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다시 정권이 교체되는가 [허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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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다시 정권이 교체되는가

2015.04.27


대만의 여야 정당이 내년 1월로 예정된 차기 총통선거를 앞두고 각각 비상체제로 돌입했습니다. 집권 국민당은 오는 6월 중순까지 후보를 결정한다는 방침 하에 예비후보 접수에 들어갔으며, 야당인 민진당은 이미 차이잉원(蔡英文) 주석을 공천한 상태에서 선거 열기를 높여가고 있습니다. 

민진당이 지난해 11월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었던 여세를 몰아 단연 앞서가는 분위기입니다. 현지 언론들이 발표하는 여론조사에서도 이러한 분위기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차이잉원의 지지도가 60%를 오르내릴 정도입니다. 이런 추세라면 국민당의 어느 후보와 맞붙는다 해도 월등한 차이로 당선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합니다.

국민당 주석인 주리룬(朱立倫)이 이번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며 미리부터 선을 그어놓고 있는 것도 약세를 드러내는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신베이(新北) 시장으로서 시장 임기를 채우겠다”는 것이 총통 출마를 고사하는 표면적인 이유입니다. 마잉지우(馬英九) 총통이 주석직을 사퇴함으로써 그 자리를 이어받은 입장이지만 아직 전세를 뒤집을 준비가 갖춰지지 않은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대만에서 다시 정권교체가 이뤄지게 되는 것일까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대만에서도 여성 지도자가 탄생하게 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끕니다. 지난 2012년 선거에 도전했다가 고배를 마셨던 차이 주석으로서는 이번이 대권 재수인 셈입니다. 올해 쉰아홉 살로, 대만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정경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실력파입니다.

그러나 차이 주석의 인기가 올라가고 있는 것은 국민당 정부의 레임덕 현상으로 인한 반사효과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습니다. 가뜩이나 마잉지우의 친중국 정책이 눈총을 받는 상황에서 경제난이 이어진 데다 원전정책 마찰, 가오슝 가스관 폭발사고, 불량 식용유 사태 등이 연달아 불거진 탓입니다. 민진당이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것도 그 덕분일 뿐입니다. 

사실은, 차이잉원이 후보로 결정되고 나서도 아직 별다른 공약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천수이볜도, 마잉지우도 아니다”라며 차별점을 부각시키고는 있지만 실제로 내세우는 것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언론들이 “설령 전임 지도자와 다르다고 해서 그 자체로 훌륭한 지도자라고 할 수는 없지 않으냐”며 물음표를 달고 있는 이유입니다. 특히 긴급히 결정을 해야 하는 문제에 이르러 결정을 미룬다는 것이 가장 큰 결점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대만에서 선거 때마다 중국과의 양안관계가 가장 핵심으로 떠오르기 마련이지만 차이잉원은 “현상을 유지하는 게 기본 방침”이라는 차원에서 머무르고 있습니다.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이 민진당의 기본 입장이면서도 가급적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겠다는 의도로 비칩니다. 공식적으로는 대륙과의 역사 관계조차 인정하지 않는 등 ‘하나의 중국’이라는 개념을 전면 거부해 왔으면서도 이번에는 그에 대한 입장 표명을 유보하고 있다고나 할까요.

민진당이 양안 문제에 있어 내부적으로 다소 유연해지려는 조짐이 엿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구태여 마찰의 소지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뜻이겠지요. 이로 인해 ‘지도력이 없는 리더십’이라는 비아냥도 듣고 있습니다. “정치 지도자의 잘못된 결정은 종종 엄청난 대가를 수반하게 되지만, 가장 최악의 지도자는 아예 아무런 결정도 내놓지 않는다”는 지적입니다. 지금처럼 '현상 유지'를 내세워 어정쩡한 상태에서 집권하게 된다면 차후 중국과 미국 양쪽으로부터 명확한 입장을 추궁받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총통 선거가 여덟 달 이상이나 남은 시점에서 미리 결과를 기정사실화하는 것도 타당하지는 않습니다. 투표함을 열기까지는 언제라도 변수가 따르기 마련인 것이 선거가 아니던가요. 그중에서도 지난 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돌풍을 일으키며 타이베이 시장에 당선된 커원저(柯文哲)의 출마 선언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이 경우 판세가 요동칠 것은 당연합니다. 국민당 측에서도 왕진핑(王金平) 입법원장과 우둔이(吳敦義) 부총통 등이 유력한 후보로 꼽히는 가운데 주리룬 주석이 불출마 의사를 접고 후보로 나설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중국이 선거에 어떻게 개입할 것인지도 관심거리입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중국공산당 총서기 자격으로 주리룬 주석과 내달 5·4운동 기념일에 맞춰 베이징에서 만나기로 했다는 사실이 그 하나입니다. 이른바 국공(國共) 영수회담입니다. 이처럼 국민당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직·간접적인 시도가 앞으로 선거가 치러지기까지 계속 이어질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동안 대만의 정치 변동이 한국과 서로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됐다는 점에서도 내년 선거가 관심을 끌게 됩니다. 대만에서 지난 2000년 야당 후보인 천수이볜(陳水扁)이 선거를 통해 처음으로 정권교체를 이뤄 연임에 성공했고, 국민당 마잉지우가 정권을 되찾아 역시 연임을 이룬 것처럼 우리도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들어섰다가 이명박, 박근혜 정부로 정권이 넘겨진 구도가 거의 일치합니다. 

독재시절을 겪다가 1980년대 후반기에 이르러 민주화가 되었다는 사실도 그렇습니다. 한국에서 6·29선언이 발표된 비슷한 무렵 대만에서는 38년 동안 지속됐던 계엄령이 해제되었습니다. 대만 선거에서 중국 변수가 제기되듯이 우리도 선거 때마다 북한 변수가 터져 나오곤 합니다. 더 나아가 오는 선거에서 여성 총통이 탄생하게 된다면 그것도 우리의 뒤를 따르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기성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대만에서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확인되었듯이 무소속이나 제3세력에 대한 지지도가 높아가고 있습니다. 말만 앞세우고 자기들 잇속만 챙기려는 여야 정치인들에 대해 염증을 느끼는 것이겠지요. 대만 정치판의 모습을 통해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선거의 귀추를 유심히 지켜보게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필자소개

허영섭

이데일리 논설실장. 한경대학교 지식재산연구원 겸임교수. 전경련 근무. 경향신문과 한국일보에서 논설위원 역임.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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