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관 모두가 법률가 [고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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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관 모두가 법률가

2015.03.04


헌법은 ‘국가 통치체제와 기본권 보장의 기초에 관한 근본 법규(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입니다. 우리 헌법은 전문과 130개 조문으로 돼 있습니다. 이 속에는 지금 우리 삶을 규율하는 체제와 기본권을 규정합니다. 헌법은 지금 우리 사회를 규율하는 제도와 삶의 보편적 가치 기준을 정하고 있습니다.

일반 법률이 헌법에 어긋나면 법원이나 개인은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여 위헌인지를 판단 받을 수 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헌법소원심판을 심리하여 결정합니다.
헌법재판관은 “법관의 자격을 가진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하고(헌법), 재판관은 ①판사, 검사, 변호사, ②변호사 자격자로 법률 사무에 종사하거나, ③ 대학에서 법률학 교수, 이들 중에서 40살 이상 해당 직에서 15년 이상인 사람을 임명한다(헌법재판소법).”고 합니다. 헌법재판관이 되려면 법률가여야 합니다.

의문이 생깁니다. 먼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의 모습이 여러 가지로 다양한데 모두 법률가의 눈으로 재단해도 되는가. 또, 재판관은 변호사 자격이 있거나 나중에 변호사로 활동할 사람인데 변호사 직역과 충돌하는 일이 생기면 헌법재판관은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이며, 그렇게 취한 태도가 정당 공평 타당하다고 믿어도 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물론 법에는 “헌법재판관은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2012년 8월 23일 2010헌마740사건을 기각한다고 결정했습니다. 8 대 0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변리사법에서 변리사에게 소송대리권을 규정하고 있는 데 법원이 침해소송대리권을 인정하지 않기에 이를 위헌이라고 주장하면서 변리사들이 청구한 사건이었습니다. 1961년 변리사법이 생긴 때부터 50년 이상 끌어온 논쟁이었습니다. 사회의 관심을 의식해서인지 2011년 12월 8일 공개변론도 열었습니다. 그런데 8 대 0이란 결과는 어리둥절합니다. 기각 결정한 논리를 살펴봐도 참 군색합니다. 그만큼 논란이 됐던 사건이고, 논리가 부딪히던 사건이었는데 재판관 전원이 ‘변리사에게 특허침해소송대리권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 아니다.’라고 결정했습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합니다. 앞으로 변호사가 될 사람들이라서, 변호사 업역을 지키기 위해 눈을 질금 감았다고 비난한다면 지나친가요?

우리 선조는 배밭에서 갓끈을 매지 말고, 오이밭에서 신발을 고쳐신지 말라고 했습니다. 옛날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자기 아이가 이웃 아이와 싸우면 이유도 묻지 않고 자기 아이부터 나무랐습니다. 어른이 자기 아이를 편든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도덕심이었겠지요. 심판은 공평하지 않다고 여길 수 있는 사건이라면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자기와 가깝다고 보일 수 있는 쪽을 더 엄격하게 대하는 게 기본이었습니다. 공정하게 처리할 자신이 없으면 스스로 그 사건 심리에서 손을 떼야 합니다. 위 사건에서 헌법재판관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작년에는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으로 뜨거웠고, 최근 62년 만에 간통죄가 헌법에 어긋난다는 결정을 내려 의견이 시끌시끌합니다. 이런 사건들도 법률가만의 눈으로 결정해도 되는지 의문입니다. 국민의 거주 이전 자유, 직업 선택 자유,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양심의 자유, 언론 출판의 자유, 학문 사상 종교의 자유, 저작자 발명가 과학기술자 예술가의 권리와 같이 법률가 시각만으로 선을 그을 수 없는 일들이 많습니다. 이 모든 것을 법률가만의 잣대로 선을 그을 것이 아닙니다.

헌법심판에 법률가가 참여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모두가 법률가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 사회의 모든 가치 판단을 법률가에게 맡길 수 없습니다. 법률가가 모든 것을 판단해도 될 만큼 모든 분야에서 식견이 충분하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법률가가 모든 것을 판단해도 좋을 만큼 우리 사회가 단순하지 않습니다. 헌법재판관을 어떻게 구성할지 고민해야 하겠습니다.

필자소개

고영회(高永會)

진주고(1977),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1981), 변리사, 기술사(건축시공, 건축기계설비). (전)대한기술사회 회장, (전)과실연 수도권 대표, 세종과학포럼 상임대표, 대한변리사회 회장 mymail@patinfo.com

박대문의 야생초사랑

흰동백 (차나무과)

이른 봄 우수 절기에 옷깃을 파고드는 바람은 여전히 매섭고 내리쬐는 하얀 햇살도 아직은 냉랭한데 남녘 섬에는 동백꽃 붉게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한창 피어나는 동백꽃 무리 중 눈부시게 하얀 흰동백꽃을 만났습니다. 하얀 꽃이 만개한 흰동백나무, 화선(畵仙)의 발자취가 배인 진도의 운림산방 입구에 서 있었습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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