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안보협의회, 협상 전문가가 필요하다 [박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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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안보협의회, 협상 전문가가 필요하다

2015.04.20


“일본의 독도, 과거사 도발로 한일 갈등이 고조된 가운데 한일 안보협의회가 오늘 5년 만에 재개됩니다. 과거사, 영토 문제와 안보 경제 협력은 분리한다는 게 정부 입장입니다. 문준모 기자가 보도합니다.” 

2015년 4월 14일 필자가 읽은 SBS 라디오 정오 종합 뉴스의 앵커 멘트입니다. 이 뉴스를 전달한 후 필자는 하루 종일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선 ‘영토 문제와 안보 문제가 분리될 수 있는 것인가?’하는 의구심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물론 동북아의 안보 협력 문제는 일본의 독도 도발보다 더 큰 틀에서 생각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며, 한일 관계를 중재하고자 하는 미국의 의도도 이번 안보협의회의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하지만 백 번 양보를 해도 ‘위와 같은 정부의 입장을 기사화해서 공표했어야만 했나?’하는 의문이 가시지를 않았습니다. 

협상의 전문가로 알려진 허브 코헨(Herb Cohen)이 쓴 협상의 법칙 1권을 보면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실수 하나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이 첫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집무실에 들어갔을 때, 그는 외교정책에서 인권 문제를 거론했다. 그것만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는 곧바로 우리들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죽 나열했다. 적대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눈에 비친 지미 카터의 이런 행동은 그들을 이웃집 고양이만도 못한 종이호랑이로 만들어 놓은 셈이었다. 그는 반대급부로 가져갈 수 있는 몇 가지의 선택 사항을 완전히 제거해 버리는 불행한 잘못을 범한 것이다. 

예를 들어 카터 대통령은 결코 아프리카나 중동에 미국 군대를 파견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 말을 들은 쿠바의 카스트로는 시가를 물고 이렇게 말했다. 

“일이 어떻게 될지 당신들이 알기나 하겠소? 미국 놈들이 아프리카에 군대를 보내지 않는다는 거요! 이 얼마나 사려 깊은 놈들이요? 그렇다면 우리 쿠바가 아프리카에 군대를 보내야 하지 않겠소?” 

그리고 그는 실제로 앙골라와 혼 두 곳에 군대를 파견했다. 

카터 대통령은 카스트로를 혼란스럽게 했어야 했다. 그는 침략 행위에 대처할 외교적 압력이든 군의 힘을 빌려서든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선택 사항을 함께 공개했어야 했다. (허브 코헨 협상의 법칙 1  p.121)

이번 한일 안보정책협의회에서는 미·일 방위협력지침 등 한일 양국의 안보 관심 사안이 논의됐는데 언론에 보도된 중요한 내용 중 하나는,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 이후 일본이 동북아에서 집단 자위권을 행사할 때 한국의 동의 없이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 활동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에 일본 외무성과 방위성 관계자들이 ‘일본의 방위안보 활동 과정에서 한국의 주권을 철저히 존중하겠다’는 약속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사 내용은 얼핏 보면 일본이 우리의 요구를 들어준 모양새 같지만 ‘한 나라의 주권은 따로 얘기를 하지 않아도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보면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당연한 요구를 들어준 그 대가로 일본은 미일 방위협력 지침에 집단자위권 행사에 따른 우리 정부의 입장을 명문화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왠지 어린 아이들에게 국새를 맡긴 것 같은 불안한 느낌이 듭니다. 협의회를 마치고 기분이 좋아진 일본이 ‘한일 국방장관 회담을 하자’고 제안을 했고 우리는 신중하게 ‘고려해 보겠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과거사, 영토 문제와 안보 경제 협력을 분리하겠다고 천명을 해버렸으니 일본 입장에서는 참으로 홀가분하게 협상에 임했을 겁니다. 쓸데없이 ‘송양지인(宋襄之仁)’을 베풀어 친절하게 우리의 입장을 정리해 보여주면서 협상에 임한 우리 정부는 이슈를 선점하지도 못한 채, 당연한 권리인 ‘주권’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는 우를 범하게 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영토는 나라의 근간인데 그 근간을 위협하는 이웃  나라와의 협상은 전쟁과 다를 것이 없으며 전쟁은 반드시 이겨야 나라와 백성을 지킬 수 있는 것인데 이를 알면서도 안 하는 것인지 알고도 못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천하를 통일한 한나라 유방의 조공을 받으며 60여 년간 흉노의 융성기를 이끈 묵돌 선우의 일화는 2,000년이 넘게 지났지만 다시 돌아볼 만합니다.

흉노의 동방에는 동호가 자리 잡고 있었다. 묵돌이 자리에 오른 후, 동호가 견제의 움직임을 보인다. 동호의 왕은 처음 묵돌에게 사자를 보내 흉노의 보물인 천리마를 요구하였다. 일부 신하들이 반대하였지만 묵돌은 천리마를 선물로 주었다. 다시 동호의 왕은 묵돌의 애첩 하나를 줄 것을 요구하였다. 이번에는 많은 신하들이 반대하였으나 묵돌은 자신의 애첩 또한 선물로 주었다. 또 다시 동호왕은 양국의 경계에 있는 구탈지(양국 경계에 있는 완충지대로 사람이 살지 않는 땅)를 내놓으라고 했다. 한 신하가 묵돌에게 "구탈지는 버려진 땅이니 주어도 좋고 주지 않아도 좋다"라고 했다. 하지만 묵돌은 "토지는 국가의 근본이다. 어떻게 이를 줄 수 있겠느냐!"고 하며 동호에 쳐들어가 동호를 크게 무찌르고 왕을 죽였다.(위키 백과)

과거사, 영토 문제와 안보 경제 협력은 분리한다는 입장을 천명한 것은 아마도 국민에게 정부의 입장을 알려서 동의를 구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국민이 바라는 것은 그때그때 국민의 눈치를 보는 정부가 아닙니다. 역사를 왜곡하고 영토를 위협하는 그 어떤 책동에도 단호하게 대처하는, 자랑스런 조국을 만들기 위해 "함께 가자”고 손을 내미는 진실된 정부입니다. 

필자소개

박상도

SBS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TV 토요일 아침 '모닝와이드' 담당.

게스트칼럼 / 유능화

엘 시스테마

얼마 전 진료를 하는 도중에 FM 라디오에서 구스타보 두다멜이 지휘하는 LA 필하모닉의’ 드보르작 심포니 No. 9’이 흘러나왔습니다. 반가웠습니다. 음악이 평소 친근한 것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지휘자 두다멜이 장래가 아주 촉망되는 지휘자이고 그의 성장 스토리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스타보 두다멜은 1981년, 베네수엘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지휘에 대한 감각이 일찍부터 뛰어났습니다. 유아원에 들어가기도 전인 네 살 때 이야기입니다, 한 번은 꼬마 두다멜이 작은 장난감들을 방바닥에 펼쳐 놓고 이리저리 정렬하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그런 아이를 보고 소꿉장난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는 방을 나가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할머니, 청소할 때 내 오케스트라는 건드리지 마세요!” 아이가 여덟 살이 되자 할머니는 지휘봉을 선물해 줬고, 아이는 음악을 틀어놓고 자신의 ‘장난감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걸 즐겼습니다. 

구스타보 두마멜은 ‘엘 시스테마’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두다멜은 이 ‘엘 시스테마’가 배출한 최대의 인재이자 최고의 스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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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시스테마(El Sistema)’는 영어의 ‘시스템(system)’과 뜻이 같은 스페인어지만, 이제는 ‘베네수엘라의 공공 음악교육 프로그램’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통합니다. 정식 명칭은 ‘베네수엘라 국립 청년 및 유소년 오케스트라 시스템 육성재단’으로, 1975년 음악가이면서 경제학자, 교육자, 정치가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Jos Antonio Abreu, 1939~) 박사가 제안하여 시작되었습니다. ‘엘 시스테마’는 음악을 통해서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베네수엘라는 남미 최대의 산유국이면서도 고질적인 빈곤과 범죄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아브레우 박사는 조국의 빈민가 아이들에게 총이나 마약 대신 악기를 안겨 주고 음악을 가르쳐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도록 함으로써 범죄를 예방하는 한편, 그들에게 미래에 대한 꿈과 비전을 심어주고 협동질서소속감책임감 등의 덕목과 가치를 심어주고자 했습니다. 처음에 수도 카라카스(Caracas)의 한 빈민가 차고에서 11명의 단원으로 출발한 ‘엘 시스테마’는 2010년 기준으로 베네수엘라 전국에 190여 개의 본부, 26만여 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거대 조직으로 성장하였습니다.

‘두다멜은 2004년 독일에서 열린 ‘구스타프 말러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이후 국제적인 화제의 중심에 서면서 자신을 길러준 ‘엘 시스테마’의 저력을 전 세계에 각인시키고 전파하는 일등공신 역할을 해왔습니다. 1999년 열여덟 살의 나이에 엘 시스테마의 시몬 볼리바르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이 되었고, 스물여덟 살이던 2009년부터는 LA 필하모닉의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중고등 학생들의 스트레스 지수가 세계에서 일등을 달린다고 합니다.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엄청난 것입니다. 그네들의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책임감과 협동의식을 함양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한국의 ‘엘 시스테마’를 고대합니다. 우리나라의 미래는 학생들인데 그네들의 인성이 너무 메마른 것이 안타깝습니다.

유튜브에 올라 있는 구스타보 두다멜의 힘찬 지휘를 보시지요. 드보르작의 심포니 9번의 4악장입니다.(https://www.youtube.com/watch?v=vHqtJH2f1Yk&feature=player_detailpage) 

필자소개

유능화


경복고, 연세의대 졸업. 미국 보스톤 의대에서 유전학을 연구했다. 순천향의대 조교수, 연세의대 외래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서울시 구로구 온수동에서 연세필 의원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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