습니다. 

필자소개

정달호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줄곧 외교관으로 일했으며 주 파나마, 이집트대사를 역임했다. 은퇴 후 제주에 일자리를 얻는 바람에 절로 귀촌을 하게 되었고, 현재 제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한라산 자락에 텃밭과 꽃나무들을 가꾸며 자연의 품에서 생활의 즐거움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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