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살어리랐다(2) [정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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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살어리랐다(2)

2015.03.12


지리적인 거리로는 서울과 제주 간이 우리나라 주요 두 도시를 잇는 거리 중 가장 멀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속의 거리로는 어쩌면 제주가 서울에 가장 가까울는지 모릅니다. 서울과 제주의 거리를 좁혀 주는 것은 무엇보다 항로입니다. 김포공항과 제주공항을 잇는 항로가 세계에서 두 도시를 잇는 항로 중 승객 수가 가장 많다는 것은 외국 항공교통 전문기관(Amadeus)이 이미 밝힌 바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최근 보도에 의하면 제주공항을 이용하는 항공기의 숫자도 김포공항보다 많다고 합니다. 저가 향공의 약진도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입니다. 어쨌든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내라"는 말을 더 이상 할 수 없게끔 제주를 내왕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관광객이 많이 오는 것은 잘 알려진 대로 수려한 경관과 다양한 볼거리, 맑은 공기와 따뜻한 기후 때문입니다. 웬만큼 사는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아직 제주에 가보지 못했다고 하면 듣는 사람이 좀 의아해할 정도로 제주 관광이 유행이 되다시피 했습니다. 사시사철 한라산을 오르는 등산객, 바닷가와 산길을 아우르는 올레를 찾는 ‘올레꾼’과 함께 효도 관광 붐을 타고 제주를 찾는 어르신들도 많습니다.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중국인 관광객도 거리의 새 풍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관광객도 늘고 있지만 귀농 귀촌을 위해 오는 사람도 해마다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육지에서 제주에 비견할 만한 곳이 속초를 비롯한 강원도 일원으로 볼 수 있다면 이들의 공통점은 산과 바다, 이 둘을 다 가지고 있다는 게 아닐까요. 산이 좋다거나 바다가 좋다거나, 어느 한 가지만 좋다면 그곳에서는 이내 지루해지기도 할 테지만 이 둘을 다 즐길 수 있는 곳이라면 쉬 지루해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강원도는 주로 육로로 가는 곳이라 교통 형편상 시간적으로 만만치 않다는 문제가 있겠습니다. 요즘 몇 갈래 대교로 육지와 연결된 남해가 살기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역시 서울까지 육로로 이동한다는 것이 녹록지는 않을 것입니다. 물론 항공기를 이용하는 것에 비해 육로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한 점도 적지 않겠지요. 

제주가 서울에 가까운 이유가 또 있습니다. 얼마 전 제주에서 올레길 완보자(完步者) 클럽 발대식이 있었는데, 스물한 번째 마지막 올레 코스가 개통된 이래 2년 3개월 간 총 475킬로미터 전 코스 완주자 670명이었다고 하며, 이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그 중 51%가 서울 등 수도권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서울 사람들이 제주를 자주 내왕한다는 것이니 서울에서 결코 먼 곳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서울 외 전국적으로 항공 연결이 잘 돼서 다른 도시에서도 많이들 제주를 찾습니다.

요즘 제주에 고급 외제 승용차들이 눈에 많이 띄는 것도 제주와 서울 간의 거리를 더 좁히는 데 한몫을 하는 것 같습니다. 제주 부자들이 타는 외제차도 있고 또 중국인 투자자들이 많이 와서 탈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아이들을 국제학교에 보내는 서울 사람들, 특히 강남에 사는 부자들이 많이 내려와서 외제차가 부쩍 늘었다는 설명이 그럴싸합니다. 지난겨울 필자가 한 국제학교에 특강을 하러 갔다가 에쿠스가 무색할 정도로 이름난 외제차들이 정문 앞에 즐비하게 서 있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 외에 정말 제주를 마음으로 더 가깝게 만드는 것이 또 있습니다. 제주시 애월읍 소길리에 산다고 해서 '소길댁'으로 불리는 가수 이효리가 일으키는 바람이 그것입니다. 이효리는 제주에 살면서 텃밭도 가꾸고 이웃 주민들과도 잘 어울려서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그녀의 블로그를 찾는 ‘이웃친구’가 26만에 이른다는데, 소길댁이 이따금 블로그에 올리는 진솔한 제주 살이 이야기에 많은 네티즌이 몰려든다고 합니다. 이렇게 대한민국 최고에 속하는 인기인이 제주에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서울뿐 아니라 전국 각지와 제주를 가깝게 이어준다고 하겠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서울 등지에서 제주로 이주해오거나 제주에 별도의 집을 두고 자주 내왕하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라 하면 알 만한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바쁜 일을 떠나 이따금 별장 생활을 즐기는 기업인들은 물론 화가, 음악가, 시인, 작가와 같은 예술가도 적지 않습니다. 근래에는 젊은층도 많이 이주해 오고 있습니다. 이들은 도시의 찌들고 억눌린 삶에서 벗어나 슬로우 라이프가 주는 단순한 행복을 찾아 제주에 온다고 합니다. 주로 먹거리 마실 거리 등 서비스업을 하는데 가끔은 이런 사람들 덕에 저는 서울에 가지 않고도 근사한 파스타나 피자뿐 아니라 정말 훌륭한 커피를 마실 수도 있답니다. 

한번은 아는 분을 따라 조천읍 교래리에 새로 생긴 커피 집에 간 적이 있습니다. 이 집에서  내오는 커피를 마시고 저는 이 커피는 전국 어디에 내놔도 최고에 속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래 전에 사발만큼이나 큰 잔으로 마시던 파리의 그 대단한 커피(그랑 크렘므-Grand Creme)를 생각케 하였습니다. 여자는 커피를 내리고 남자는 커피숍 한쪽 구석에 검소한 사진관을 차려놓고 사진 예술도 한다는 젊은 커플인데 돈은 많이 벌지 못해도 제주에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하였습니다. 

제주는 자연만 수려한 게 아니라 문화예술도 활발합니다. 인구 60만 도시치고는 문화예술 공간이 많은 편이며 이에 걸맞게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좀 궁금하기도 해서 제주의 어떤 문인에게 “제주는 왜 다른 곳에 비해 문화예술 활동이 별나게 많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이분은 좀 쑥스러워하면서 “아마도 수려한 자연 때문이 아닐까 싶군요.”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자연과 예술, 사실 이 둘은 별개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제주의 자연 속에서 살면서 예술 활동을 하고자 하는 외지 사람들이 앞으로 더 많이 와서 제주의 문화 예술을 더욱 풍성하게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 외에도 제주는 아기 낳아 키우고 학교 보내는 데도 좋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세 자녀 가정도 눈에 많이 띄며 전국 수능에서도 제주가 상위권에 든다고 합니다. 여러모로 제주에 사는 것이 좋다고 요즘 제주로 이전해오는 기업들 또한 늘고 있습니다. 작년에만 해도 스물다섯 개의 기술 위주 기업들이 제주로 옮겨왔다고 합니다. 이미 제주에 정착한 기업으로 유명한 것은 다음(Daum)과 넥슨(Nexon)인데 사원들이 와서 살아보니 생각하던 것보다 불편한 게 적고 좋은 점이 많다고 하는 얘기를 그들로부터 직접 듣기도 하였습니다. 

제주가 서울에서 멀지 않다는 이야기, 제주의 새로운 풍물 이야기 등을 하다 보니 제주 자랑을 마냥 늘어놓은 것 같습니다. 저 스스로도 제주로 이주해 와서 산 것이 6년째이다 보니 이젠 정도 많이 들어 제주가 고향처럼 되었습니다. 제주 방언이 귀에 생경하듯 여전히 친숙치 않게 느껴지는 부분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제주가 살 만한 곳이라고 말하는 데에 전혀 주저하지 않습니다. 겨울 제주 어디서도 흰 눈 덮인 한라산이 뚜렷이 드러나지만, 서귀포 기준으로 서울보다 보통 7~8도 가량 기온이 높은 데다 삼다수처럼 뛰어난 천연수를 가진 제주는 바깥사람들에게 따뜻한 눈길과 반가운 손짓을 보내고 있습니다. 청산에 살고 싶어 했던 선인들처럼 제주에 살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제주는 더욱 살기 좋은 곳이 되리라 믿습니다.

필자소개

정달호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줄곧 외교관으로 일했으며 주 파나마, 이집트대사를 역임했다. 은퇴 후 제주에 일자리를 얻는 바람에 절로 귀촌을 하게 되었고, 현재 제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한라산 자락에 텃밭과 꽃나무들을 가꾸며 자연의 품에서 생활의 즐거움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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