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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찾아 3만 리
2015.03.05
- 해외 입양의 문제
2015년 새해 야구팬들은 류현진(28·LA 다저스), 추신수(33·텍사스 레인저스), 강정호(28·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외에 또 한 명의 한국계 메이저리거를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얼마 전 뉴욕타임스(NYT)가 양키스의 주전 자리를 노리고 있는 한국계 입양아 레프스나이더(23)의 성공 스토리를 소개했습니다. 어쩌면 국내 리그 성적만으로 미국 땅을 밟은 강정호보다 미국 대학과 마이너리그에서 재능을 인정받은 레프스나이더의 가능성이 더 큰지도 모릅니다.로버트 레프스나이더(Robert Refsnyder)의 한국 이름은 김정태입니다. 서울서 태어나 1991년 생후 5개월 때 독일계 아버지 클린트(Clint)와 아일랜드계 어머니 제인(Jane) 레프스나이더 부부에게 입양되었습니다. 대학에서 소프트볼 선수로 활약한 그의 누나 엘리자베스(Elizabeth) 역시 한국 입양아입니다. 로버트는 2012년 애리조나대학을 졸업, 아마추어 드래프트 5라운드에서 양키스에 선발됐습니다. 마이너리그 2년 반 동안의 타율은 2할9푼7리, 출루율은 3할8푼9리, 통산 508루타. 추신수의 마이너 시절을 능가하는 기록입니다. 184cm, 92kg의 근육질 체격을 가진 그는 올해 처음 메이저리그 트레이닝캠프에 합류했습니다. 매일 훈련이 끝난 후 감독이 가장 좋은 플레이를 보인 선수로 발표하는 이름 중 하나가 레프스나이더입니다. 엘리자베스와 로버트는 어릴 때부터 스포츠에 소질을 보였습니다. 대학 시절 농구팀 포워드였던 양아버지 클린트도 아들 딸에게 프로농구 경기를 보여주며 격려해 주곤 했습니다. 로버트는 고교 시절 미식축구 라인배커, 쿼터백으로 활약하며 팀을 캘리포니아 주 우승으로 이끌었고 자신은 최우수선수로 뽑혔습니다. 애리조나대학에 진학해서는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 3학년 때 3할5푼2리의 타율로 팀을 대학 월드시리즈에 진출시켰고 결승에서도 4할7푼6리의 타율, 홈런 두 개를 날리는 활약으로 최우수선수에 오르며 팀에 우승의 영광을 안겼습니다.그에게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참기 어려운 독설을 듣기 시작한 곳이 바로 경기장입니다. 대학에 들어가 경기의 비중이 커질수록 그에 대한 야유도 심해졌습니다. 입양에 대한 조롱, 양부모에 대한 모독, 인종차별적 욕설이 쏟아졌습니다. 어린 시절의 그는 맞대응으로 분을 삭였지만 철이 들어서는 무대응, 무시하는 자세로 이를 극복해냈습니다. 클린트는 “아마도 그런 자제력과 성숙함이 아들을 최우수선수를 만들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로버트는 어린 시절 입양아라는 사실을 별로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5, 6세 때 처음 “왜 우리는 아버지 어머니와 생김새가 다르지?”하고 물어보자 누나는 ‘입양됐기 때문’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는 입양이라는 사실을 곧 자신의 운명으로 순순히 받아들였습니다. 로버트는 생모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습니다. 그는 “낳아준 어머니는 틀림없이 내게 보다 좋은 기회를 주기 위한 최선의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런 로버트도 어느 날 혹시 그가 생모를 찾아보고 싶다고 하면 양어머니의 마음이 상할지 어떨지 물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양어머니 제인은 “네가 생모를 찾고 싶다면 지구 끝까지라도 함께 찾아 나서겠다. 그리고 제일 먼저 껴안고 이렇게 멋진 선물을 보내 준 데 감사하겠다.”고 말해 주었습니다.메이저리그라는 큰 무대를 앞둔 로버트는 “내가 입양아라는 사실을 감추지 않겠다. 나는 내 가족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레프스나이더라는 이름으로 뛸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사람들이 낯선 것에 대해 놀라움을 갖거나 심지어 반감을 갖는 것조차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다르다는 것이 결코 불편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사람들이 이해해 주기 바란다”고 말합니다. 이런 로버트 레프스나이더에게 거는 기대는 야구선수로서의 가능성 이상의 것입니다. 수많은 입양아와 양부모들이 그로부터 정신적인 힘을 얻고 있는 것입니다. 그 자신은 양부모 슬하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있지만 많은 입양 가정에 적잖은 문제와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로버트는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편지로 이메일로 그에게 자문하곤 합니다. 로버트도 기꺼이 응하고 있습니다. 그와 구단이 희망하는 대로 메이저리그 출장의 꿈이 이뤄지는 날 입양 가족들은 물론 미국 사회 전체의 로버트 레프스나이더에 대한 관심은 한층 증폭될 것입니다.
미국에서 자란 한국 입양아들이 모두 로버트 레프스나이더처럼 시련을 극복하고 장밋빛 미래를 열어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NYT는 로버트의 밝은 이야기와 함께 이국땅에서 회복하기 어려운 마음의 상처를 안고 고국으로 되돌아가는 입양아들의 안타까운 사연도 함께 전하고 있습니다. 위스콘신에서 자란 로라 클런더(Laura Klunder·30)는 스물일곱 살 되던 지난 2011년 우리나라로 돌아왔습니다. 그녀의 왼팔에는 ‘K85-160'이라는 문신이 새겨져 있습니다. 생후 9개월 때 경찰이 홀트아동복지회에 맡겨 미국으로 송출하며 남긴 표식입니다. 1985년 들어서 겨우 두 주일 만에 홀트아동복지회에는 벌써 160번째 아기가 입양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그해 미국으로 입양된 8,800명 중 한 명입니다. 로라가 일과를 보내는 서울 홍대 거리는 수많은 해외 입양아들이 모여드는 곳입니다. 이들은 한데 어울려 비빔밥과 파전을 먹고 맥주와 소주를 마십니다. 대부분 2004년에 결성된 ASK(Adoptee Solidarity Korea) 회원들입니다. 미국, 프랑스, 스웨덴, 덴마크, 독일 등지에서 안정된 직장, 보장된 내일까지 포기하고 고국으로 돌아온 이들은 지금 친부모를 찾는 일, 해외 입양을 반대하는 일에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들은 정례적인 모임을 열어 우리나라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배척되고 있는 싱글 맘, 미혼모 문제를 토론합니다. 그런 환경, 문화로 인해 미혼모의 90%가 자신이 낳은 아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육아 지원에 미흡한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도 날카롭습니다. 특히 태어난 아기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없이 다른 나라, 다른 인종에 입양함으로써 문화적 충격을 겪게 하는 해외 입양의 무책임과 비도덕성을 질타합니다. 최근 이들은 정치적 캠페인, 입법 로비 등으로 활동 폭을 넓혀 당장 생활에 필요한 무기한 국내 취업 활동 비자를 얻어내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들의 최종 목표는 ‘자신들과 같은 부류의 멸종’, 곧 해외 입양을 완전히 종식시키는 것입니다.해외 입양이 현저히 줄어들긴 했지만 한때 우리나라는 가장 많은 아기를 해외로 송출한 부끄러운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6·25동란 직후의 전쟁고아는 물론 빈곤 가정과 미혼모의 육아 포기로 2006년까지 50여 년 동안 15만 명 이상이 해외로 입양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10만 명 이상이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낯설고 물선 이국땅에서 주위의 차가운 시선과 모멸적 험담을 들으며 자란 이들의 상처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양부모의 따뜻한 보살핌조차도 사춘기에 가해진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주지 못했을 것입니다. 동란 직후 피란처에서 오직 말씨가 다르다는 이유로 본토박이 개구쟁이들로부터 놀림 받고 따돌림 받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해외 입양아들이 겪었을 마음고생도 쉬 짐작이 갑니다.때마침 설 연휴를 맞아 KBS 1TV도 미니 다큐 인간극장에서 고국에 돌아와 친모를 찾는 입양아 출신 루크 맥퀸(44)의 이야기를 방송했습니다. 그는 같은 처지의 제인 트렌카(43)와 만나 줄리아라는 예쁜 딸을 얻었습니다. 세 가족은 유기견 단풍이와 함께 뿌리를 찾아 루크가 네 살 때까지 살았다고 생각되는 제천 바닥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장터에 전단을 뿌리고 병원과 보건소, 경로당을 방문하고 전국노래자랑에 출전해 가며. 루크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나의 상황은 많은 돌을 밧줄로 묶어 끌고 가는 것과 같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앞을 향해 훨훨 날아가고 싶지만 매여 있는 돌 때문에 날아가지 못한다. 그래서 멈추고 뒤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먼저 자신이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부터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이 긴 이야기에 등장하는 입양아들의 소망은 한결같습니다. “한 번 만나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낳아준 부모가 끝까지 나를 지켜 주지 않은 걸 결코 원망하지 않는다. 그들은 나에게 보다 나은 기회를 주고 싶었을 것이다.” 양부모가 베푼 사랑에 감사하면서도 뿌리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는 입양아들. 이들의 간절한 소망을 들으며 뒤늦게 우리 사회가 그동안 등한시했던 또 하나의 무거운 숙제를 깨닫게 됩니다. 이들이 제기하는 문제와 지적에 전적으로 공감하게 됩니다. ‘최다 입양아 수출국’, 부끄러움과 동시에 한없는 미안함과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게 됩니다.
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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